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기쁨

나무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미송 2013. 9. 9. 18:15

 

종이 1톤을 만드는 데 98톤의 각종 자원이 들어가고(추출), 티셔츠 한 장에 필요한 면화를 얻는 데 물 970리터가 들어가고(생산), 거대 화물선이 지구 반대편으로 턱없이 싸게 값이 매겨진 물건들을 운송하면서 내놓는 독성 폐기물은 바다를 오염시키고(유통), 11조 경제 규모에서 3분의 2가 소비재에 쓰이고(소비), 이 대부분의 물건이 매립장으로 가기까지(폐기), 단계별로 숨겨진 어마어마한 비용과 소비사회의 문제점을.....   

 

 

나무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나는 책장 가득 책이 있다. 내 방 한쪽 벽면 전체가 책이다. 부엌 조리대에도 책이 있고, 내 딸의 책장에도 책이 넘쳐난다. 쓰지 않는 난로에도 책이 쌓여 있다. 책은 내가 사물과 맺는 관계에서 희한한 위치를 차지한다. 새 옷이나 전자제품을 사는 건 마음이 불편한데도 최근 추천도서를 집어들 때는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너무나 많은 물건'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함의에서 책은 면제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책에 들어 있는 창조성과 지식의 가치가 책의 발자국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책의 발자국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책이 노트북, 휴대전화기, 티셔츠보다 훨씬 많으면서도, 책이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위험보다, 노트북, 휴대전화기, 티셔츠가 미치는 위험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책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오늘날 우리는 종이가 으레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1850년대부터다. 그 전에는 대마나 대나무 들의 농업 부산물과 넝마 같은 낡은 직물로 종이를 만들었다. 요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페이퍼(종이)'라는 명칭은 파피루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파피로스papyros' 에서 유래되었는데, 파피루스 식물을 두들겨서 그 위에 글씨는 쓸 수 있게 만든 것을 의미했다.

 

종이는 중국의 환관 채륜蔡倫이 거의 2,000년 전에 오디덤불의 섬유질과 낡은 고기잡이 그물, 대마, 풀을 사용해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15세기에는 양피지에 인쇄된 책들이 있었는데, 양피지는 특수하게 처리한 양이나 염소의 가죽 또는 송아지 피지로 만들었다. 당시 성경 한 권을 인쇄하려면 양을 300마리 잡아야 했다. 이어 16세기에는 헝겊 넝마와 리넨이 종이를 만드는 섬유질의 원료로 흔히 쓰였다.

 

목재로 펄프를 만드는 대규모 공정이 개발된 것은 한참 후인 19세기 중반이었다. 이때서야 나무가 종이를 만드는 섬유질(그리고 책)의 주원료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전에 사용된 폐지를 가지고도 종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재활용이다. (오늘날 모든 책이 식물섬유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빌 맥도너의 책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플라스틱에 인쇄됐다. 그리고 물론 전자책은 아예 인쇄되지 않는다.)

 

이 수백 년 동안, 종이를 만드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섬유질을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어서 말리면, 짜잔~ 종이가 된다. 내 딸과 미술시간에 종종 하는, 낡은 종이와 꽃잎, 포장지 쪼가리를 물과 함께 믹서로 갈아서 방충망에 올려놓고 납작하게 누른 뒤 햇빛에 말리는 실습과정과 비슷하다. 네 종류의 재료만 있으면 된다. 섬유질, 에너지, 화학물질, 물.

 

하지만 목록을 이렇게 간단하게 적으면 다소 오도하는 측면이 있다. 우선 벌목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눈에 덜 띄는 형채의 벌목도 포함되는데, 자연 삼림이 플랜테이션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늘날 북아메리카에서 잘라낸 나무의 거의 절반이 신문부터 포장재, 문구류에 이르는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매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책에 나무 3,000만 그루가 들어간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나무가 26,000그루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책을 만들기 위해 센트럴파크에 있는 나무의 1,150배를 쓰는 것이다. 게다가 종이를 만드는 데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들어간다. 종이 제조업은 모든 제조업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5위 안에 든다. 또 많은 양의 물과 독성 화학물질도 들어가는데, 이것들은 섞여서 환경으로 방출된다.

