시인과 작가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미송 2011. 10. 4. 18:44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스스로에게 낯설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 / 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 /육신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한 / 영혼이 머무를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문에서

 

재미있는 일이다. 다들 차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는데 막히는 길은 더욱 막힌다. 내비게이션은 가장 빨리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기계인데, 다들 그 기계를 달았기 때문에 가장 빨리 가는 길은 가장 늦게 가는 길이 된다. 내비게이션은 왜 가장 빠른 길이 가장 느린 길이 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은 그토록 열심히 일했건만 삶은 왜 힘들어지기만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부채는 있는데,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 / 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 있나요?’ (‘박물관’)

 

가족사진첩 속에 형제들과 찍은 사진은 남아 있는데, 그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을 읽으면 우리가 왜 과거나 미래에, 또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웃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만 웃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시인은 박물관에 가서 그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에게 박물관이란 오래된 유물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100년 정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을 보여 주는 극장이니까.

 

박물관은 역설의 극장이다. 전시된 부채는 그 부채로 가리던 홍조 띤 뺨을 보여 준다. 날이 선 칼은 그 칼을 움켜쥐고 적을 향해 돌진하던 기사를 보여 준다. 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조명을 받고 있던 반가사유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은 지금 먼지가 됐노라.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반가사유상을 바라볼 때, 그 당시 인류 전체의 웃음과 울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이로도 웃을 수 없고, 해골로도 웃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웃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웃어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내비게이션, 일류 대학으로 가라던 선생님들, 성공하려면 빈둥거리지 말라고 말했던 처세서들은 다 틀렸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없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될 수 없음을.’ 

(‘작은 별 아래서’)

 

이런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먼 길을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길이다. 내비게이션의 역설, 박물관의 역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어릴 때는 국민총생산(GNP)1만 달러가 되면 잘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GNP 4만 달러가 되어야만 잘산다고들 말한다. 이러다가 우리는 끝내 잘살지 못하리라. 심보르스카가 이렇게 노래하고 있으니.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결코 두 번은 없다.

 

/ 김연수 소설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72~ )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여류 시인이다.

 

포즈난 근처에서 태어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에 그녀는 몇년 간의 세월을 주간지를 편집하면서 보내왔다.

심보르스카는 그후의 시집을 정치적보다 자신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첫편 <<그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이다>> (1952) 은 공산주의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1957년에 발간한 <<예티를 부르며>> 에는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긋지긋한 눈사람과 비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녀의 수고하고 재치있는 시구는 대인 관계와 매일 인생의 괴상함과 비기대적인

차례를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공산 일당주의와 근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에 위협을 탐험하기도 하였다.

 

 

새벽 네 시 Czwarta Nad ranem (예티를 향한 부름 - 1957)

 

밤에서 낮으로 가는 시간.

옆에서 옆으로 도는 시간.

삼십대를 위한 시간.

 

수탉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가지런히 정돈된 시간.

대지가 우리를 거부하는 시간.

꺼져가는 별들에게 바람이 휘몰아치는 시간.

그리고-우리-뒤에-아무것도 남지 않을 시간.

 

공허한 시간.

귀머거리의 텅 빈 시간.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새벽 네 시에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네 시가 개미들에게 유쾌한 시간이라면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 다섯 시여 어서 오라.

만일 그때까지 우리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면.

 

 

읽는 것이 아닌 그리는 것

 

 글씨로 그림을 그린다.

''를 쓰고 생각해 잠긴다

''를 쓰고는 슬픔에 잠긴다.

'어제'를 쓰고 후회에 잠긴다.

'오늘'을 쓰고 두려움을 느낀다.

'새벽'을 쓰고 눈물을 흘린다.

 

                             

     열쇠 Klucz - 나에게 던진 질문(1954)

 

 열쇠가 갑자기 없어졌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갈까?

누군가 내 잃어버린 열쇠를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리라-아무짝에도 소용없을 텐데.

걸어가다 그 쓸모없는 쇠붙이를

휙 던져버리는 게 고작이겠지.

 

 너를 향한 내 애타는 감정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이미 너와 나,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니.

누군가의 낯선 손에 들어 올려져서는

아무런 대문도 열지 못한 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쇠'의 형태를 지닌 유형물로 존재하게 될

내 잃어버린 열쇠처럼.

고철 덩어리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녹()들은 불같이 화를 내리라.

 카드나 별자리, 공작새의 깃털 따위르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점괘는 종종 나온다.

 

 

 추억 한 토막 Ze wspomnien - 순간 (2002)

 

 한창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

,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그녀의 자태가 눈부시게 황홀했기에

우리는 무심히 휴가를 즐길 수 만은 없었다네.

 

바시아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손을 꼭 잡았네.

순간 나는 생각했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리라.

-당분간 여기 오지 마.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올 거래.

 

과부인 아크네슈카만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반겼네.

 

 

[출처] 말 이 화 나 Vol.6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인과 작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하석 시인  (0) 2011.11.11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Transtromer)  (0) 2011.10.08
조향 (趙鄕)   (0) 2011.09.02
자크 데리다  (0) 2011.08.17
앙드레 브르통   (0) 201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