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언젠가 터질 울음처럼 / 성기완
나의 슬픔은 무한히 커져 가고 당신이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초끈의 피라미들이 진저리를 치며 그걸 지웁니다
나는 주름으로 결로 지금 이 찰나에도 다시 태어나 우주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노래합니다
떠나시다니요 떠나시다니요
천만번 약속하고 떠나시다니요
당신은 우주를 폭식하고 나는 삼다수를 마시고 당신은 나의 부레와 아가미를 마침표 안에 가두고 나는 은하수 긴 머리칼을 자르고
당신도 알까요 내 사랑은 왠지 허덕여 왔어요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난 당신이 그리웠어요 사막에서 눈물을 훔치며 별을 봐요 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지 않고 꼭 우리에게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모든 별자리마다 허기진 음악이 태어나고
그 소리가 태초의 먼지를 잠 깨울 때 별들은 진동하며 목을 놓아요
돌이킬 수 없는 걸 돌이키려 하진 않겠어요 블랙홀 언젠가 터질 울음처럼 당신의 검은 입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내 문장들을 놔둘 거야
이 깊은 잠을 건널 거야 난 당신의 무한 질량을 이기고 거울로 새로운 브랜드의 핑크 쿼크로 순수한 떨림만이 있는 에너지로 다시 태어날 거야
들어 봐요 당신도 나도 없어지고 백억 년 후에 연주될 내 음악 속에서 잠자는 봄날의 대폭발을
사건의 지평선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는 시인이 있다고 하자. 다가가면 갈수록 중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하는 시인의 시계는 느리게 갈 것이다. 즉, 시인의 시간 간격은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관측될 것이다. 시인이 드디어 사건의 지평선에 이르면 우리들은 시인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으로 관측하게 될 것이다. 시인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블랙홀 속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갈 테지만, 정작 우리들은 그 장면을 목격할 수 없을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는 빛조차도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결코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시에 있어서 마침표란 곧 사건의 지평선이 아닐까. 그래서 일까 아니면 미련 때문일까. 시인은 결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무한히 빨려 들어가면 결국은 없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거기서 슬픔의 파장이 파닥거리고 그 파닥임의 초끈은 다시 대폭발로 이어진다.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하나의 문장이 죽는 심연을 마주 대한다. 그러나 그 심연을 건너 다음 문장이 터진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을 위해 나를 바치니 당신은 나의 블랙홀. 헤어짐이 탄생하고 헤어짐에서 새로운 시간이 폭발한다. 한용운 선생의 시구대로 "이별은 미의 창조"다. 빨려 들어가고 가득한 분비물로 터져 다시 태어나고. 그것이 우주의, 사랑의 운동 방식이다.
성기완은 1967년생.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 <유리 이야기>, <당신의 텍스트> 등.
2009년 겨울. 시집<별은 시를 찾아온다>를 창비로부터 받았던 거 같다. 구독자 연말 선물로 그해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랑 <별...>을 받았던 기억인데 좀 가물하다.
우연한 아침, 저것이 시였나 산문이었나 곱씹다 보니 시구나, 시다, 싶다. 신기하지, 곱씹을수록 시는 시 맛이 우러난다는 것이. 그런데 시 아랫 글은 누가 썼던 것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도 못 찾겠다. 감청색 표지에 은박지색 별이 박힌 시집이 어딨지. 허리를 90도로 돌려 책꽂이를 살피니 바로 눈에 드오는 별. 93쪽에 인쇄된
별이 잘 살고 있다. 감상자는 서동욱씨다. 한 사람이 애인에게...어쩌구저쩌구로 시작한 감상. 그렇담 대체 저 군더더기 덧글은 누가 쓴 걸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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