 

자연림 나무, 인공조림 나무, 농작물, 재활용 폐지 등 어느 재료를 쓰든, 재료 중 일부는 쓸 수 있고 일부는 쓸 수 없다. 사용되는 부분은 섬유질이다. 사용되지 않는 부분은 목질소, 당류, 그리고 목재와 기타 식물에 들어 있는 화합물이다. 폐지를 재활용해 만드는 경우라면 목질소는 대부분 이미 제거된 상태지만 잉크, 스테이플러심, 향료 등의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종이가 이런 공정을 거칠 때마다 섬유는 닳고 짧아진다. 그래서 재활용을 몇 차례 이상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용한 섬유를 불필요한 부분들에서 분리해내는 것을 '펄프화 공정'이라고 부른다. 펄프를 만드는 기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계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화학적인 방식이다. 기계적 펄프화 공정은 원료물질을 자르고 갈고 두들겨서 섬유소를 분리해낸다. 화학적 펄프화보다 두 배나 효율적이지만 섬유의 길이가 짧고 뻣뻣해서 신문이나 전화번호부(이거 마지막으로 보신 게 언제인가요?), 포장지 같은 저급 종이로만 사용된다.

 

더 널리 쓰이는 화학적 펄프화 공정은 화학물질과 열과 압력을 가해서 섬유를 분리해낸다. 그리고 나중에 염색, 잉크, 표백, 도사, 코팅 등에 더 많은 화학물질이 쓰인다. 한 화학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제지 기술의 핵심은,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이 각기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달려 있다.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처럼, 화학물질은 각각 종이에 특정한 성질을 부여한다. 종이 사용이 많아질수록 생산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미국에서 펄프와 종이 생산에 필요한 화학물질 수요량 2100년 200억 톤, 가격으로는 88억 달러어치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 중 가장 악명 높고 논쟁적인 것은 염소다. 염소는 펄프화 공정에도 들어가고 표백에도 사용된다. 그 자체로도 염소는 강력한 독성물질이다. 어찌나 유독한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로도 쓰였다. 그런 염소가 탄소를 포함한 다른 유기물질과 섞이면, 그것과 결합해서 거의 1000가지의 유기염소를 만들어낸다. 원료를 두들기는 공장에서 나오는 찌꺼기에서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 현존하는 잔류성 오염물질 중 가장 유독한 다이옥신도 유기염소다. 미국 환경보호청과 국제암연구소는 다이옥신이 암을 유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다이옥신은 내분비계, 생식계, 신경계, 면역체계의 손상과도 관련이 있다. 내게는 새 하얀 종이가 그렇게 꼭 가질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라면 발암종이보다는 약간 갈색이나 나무색이 나는 종이를 고르겠다.

 

유럽에서는 화장실 휴지부터 책의 종이까지, 완전히 흰색이 아닌 것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 많은 종이공장이 염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완전 무염소 표백' 방식으로 공정을 바꿔서 염소 대신 산소, 오존, 과산화수소 등으로 종이를 표백한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많은 공장이 '무염소가스 표백' 공정을 활용한다. 염소가스 대신 이산화염소 같은 염소 유도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염소로 종이를 적시는 것보다 낫고 다이옥신 형성도 절반가량 줄어든다. 하지만 다이옥신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너무 많다. 염소 제거 전선에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재활용 시 완전 무염소 표백'인데, 폐지를 재활용해 만든 종이에서, 재료인 폐지가 애초에 만들어질 때 염소가 사용되지 않았는지는 보장하지 못하지만 재활용 공정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종이 제조 공정에서 염소를 제거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환경과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외부화된 비용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강물이 다이옥신에 오염되어 어업 환경과 생명과 공동체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에 비하면 말이다.

 

종이 제조와 관련된 또 다른 독성물질로 수은이 있다. 수은은 강력한 신경독으로 신경계와 뇌, 특히 태아와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수은은 가성소다와 염소를 생산하는 염소-알칼리 공장에서 쓰인다. 펄프와 종이 산업은 세계 최대의 가성소다 소비처다. 수은을 사용하지 않고도 비용 효율적으로 경쟁력 있게 염소와 가성소다를 만들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들이 있는데도, 미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지역에 수은을 사용하는 염소- 알카리 공장이 아직도 많다. 수은은 일단 환경에 방출되고 나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개선되고 있는 점도 있다. 수은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수은을 사용하는 공장은 점점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수은을 사용하지 않는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럼, 다시 종이공장으로 돌아가보자. 펄프화 공정이 끝나면 펄프를 물에 섞어서 촘촘한 망에 뿌린다. 진공상태에서 이 망에 열과 압력을 가해 건조시키면 균일한 종이가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공정에서 에너지가 소비된다. 자, 이제 종이에 인쇄할 준비가 되었다.

