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우리 눈을 감자, 그리고 사랑하자.
[대담] 정호승 시인 vs 강신주 철학자
출처 - 문장웹진
▶▶ 80년 대 정호승 시, ‘서울의 예수’도 사실 처음 듣는다. 열 번째 시집 <밥값>을 냈다는 근황도 처음 듣는다. 그의 목소리가 들어간 대담 장면도 처음이다. 몇 편의 인상 깊었던 그의 시편들과 프로필과 사진들, 활자들로만 대했던 대담 한 편 정도가 그에 대한 경험의 전부이다. 시인을 안다 인간 정호승을 이해한다 하기엔 역부족이다. 동영상 앞부분 내용은 잊기로 한다. 단, 끝부분에 가서 마지막 질의자의 목소리가 역력하게 남는다.
기록하자면; ‘나는 그녀의 질문에 동의한다’. 시인도 평범한 사람이고, 가족을 책임지는 생활인이고, 늙어가면서 변해가는 것 역시 사실이고, 그러므로 시는 시궁창에서 피어난 수련睡蓮이란 사실도 맞다. 그렇다. 나도 생각한다. 불만이 들어도 사실은 인정한다. 다만 마지막 질의자의 물음에 답변하는 정호승 시인이나 강신주 철학자의 변호(사실 나는 이 철학자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J에게 슬쩍 물어보니 40,000원 내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 상당히 인내심을 요구하였다, 돈이 아까웠다, 가 그의 결론)가 맘에 안 든다. 주워듣기만 한 것들, 근거없이 내돌렸거나 나돌고 있는 정보들은 내게도 역시 무효하다. 그러나 잠간이지만 대담 동영상을 통해, 시인(그것이 無名의 자유를 누리려는 자가 아닌 본의든 아니든 이미 유명해진)이라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배에 기름끼 끼는 일이란 비판적 생각이다. 누가 말했던가, 살찐 돼지가 되어져 감을 심히 두려워하라고. 잡아먹힐 테니까. 질의자의 정곡에 대해 ‘당신도 늙어 봐….’ 하는 강신주의 옹호적 태도는 내 시각에선 상당히 어벙하다. 심하게 말하면, 어벙이나 어리버리를 넘어 놀라운 폭력이다.
아무튼, 대담을 들은 시간까지 아깝진 않다. 이벤트성 무대적 한계는 있겠지만, 그들은(유명시인과 설치지 않아도 될 철학자) 좀 더 솔직한 답변을 했으면 어떨까 싶다. ‘죄송합니다...늙어 가자니 배에 기름끼가 자꾸 끼네 여….’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