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rand Russell
영국 출생. 40세 중반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수학·수리철학)를 지냈다. 저서로는 「독일사회민주주의론」, 「자유인의 신망」, 「라이프니츠 철학」, 그리고 그의 필생의 역작인「서양철학사」 등이 있다. 사회활동도 활발하여 제1차 세계대전 때 반전 주장 및 그의 실천으로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그 후 재야 사상가로서 사회 모든 분야에 관한 저술 및 그에 대한 실천을 하였다. 핵무기폐지 운동가로도 유명하다.
Russel은 결혼 후의 연애에 관하여 다음 같이 개방적으로 주장했다. 결혼 후 연애에도 남편이나 아내는 질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당시의 세상의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용기를 토로했다. (19세기의 민족주의의 잔영이 아직 판치던 제1차 세계대전하의 유럽에서 제정신으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여간내기가 아니란 증거다.) 물론 그는 이혼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자녀가 불행하게 되지 않도록, 그 자유연애에 있어서, 마땅히 자제할 선을 한정하였다.
그러나 이념과 현실은 어긋나는 법이다. 두 번째 아내인 도라와 결혼한 후에도 부부는 서로 자유 연애를 실천했다. 그런데 그의 처 도라가 지켜야 할 자제를 소홀히 하여 그만 러셀이 아닌 남자의 아이를 출산하였다. 선을 넘지 않도록 자제한다는 주장이 이처럼 아내의 배반으로 파괴되자, 러셀은 부득이 이혼소송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또 남았다. 러셀은 자기의 의무를 다했지만, 도라가 상대 남자와 자제하지 않은 까닭에 세상에 나와 버린 자식의 운명은 어찌되는가.
1936년, 54세의 나이로 패트리셔 스펜서와 세 번째 결혼을 하고 가족 동반으로 도미하였다. 컬럼비아대 등 각 대학에서 교수직을 지내며 6년간 체류하다가 1944년 귀국하여 모교 케임브리지대의 교수가 되었다. 1948년엔 패트리셔와 별거하고, 1950년 노벨 문학상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78세에 세 번째 부인인 패트리셔와 이혼하고 미국인 에디스 힌치 여인과 결혼했다. 1950년 컬럼비아대에서 강의할 무렵 에디스는 근무하던 대학을 퇴직하고 뉴욕에서 거주 중이었다. 그러던 그가 영국으로 귀국한 러셀의 뒤를 따라 런던으로 왔다. 러셀의 나이 78세,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녀와는 1952년에 정식 결혼, 이 결혼을 위해 3번째 아내 패트리셔에게 위자료를 지급했다. 1만 1천 파운드. 당시 환산으로 1억 1천만원 가량이었다. (이보다 2년 전 노벨 문학상으로 받은 상금이 환산하여 약 1억원이었다.)
일개 인간으로서, 그 나이로서의 격렬한 열정은 (좀 수상한 의미로서도) 놀랍다. 80세에 네 번째 결혼을 한 러셀은 1년 후, 장남 존(두 번째 아내 도라와의 사이에서 50세 후에 얻은 아들)의 가족을 데려와서 런던에서 동거하였다. 그 때까지 북웨일즈에서 거주하던 러셀은 일부러 런던에다가 4층 건물을 매입하고 이사해왔다. 그리고 이 건물의 1, 2층은 장남 가족에게 거주하게 했다. 그것은 통상의 근무를 그만두고 저술가가 되려고 하는 장남에게 편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장남은 어린 자식을 셋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장남 내외는 그들 자식들을 집에 버리고 어디론가 모르게 야반도주해 버렸다. 결국 세 어린 손자들의 수발은 늙은 러셀 부처가 최후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핵 반대 운동이나 재혼,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에 대한 애정 등 어떻게 보면 만년의 아인슈타인 생애와도 공통되는 부분이 많은데, 적어도 절륜한 남성의 파워 면에서는 세기의 대천재도 이 영국의 지성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할 것 같다.
* 참고서
1. 市井三郞, Bertrand Russel. 1980. 人類의 知的遺産 66, 講談社
2. 河上壁全集 9, 岩波書店. 1982
3. 장경학, 법철학.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이자 논리학자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여겨진다.
