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상상력과 흙냄새 가득한 생명력으로 전세계 시독자들을 매료시킨 스페인과 중남미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해설서가 나왔다.
고려대 閔鏞泰교수가 펴낸 「로르카에서 네루다까지」는 스페인문학전공자인 저자가 가장 실험적인 시를 개발하고 고전화한 이들 시인들이 구축해놓은 호젓한 시의 숲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는 책이다.
지난 16세기 대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은 중남미 각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쳐 그 시대 세계시는 스페인어로 씌어졌거나 스페인시풍을 모방한 것들이 주류였다. 그후 20세기 들어 스페인 문학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알레익산드레,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호세 셀라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잇따라 배출하면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은 스페인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헤라르도 디에고, 페루의 세사르 바예호 멕시코의 라몬 로페스 벨라르데, 호센 후안 타블라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올리베리오 히론도, 쿠바의 마리아노 브룰, 칠레의 비센테 우이도브로, 파블로 네루다 등 10명.
"웅덩이의 표면에/ 집시아가씨가 떠돌고 있었지./ 파란 살결, 파란 머리칼,/ 차가운 은빛 눈동자,/ 달빛 한줄기 고드름이 되어/ 그녀를 물위에 떠받고 있는데/ 밤은 그녀를 에워싸고/ 자그만 안방 마루처럼 아늑하게 감쌌지"
떠돌이 집시청년의 죽음과 그를 기다리는 집시여인의 불행을 이야기체로 풀어낸 로르카의 <악몽의 로맨스>이다.
閔씨는 로르카 문학의 성공비결은 독창적인 이미지와 시어의 사용과 함께 우리의 恨에 가까운 비극에 있다고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임을 가르친다. 숲과 골짜기에 물이 흐르고 폭포가 있듯이 지극한 생명의 숲에는 핏물이 고인다. 생명이나 사랑은 그 자체가 죽음의 알을 품고 있다"
로르카에서 시작된 중남미 문학에로의 여행은 일상어를 시어로 끌어들여 꿈과 사랑으로 가득찬 낙원과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바예호, 멕시코 특유의 시골냄새로 가득한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진한 에로티시즘으로 묘사한 벨라르데, 문명적 이미지와 자연적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일상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아이러니를 들춰낸 히론도로 이어지고 그 발길은 다시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이미지와 언어의 실험을 통해 순연한 사랑을 노래한 디에고와 우이도브로, 타블라 등을 거쳐 페루의 네루다로 이어진다.
찬란한 꽃을 피운 잉카와 마야문명의 후예들의 소박한 삶과 소망, 고뇌의 대서사시를 엮어나간 네루다.
대학 2학년때 청계천 고서점에서 네루다의 「스무 한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처음 구해 읽었다는 閔씨는 "내 시 정도가 아니라 내 간肝을 빼갔다"고 회상했다.
한편 해설서이지만 외국문학에 상대적으로 인색했던 창작과 비평사가 단행본으로는 처음 해외문학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출처: 서울=연합(聯合)뉴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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