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이 없는 밤 / 이장욱
별들은 우리의 오랜 감정 속에서소모되었다
점성술이 없는 밤하늘 아래
낡은 연인들은 매일 조금씩 헤어지고
오늘은 처음 보는 별자리들이 떠 있습니다직녀자리
전갈자리 그리고
저기 저 먼 하늘에 오징어자리가 보이십니까?
오징어들,오징어들,
밤하늘의 오징어들,
말하자면 새벽 세 시의 아파트에서
밥 말리를 틀어 놓고
혼자 춤추는 남자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개들이 고개를 들고우우우 짖는 밤에
말하자면 빈 그네가 쇠줄 끝에서
죽은 아이처럼 흔들리는 밤에
말하자면 별빛 같은 집어등을 향해 나아가는외로운 오징어들의 밤에
그런 밤에, 별들은 어떻게 소모되는가?오징어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새벽 세 시의 지구인들과 함께
음악도 없이
점성술도 없이
보이지 않게 이동하는 은하수
이장욱 1968년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이 있다.몹시 외로운 날에는 뼈가 물렁해진다. 나는 출렁이고 흔들리고 깜박인다. 새벽 세 시의 아파트에서 밥 말리를 틀어 놓고 혼자 춤추는 남자도 나처럼 몹시 외로운 지구인일 것이다. 그의 춤은 오징어처럼 척추 없이 아아아 흐느낀다. 외로운 지구인들이 고개를 들고 우우우 짖을 때, 지구인들의 오랜 감정 속에서 별들은 어떻게 소모되는가. 지구인들의 오랜 감정 속에서 별들은 생산되는가.
이보게, "별들은 우리의 오랜 감정 속에서 소모되었다"네. 그래서 별들은 신화를 잃고 꿈을 잃고 예언을 잃어버렸네. 그렇게 다 잃어버렸는가. 오늘은 "점성술이 없는 밤". "점성술이 없는 밤하늘 아래", 지구인들의 사랑은 시들시들해 보인다. 연인들의 사랑은 더 이상 차오르지 않고 조금씩 기울고 조금씩 낡고 조금씩 희미해진다. 지구인들의 허약한 사랑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물살에 그저 그렇게 닳고 낡고 지워지는가.
그러나 오늘은 몹시 외로운 날, 몹시 격정적인 날, 내 뼈가 시리도록 떨리도록 물렁해지도록. 나는 출렁이고 흔들리고 깜박인다. 새벽 세 시의 아파트에서 밥 말리를 틀어 놓고 혼자 춤추는 남자도 출렁이고 흔들리고 깜박인다. 아아아 오늘 밤하늘엔 한 지구인의 오랜 감정이 신생 별자리를 생산하는가. 오징어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외로운 연인들은 어느 별, 어느 별에 떨어져 있는가. <김행숙>
진한 어둠 속 별을 보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별 별 생각을 다 한다. 하긴 나 같은 사람도 그 중 하나다. 작년 겨울 오밤중에 일어나 글쓰기를 할 때 나는 곰팡이 피고 싹이 난 감자에서부터 옆 사람의 손금에까지 별이 떴다고, 방안이 온통 별천지라고 오도방정을 떨었던 경험이 있다. 억만년 전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별들조차 시인의 마음 안에서는 혹여 소모품일 수도 있겠다. 소모된다, 별이 잡힌다, 별이 멀리 사라진다, 할 때의 동작들은 모두 허상, 자칭 우주의 주체자라고 하는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 시가 매력을 주는 까닭은 환상이, 그 관념이, 하늘이 아닌 지평선과 닿아 있다는 점이다. 외로움을 붉은 색 현실을 푸른색이라고 가정하자면 바다의 집어등은 별의 리얼리즘, 살아있는 환상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의 한 장면을 떠올리거나 동해 위 오징어배가 떠 있는 새벽바다를 본 이라면 그 불빛이 생계를 위해 망망대해로 떠나는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나아가 수평선에 걸린 별빛일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할 거다.