 

인쇄소에서도 또 다른 일군의 독성 석유화학 물질이 들어간다. 잉크를 만들고, 인쇄기를 청소하고, 블랭킷(인쇄용 판)을 세척하는 데 사용되는 것들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톨루엔으로, 인쇄 과정에서 쓰이는 독성 화학물질 중 75퍼센트를 차지한다. 톨루엔은 굉장히 높은 수치로 환경에 방출된다. 상당부분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형태로 증발하는데, 이는 공기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호흡기질환 알레르기 면역계질환 등을 일으키며, 가라앉아 토양과 지하수로 들어간다.

 

석유화학 제품 대신 잉크와 세제용으로 쓸 수 있는 대체재가 있다. 식물성인 바이오케미컬 물질들이다. 아직 대부분 석유를 원료의 일부로 사용하지만, 그래도 굉장한 향상이다. 원유를 추출해 화학물질로 정제하는 단계에서 오염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인쇄공장 노동자들이 일하고 숨쉬기가 더 안전해지고, 따라서 안전교육과 보호장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화염을 일으킬 가능성도 훨씬 적다. 또 독성 고형 폐기물과 기체도 훨씬 조금 방출한다. 석유 기반의 잉크가 30~35퍼센트의 VOC(volatile oragnic compounds ; 휘발성 유기화합물)를 함유하는 데 비해, 대두유 잉크는 2~5퍼센트에 불과하다.

 

식물성 잉크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대두유 잉크로,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제작되는 인쇄물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성능이 더 좋고 더 밝은 색을 내며, 같은 면적을 더 적은 양으로 인쇄할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비용 면에서도 보통의 화학 잉크보다 효율적이다. 폐지에서 분리하기도 쉽기 때문에 재활용도 더 용이하다.

 

인쇄가 끝나면, 제본을 하고 하드 커버나 소프트 페이퍼 커버로 표지를 씌운다. 책이 유발하는 발자국의 마지막 단계는 운송 및 판매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친환경종이네트워크나 녹색인쇄이니셔티브 같은 환경단체들, 그리고 잉크워크스프레스, 에코프린트, 뉴리프페이퍼 등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선도적인 기업들 덕분에, 제지업계와 출판업계 모두 더욱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다. 점점 많은 책이 재활용 종이로 제작되고 있으며 석유 기반 잉크를 덜 사용하고 있다.

 

더 가벼운 발자국을 남기는 공정으로 만들어진 책에는 흔히 원료를 설명하는 페이지가 있다. 재활용 종이를 사용했는지, 새 펄프 원료를 사용했는지, 지속 가능 인증을 받은 숲에서 나온 펄프를 사용했는지, 어떤 공정으로 표백했는지, 어떤 잉크가 사용됐는지 등이 표기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그 책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 침대맡 스탠드 옆에 있는 다섯 권의 책을 살펴 보았다. 두 권은 펄프 원료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기재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최악의 공정을 거친 것 같다. 한 권은 "재활용 종이를 사용했다"고 씌어 있지만 더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재활용 종이를 몇 퍼센트 사용했는가? 소비자의 손을 거친 폐지가 아니라 종이공장에서 절단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나온 프리컨수머 폐지인가. 소비자의 손을 거친 뒤 재활용된 포스트컨수머 폐지인가?

 

한 권은 FSC 인증 표시가 있다. "잘 관리된 숲에서 통제된 원료와 재활용 목재 및 섬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마지막 한 권은 포스트컨수머 폐지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프리컨수머 폐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다. 도시 생활 쓰레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물질이 유용한 제품의 원료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20분짜리 영화 <물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좀 주저했다. 책 만드는 데 들어갈 자원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 명이 영화 <물건 이야기>에서 다룬 내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요청해왔다. 그들은 토론그룹을 열고,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긍정적인 대안에 관해 알고 싶어 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녀보니, 세상에는 영화나 온라인이나 DVD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테크놀로지에 접할 수 없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내기로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책의 생산 과정에서 자원과 독성물질의 사용이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출판사에 주장했다.

 

애니 레머드 <물건 이야기, 109~1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