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연수<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미송 2012. 6. 8. 07:33

 

 

 

 

이 소설을 길잡이 삼아 재동, 가회동으로 얽힌 골목길을 걸었다는 일본 독자분이 있습니다. 한 나무를 이토록 깊이 사귀었으니 재동 백송은 김연수의 나무입니다. 낯선 곳에 새로이 몸을 의탁하면 ‘나의 나무’를 찾아 마을 배회하는 버릇이 생긴 지 오래됩니다. 사람 설고, 물 선 곳에서 음나무나 느티나무, 소나무 고사목 주위를 배회하다보면 꼭 나무처럼 유서 깊은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몇 마디 나누고 나서는 그곳 사람이 되고는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차령 이남에서나 자라던 대나무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고향 멀어 동백 소식 궁금할 때면 광화문 교보빌딩 실내정원에 앉기도 합니다. 보라매공원에 빗자루같이 꼿꼿이 선 미루나무는 옛길 신작로의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서강대 하비에르관 뒤뜰 언덕바지를 덮은 시누대(해장죽)에 흐르는 바람소리는 또 어떤지요. 이맘때 시립대 낡은 전정관 앞에서 보랏빛 꽃으로 물큰하던 정향나무 안부도 궁금합니다. 올 장마에는 우산 받쳐들고 나무 한 그루 찾아 나서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전성태 소설가>

 

 

 

 

정향나무꽃

 

소설 한 두 페이지만 넘겨도 우리는 나무이름이랑 나무꽃 모양이랑 나무가 사는 곳까지 구경을 하게 되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서, 이렇듯 금세 느끼며 고갯짓하는 것이 직접 한 번 보는 것과 비교가 될 순 없겠지만, 몰랐던 나무꽃을 검색하여 보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꽃가지 사이에 거미줄 보이는 군요. 사진작가들은 민감해요. 꽃들은 거의 비슷한 거 같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다르죠이런저런 꽃들을 달고 있던 나무들이 점점 녹음에 싸여 초록세상을 꿈꾸는 유월. 그런 시간들을 또 육백년씩이나 겪었던 나무는 정말, 장난꾸러기나 농담쟁이는 아니겠죠. 만만의 콩떡인 냥 나무를 가지고 농담을 하는 우리도 실은 열등감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물큰한 도전을 느낄지도 몰라요. 우리가 흔히 나무 아래에 누워 '나무가 이번 봄엔 이발을 했네' '팔 다리가 더 축 늘어졌어' 하며 말을 걸곤 하지만, 나무는 속구어낸 머리카락 사이로 하늘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뿐이죠. 가령, 허리가 S자로 휜 노송을 만날라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니, 이게 그냥 농담이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