무위자연의 달인이라 불리운 폴리네시아인들. 그들에게는 쇠붙이라는 것도 나침판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콜럼버스보다 수백 년 앞서 북아메리카 대륙의 3배나 넓은 대양을 정복한 위대한 해양민족의 노래가 있다. 그들은 천문에도 능통해 별자리가 언제 어느 위치에 있는지 꿰뚫었다. 구름에 반사된 빛으로 수평선 넘어 섬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새가 나는 모습만 보고서도 새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본능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외로운 건 별이 아니다. 새벽 세 시도 밥말리도 홀로 추는 춤도 우우우 우는 개들도 빈 그네도 아니다. 시의 상징적 언어에 전도된 독자들은 우물 속 자기 투영체에 놀라 외로움마저 손사래를 치지만 정작 시인은 죽은 감각의 지구인들에게 탁류의 은하수 길에서 빠져나오라고 종용하고 있는 중이다. 정직한 소모에 대하여 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별이 어떻게 소모되는지 당신이 직접 바닷가에 앉아서 집어등 불빛을 노려보라고, 온갖 외로운 시어들을 외출시킨 시인, 그러나 자신은 정작 춤추며 웃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와 시인과 별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감상이라 해도 그렇다. <오정자>
겨울 원근법 / 이장욱
너는 누구일까?
가까워서 안 보여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네
바위를 부수는 계란과 같이
사자를 뒤쫓는 사슴과 같이
근육질의 눈송이들
허공은 꿈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네
너는 너무 가까워서
너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
드디어 최초의 눈송이가 된다는 것
점 점 점 떨어질수록
유일한 핵심에 가까워진다는 것
우리의 머리 위에 소리 없이 내린다는 것
나는 너의 얼굴을 토막토막 기억해
네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스쳐갔을 때
혀를 삼킨 입과 외로운 코를 보았지
하지만 눈과 귀는 사라졌다
구두는 태웠던가?
너는 사슴의 뿔과 같이 질주했네
계란의 속도로 부서졌네
뜨거운 이야기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가까운 눈송이와 먼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나는 겨울의 원근이 사라진 곳에서 너를 생각해
이제는 아무런 핵심을 가지지 않은
사슴의 뿔이 무섭게 자라나는
이 완전한 계절에
겨울 하늘,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발을 보았는가. 이 시속에도 계절의 극치인 그런 눈발이 내린다. 이 시는 지난 추억의 밑그림만을 단순히 그려주지는 않는다. 이 시속에서 시인의 독보적인 화법과 예민한 사고와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다보면,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겹쳐지는 판타지적인 중첩된 그림 한 폭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시에서 우리는 ‘근육질의 눈송이들’을 경험하고 ‘사슴의 뿔’처럼 자라나는 삶의 편린들이 순차적으로 융합되는 쉬르리얼리즘의 상상의 세계에 함께 동참하게 되리라. <신지혜>
시인은 폭설을 이야기 하고 나는 안개를 말하고 싶다. 폭설과 안개의 공통점은 무조건 삼켜버린다는 점 그리고 잠시 착지한다는데 있다. 눈과 물방울의 입자들이 흩어졌다 합쳐진다. 정확히 보면 그들은 단순한 복수 개념이다. 렌즈의 조절에 따라서 착시의 거리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 사이의 유희하는 언어들은 독자의 마음에 따라 폭설도 되고 짐승도 되고 찾고자 하는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겨울의 원근이 사라진 곳, 아무런 핵심을 가지지 않은, 이 부분에 걸려 신지혜시인은 그를 읽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마음의 열쇠로 열 수 없는 문은 세상에 더 이상 없다고 말한 적 있는 신지혜의 파란대문을 통과하면, 이후의 세상에는 안개 아니면 위에 폭설이 가득할까. 물론 그 땐, 하나 둘 셋 숫자도 사라지고, 안개니 폭설이니 하는 이름의 개념도 없는 그런 가상현실의 세계일까.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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