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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미송 2015. 6. 2. 09:57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눈먼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소, 내 목소리가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

에 의지해 바라보았던 모든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거죠.

오로지 청각, 후각, 촉을 통해서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p408

 

 

 

 

눈먼 자들의 도시』는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설정된 소설입니다. 눈이 멀기 직전 교통 신호등의 둥그렇고 빨간 불의 이미지만을 간직하게 된 운전자(남자) 그의 아내, 이들을 치료하다 눈이 멀어버린 안과의사, 안과에 왔다가 눈이 먼 사팔뜨기 소년, 결막염 때문에 검은 안경을 쓰고 손님을 상대하다가 실명한 젊은 창녀, 애꾸눈으로 남은 한쪽 눈의 백내장을 치료받으러 왔다가 역시 실명한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이렇게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되요.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이 도시 전체로 확산되고 모든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유일하게,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세상을 볼 수 있어요. 그녀만이.

 

이 소설은 바로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눈이 먼 사람들은 수용소에 격리되기도 하고 그 곳을 감시하는 군인들에게 폭력을 당합니다. 그녀도 함께 있어요. 남편옆에 있겠다는 그녀의 의지로 그 수용소를 함께 가게 된거죠. 그녀는 그 수용소에서 눈먼 사람들의 무한한 이기주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짐승보다도 못한 폭력집단을 경험하죠. 수용소에서 나와서는 공포로 가득 찬 도시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 할 때에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때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머리는 생각을 하기 전에 잘라 버리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었다."

"사실입니까, 아니면 사실이 될 겁니까?"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보고 있는 것인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못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눈먼 자들의 도시] 에서는 온 세상이 하얗게만 보였다. 아니 하얗게 보인 것이 아니라 하얗게 밝은데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 아비규환의 날들 후 4년,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눈은 온전히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4년 전 자신들을 아귀로 변하게 했던 하얀 절망을 두렵게 간직한 채로 눈을 떠야 할 때와 감아야 할 때를 가늠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4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자신들만의 확신의 깃발로 사람들을 눈 멀게 하고 눈 먼 대중에게 모든 것을 내 맡기고(아비규환 속 죽음과 죽임의 책임까지도) 대중의 뒤에 숨어 하얀 막막함에 떨고 있던 무리들은 육체의 시력은 회복되었지만 바라봄의 은총은 허락받질 못했다. 

그 증거로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빨아 먹던 대중들에게 '백지투표'라는 옐로우카드를 받는다. 혼란에 빠진 그들은, 자신들만의 확신으로 닦아 놓은 길만 갈 줄 아는 그들은, 갈 길 몰라 헤메이며 입벌린 절망의 아구 속에 제물로 던져넣을 희생제물인 또 다른 대중을 찾는다.    

 

 

  *채란 2012.08.18 19:07 스크랩 

 

 

 

게시일: 2012. 12. 3.

[김영하의 책읽는시간 18회]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20141003-20150602

 

자가당착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살았다는 게 산 것이 아니란 사실이 현실로 급변할지도 모르는 요즘, 아, 방독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