노력과 체념 (effort and resignation)
실제로 과업을 수행할 때 능률은 거기에 쏟는 감정과 비례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능률을 저해하는 경우도 있다. 일을 할 때는 전력을 다하고 반면 그 결과는 운명에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체념의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는 절망에 뿌리 박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희망을 달성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체념이다. 절망에 뿌리 박은 경우에는 자기의 내면적인 실패를 감추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건, 그는 기본적으로 불행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희망으로 인해 체념을 하게 된 사람은 이와는 전혀 달리 행동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죽음에 의해서 패배 당할 수 있고, 또는 적에게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체념은 행복을 정복하는데 있어 피할 수 없는 불행에 대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고 피할 수 있는 불행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피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지장이 된다면 그것을 단념해 버리는 것이다. 인생 대부분이 사소한 걱정거리로 형성되어 사소한 골칫거리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런 감정개입 없이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걱정과 짜증과 초조감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그런 도리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내가 앞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체념의 부족으로 인해 압도당하지 않나 싶다. 근심 걱정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은, 항상 짜증을 내고 있었던 이전보다 인생에서 훨씬 더 즐거운 일들을 찾게 될 것이다. 문명인이 되면 나름대로 자화상을 가지며 자화상이 손상 받으면 화가 치민다. 이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장의 그림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하나 갖고서 문제의 사건에 대하여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기만해야 비로소 용기가 솟아나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을 계속하기 이전에 우선 진실과 대면하여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허구의 뒷받침을 받으려는 요구는 그 일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유해한 것임을 조만간 느끼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느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익한 일의 절반은 해로운 일과 싸우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소비하는 얼마간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며, 이런 연후에 행해지는 일은 활력에 대한 자극제로서 언제나 이기심을 팽창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보다 해(害)가 훨씬 적은 것 같다. 자기 자신의 진실을 기꺼이 들여다보는 태도에는 어떤 체념이 깔려있게 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나날이 더욱 더 믿을 수가 없게 되는 일을 믿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피로하고 화가 치미는 것은 없다. 이러한 노력을 버리는 것이 확고하고 영속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버린다. 나는 극단적으로 자극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정한 양의 자극은 건강에도 이롭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제는 그 양에 있다. 자극이 너무 적으면 병적인 갈망을 자아내고, 너무 많으면 심신을 황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느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훌륭한 책들도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종일관 재치가 넘치는 소설은 훌륭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위인들의 생애 역시 몇몇 위대한 시기를 빼놓고는 흥밋거리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때때로 연회를 즐겼고, 독약의 효과가 퍼져나가는 동안에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상당한 만족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크산티페와 함께 조용히 지내면서, 오후에는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산책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칸트는 평생 동안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6km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윈은 세계일주를 한 뒤 남은 생애를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몇 차례의 혁명을 선동한 뒤 여생은 대영박물관에서 보내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조용한 삶이 위인들의 특징이며, 위인들이 누렸던 기쁨은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흥미진진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끈질긴 노력없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지나치게 잦은 여행을 하고 지나치게 다양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성과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견뎌야 하는 지루함조차 참지 못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깊은 곳에 자리잡은 죄의식이다. 이런 죄의식은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의식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의식 속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죄라고 단정하게 되는 행동들이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까닭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이 죄라고 단정하고 있는 행동을 삼갈 능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마음이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들만을 도덕적으로 존경한다. 그는 자신이 성자와 같은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낙담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성자의 생활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의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람은 성자의 삶은 자기 몫이 아니며,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순간이 가장 고결하다고 생각하면서 평생 동안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와 같은 죄의식은 대부분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나 유모에게 받은 도덕교육에서 비롯된다. 이 사람은 채 여섯살도 되기 전에 욕을 하는 것은 못된 짓이며, 가장 고상한 말만 써야 하고, 술은 나쁜 사람들만 먹는 것이고, 담배는 최고의 미덕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 중에 으뜸가는 가르침은 성에 대한 관심은 더럽다는 것이었다.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어머니의 애정어린 손길을 받거나 보살핌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는 죄를 짓지 않았을 때만 그런 애정어린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나 유모가 마땅찮아 하는 행위들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도덕적 규칙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것을 거역했을 경우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차츰 잊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그 도덕적 원칙은 물론이고, 그것을 어겼다가는 큰 일이 날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성과 유아기의 우둔함 사이에서 우물쭈물 방황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안겨준 기억에 대해서 불손하게 구는 것을 겁내서는 안된다. 그 때는 당신이 약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그들이 힘이 세고 현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약하지도 않고 무지하지도 않다. 지금 당신이 할 일은 그들이 가진 외견상의 힘과 지혜를 신중히 검토해서, 당신이 그들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표하고 있는 존경심이 과연 그들에게 어울리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인습적인 도덕을 가르친다고 해서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는가? 흔히들 말하는 도덕군자의 모습 속에는 얼마나 많은 미신이 투사되어 있는가?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진짜 해로운 행위들인가? 우리 사회가 어리석은 금지사항을 동원해서 온갖 가상의 도덕적 위험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면서도, 성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실재하는 도덕적 위험들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러셀의 <행복의 정복>中.
20대에 잠간 들었던 철학자 러셀(그땐 동양철학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스크랩을 하다 보니 러셀이 이름인지 버트런드가 이름인지 헷갈린다. 용감하지도 못하면서 무식하다. 하기야 이스라엘에 가면 지금도 '예수'란 이름이 수두룩하다니(우리나라 철수 영이처럼), 러셀이 가수야 영화배우야 미셀 형이야 할 수도 있지 않나?.... 한 수 더 떠서 이렇게 말하면, 무식으로 새끼 꼬는 일. 거기까진 나도 안다. 사실 행복은 사랑이란 단어만큼 회피하는 거라서 러셀이든 버트런드던 책제목부터 이미 취향이 아니다 란 선입견을 두었다. 일회성을 띤 행복한 정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행복이가 뭘 또 새롭게 정복했단 얘긴지, 행복을 정복하러 가는 길 자체가 그저 행복했단 얘긴지. 일주일을 미뤘다 오늘에서야 무슨 생각에선지 들춰본다. 게으른 인터넷 독서지만 좋은 책이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책 권하던 이에 대한 작은 예우禮遇로서의 검색이었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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