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本來無一物

미송 2012. 6. 7. 07:41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과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는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 임을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건

자체에서 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 관념 때문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 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 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

돌이키는 회심(回心)의 작업은

정신 위생상 마땅히 있음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 버리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있을 뿐이다.

 

울타리가 없는 산골의 절에서는 가끔 도둑을 맞는다.

어느 날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내방했다.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엘 다녀오다가 뒤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놓고 일어나려다 말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은 선가(禪家)에서

차원을 달리해 쓰이지만 물건에 대한 소유 관념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 그 밤손님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 법정 스님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명경 또한 대가 아니더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티끌이 일까

 

 本來無一物 : 본래 실체 있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음이요,

    一切唯心造 : 일체가 오로지 마음이 만든 것이요,

    三界自心幻 : 욕계 색계 무색계가 스스로의 마음의 환영이다.

 

    無我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

 

 

本來無一物, 중국 선종(禪宗)의 6대 조사 혜능(Huineng, 慧能)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본래 한 물건도 없었다, 본래 실체 있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즉, 그 어느 것 하나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無我 사상이다. 이토록 답(答)이 명확한데 사람들은 왜 꾸준히 고민하고 남까지 채근하려 들까. 

 

사람은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수순만 바뀔 뿐 그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DNA속에 저장된 생각이나 버릇(習氣)은 수억 년의 이끼 같은 업장業障이라서 그 아뢰야식을 펼쳐 보면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소위 ‘꼴값’이라는 인간의 행동양식....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모든 것이 꾸준히 변하고 있다. 실체를 지우고 있다. 저절로 지워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실체가 있다 없다 말하고 있는가. 그것을 지워야 한다고 숙제를 내고 있는 중인가. 아니다. 혜능은 분명 本來無一物이라 했다. 지우려고 애쓸 나도 없고(無我) 마르고 닳도록 닦아야 할 실체로서의 대상도 없다. 

 

붓다는 '언제든 물어 보렴' 하며 격려激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