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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미송 2012. 7. 18. 18:49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김효정 옮김
까치|248쪽|1만2000원

페르난두 페소아(Pessoa· 1888~1935)라는 이름이 있다. 포루투칼 리스본 출신의 시인. 국내에는 낯설지만, 미국의 평론가 헤럴드 블룸이 파블로 네루다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았던 이름이다.

'불안의 책'은 시인의 대표작. 소아레스라는 자기의 분신을 화자(話者)로 설정하고 쓴 고백체 일기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묘한 불안감. 다중 인격을 지닌 것처럼, 페소아 아니 소아레스는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렇듯 '분신술'을 쓰고 있는 소아레스의 발견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요약하면 단조로운 삶에서 찾아낸 행복 혹은 경이. 관찰 대상은 40년 동안 한 주방을 지킨 단골 레스토랑 요리사다. 그가 조리대 너머에서 짓는 미소는 위대하고, 엄숙하며, 흡족해 보인다. 그는 꾸미지 않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 그가 이런 행복을 느낀다면, 정말 행복한 것이라고 소아레스는 결론 내린다. 교훈은 이것이다.

존재를 단조롭게 하라. 그래야 사소한 변화가 생겨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요리사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궤변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 대부분에게 행복은 추상적 이념보다 이런 구체적 일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공간에 어떤 미래의 모습을 세우려거나
너에게 내일을 약속하지마, 리디아
너에게 달려있는 오늘, 기다리지 마

네 자신이 네 삶 그 자체

너는 운명이 아니다 그 어떤 미래도 아니다

누가 알아, 컵의 그 빈 사이,

그리고, 다시 채워진 그 것, 네가 심연에

끼어든 행운이 아닐런지? 

 

1923, Ricardo Reis (Fernando Pessoa)

 

 

시인이 된다는 건 내겐 야망이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방식이다.

 

- Fernando Pessoa

 

 

 

살아가기를 강요했던 이 권태로움

나는 결코 깨어난 적이 없었다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내가 살 때 꿈을 꾸지 않는지, 내가 꿈을 꿀 때 살고 있지 않는지, 꿈과 삶이 내 안에서 섞이고 교차한 것은 아닌지, 인식하는 내 존재는 그 둘이 서로 스며들어서 생겨난 것은 아닌지를 모르겠다.

 

다른 모든 이에게와 마찬가지로 내게도 나 자신에 대한 명철한 통찰력을 안겨주는 활기찬 삶에 가끔 빠져들면서도, 이상한 의심의 감정이 스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를 더는 모르겠고, 내가 다른 어떤 이의 꿈일 수도 있을 거라 여겨진다. 신체적으로 아마 나는 기나긴 문체의 파도가 치는 대로, 장대한 이야기 속에 모조리 만들어진 진실 속에서 움직이는 소설의 등장인물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 중 어떤 이들은 친구나 아는 사람, 눈에 보이는 실생활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의 얘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전혀 갖지 못할 뚜렷한 입체감을 띠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꿈꾸고, 마치 작은 상자가 더 큰 상자 안에 들어 있고, 큰 상자는 더 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꿈과 소설이 차곡차곡 겹쳐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은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영원한 밤 동안 거짓말로 이어지는 천일야화같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터무니없어 보인다. 내가 느끼면 모든 것이 이상해 보인다. 내가 원하면 그것은 내 깊은 곳에서 이질적인 어떤 것이 된다. 나는 내 속에서 어떤 행동이 꿈틀거릴 때마다, 문제가 되는 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꿈꾼다 해도 그 꿈은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것 같다. 내가 느낀다 해도 다른 사람이 내게 감정을 그려놓은 것 같다. 내가 원한다 해도, 마치 배달 상품처럼 자동차에 실리고, 자발적이라고 믿는 운동을 통해 도착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원했는지 몰랐던 장소로 운반되는 듯하다.
  

모든 것이 어찌나 혼란스러운지! 정말이지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나으며,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낫다! 내가 본 것 때문에 과오를 범하게 되더라도 나와 그다지 상관없다. 내가 읽은 것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썼다는 것을 후회하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아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의식의 두 번째 분열을 인지하는 영적 존재다. 따라서 완전히 의식하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괴로워진다! 눈부시게 찬란한 날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기, 느끼기, 그리고 간격을 두고 놓여 있는 장식물들 사이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세 번째 행동은 무엇인가? 저녁놀의 지겨움, 단정치 못한 옷차림, 접혀 있는 부채들, 그리고 살아가기를 강요했던 이 권태로움…….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책' 中 

 

 

 

 

 

인간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나는 그것이 동물의 삶과 다른 점을 찾지 못하겠다. 인간과 동물 모두 짬짬이 즐거운 일들을 누리며, 날마다 똑같은 생물학적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 둘 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생각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살지 않는다. 고양이는 햇빛에서 뒹굴거리고 나서 잠을 자러 간다. 사람은(그 삶이 얼마나 복잡하든) 삶에서 뒹굴거리고 나서 잠을 자러 간다. 둘 다, 본성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을 한껏 활용하되,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온전한 정신을 주리라는 환상에는 굴복하지 않는 삶. 평화를 추구하되 전쟁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은 갖지 않는 삶. 자유를 추구하되 자유라는 것이 무정부주의와 전제주의 사이에서 잠깐씩만 찾아오는 가치라는 점을 잊지 않는 .

 

동물들은 삶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런데 자기모순적이게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삶의 목적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中 '페소아의 글' 

 

 

*호모 라피엔스는 현생 인류를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에 '약탈하는'이라는 뜻의 rapacious로 바꿔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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