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최승철<봄밤이라는 쿠키파일>

미송 2012. 8. 12. 12:48

 

 

 

봄밤이라는 쿠키파일* 1

 

썰물 빠져나간 해변에 열기 뜨거운 콜라 병이 박혀 있다 모니터가 뜨겁다 아름다운 봄밤인데라는 문장을 읽을 때

예수의 마지막 외침 “엘리, 엘리!” ‘주(主)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문장이 겹쳐졌다

 

와이파이를 켰다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등받이가 깨졌다

뚱땡이 놈!

 

혼자 쓰러진 저녁 울지 않았다

애인은 술 취할 때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울곤 했다 너, 어디 가니? 라고 물었다 어느 기억에선가

피 냄새 몰려왔다 골목을 지나가는 승용차의 경적소리 사랑아,

 

초승달이 생선처럼 파닥

소주 안주엔 새우깡

 

벚꽃이 흩날려 ‘너, 어디 가니?’가 ‘나, 어디 있니?’라고 물었다 봄밤 속의 달 골목의 휴지통에서 검은 연기 솟아오른다

 

당신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요

알라딘 ** 포인트로도 가능할까?

 

아마 봄밤 속의 달도 입술을 떼려다 다물었을 것이다 물음표 같던 마우스가 섬처럼 덩그맣게 모니터 앞에 놓여

있다

 

세탁기가 돈다 배꽃이 핀다

하늘을 빌어먹을 놈

슬픔 속에 페트(PET)병을 넣는다

 

 

* 쿠키 파일 : 인터넷 웹사이트의 방문기록을 남겨 사용자와 웹사이트 사이를 매개해 주는 정보.

** 인터넷 서점.

 

 

봄밤이라는 쿠키파일 2

 

불은 소나무처럼 제 형상을 키워 간다

주목은 죽어서 천 년을 더 산다

 

버스 유리창에 글을 쓰려고

후우 입김을 불었다

 

어느 곳 어느 자리로도 떠돌 수 없을 때

강물에 떨어진 벚꽃이 한들한들 물풀의 흐름을 매만진다

 

하트 속 바보라는 글씨

이미 누군가 써놓은 상처가 선명해졌다

 

애인이 찾아간 천상천하 유아(you are)독존(獨尊)의

별자리들 PARTNERID107%7Cfaceofff%7C001

www.sexmolca.jp 하드에 남은 발자국들

 

일그러진 꿈속의 영상

혹은 봄밤 속의 달

내부를 아프게 쳐다본다

저토록 뜨거워진다

 

이제 그대를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게 뼈아프다

오일 바른 단백질 인형?*

 

중얼거림을 참고 있다 적막 속 플라타너스는

뒤척임으로 제 몸을 부풀린다

저토록 뜨거워진 수화(手話)의 문장

 

나는 그녀의 몸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 혀나 성기까지도 진짜 사람 같은 모습을 한 인형이며 Sex Doll이라고도 불림. 식도가 있어서 음식을 먹일 수도 있고, 화장도 시킬 수 있다.

 

《문장웹진 8월호, 최승철

 

 

 

 

비가 온다 오누나 블란서의 어느 시인은 그랬나 올 거면 한 나흘 오면 좋겠다 비가 온다 오누나 얼룩덜룩해 지는 집 천정 그랬나 김소월은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그랬네 마당에 뿌린 수돗물이 비가 되어 온다 선물로 돌아온다 간 것은 돌아와 뿌리고 적신다 규칙적인 양치질을 하는 저 남자 잠시 후의 허브향 키스를 위해 착실하게 이빨을 닦네 불쌍해 블랙홀에서 구사일생한 남자는 슬퍼 보여 왜 부서질 거면 미스터 최처럼 조각 쿠키를 만들었어야지 과자 맛인지 비 맛인지 해독조차 안 되게 분열을 시켰어야 옳지 몸짓으로도 충분한 너의 고독 비가 온다 오누나 뼈아픈 조각들 빗물에 한 몸이 되어 떠내려간다 파일들 즐비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한 나흘 닷새 한 십 년 방문을 걸고 혼불을 지폈던 미스 최 그녀의 사전은 어느 서점에 가야 살 수 있나 낙타의 귓속에 모래알을 찾아 떠난 황지우 시인은 더 이상 요즘 것들과 소통을 하기 싫다고 추측이지만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 고 했던 최영미 시인은 컴퓨터를 버렸나 10년 동안 잠들었다 살아날까 상상이지만 비가 온다 마당에 뿌렸던 수돗물이 세상을 범람할까만 흘러흘러 되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러니, 한 나흘도 한 닷새도 내겐 상관이 없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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