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황동규 < 꽃의 고요>

미송 2013. 3. 24. 08:15

     

     

     

     

    꽃의 고요 / 황동규

     

    알고 지는 바람 따라 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
    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
    ‘노래하며 질 수도……’
    ‘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
    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
    ‘음, 후렴이 아닌데!’

     

     

    “꽃의 고요”, 무음(無音)은 고독이 없다면 들리지 않는다. 고독은 있음과 없음, 웃음과 울음이 지닌 헛된 분별들을 벗어나게 한다. 즉, 황동규 시인에게 고독이 떠남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도 무용한 정열의 다른 표현이듯, 고요 역시 이러한 삶의 동요로부터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꽃은 바로 이 의미와 무의미, 동요와 고요가 조우할 때에만 하나의 꽃으로 현현된다. '꽃의 노래’는 언제나 이미 그것의 ‘사라짐’과 공속(共屬)한다. 우리는 이것이 고독이 주는 깨달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진숙 평론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만 나면 코스처럼 문학 사이트를 돈다. 엉덩이를 깔고 목을 빼고 읽는다. 이것저것 읽고 또 들여다보는 이유는 뭔가를 깨우치기 위함일 테지만, 어젯밤엔 왕짜증을 냈다. 절망감을 느꼈다. 세 시간씩이나 순례에 공公을 들였는데 왜 한 편의 글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 거야, 그동안 무슨 변혁이라도 일어난 거야, 투덜댔다. 읽기를 포기하던지 쓰기를 포기하자! 결심했다. 그러나 결심과 상관없는 엉뚱한 꿈만 꾸다 깨었고, 나는 또 어젯밤에 이어서 사이버책장을 연다. 못 말리는 할줌마 고집처럼 뭔가 단단한 진을 치고 있나, 내 속에 오기들이. 아무튼, 자고 깨어 습관처럼 읽는 노래의 가사들이 부디 가까이 닿길 소원한다. 모든 노래에 감동이 사라졌어! 노상 칭얼대지만 사실 난, 누구보다 당신들의 노래에 울고 웃고 싶어 하는 철부지 꽃, 고요와는 거리가 좀 있는 초년의 새싹, 또, '꽃의 노래' 후렴부의 고요를 동경하는 시끄러운 범인(凡人)이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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