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고은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미송 2013. 10. 10. 07:50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어느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아득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小白山脈)쪽으로 뻗어간다.

    그러나 구비구비 삶은 길을 에돌아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견디노라.

    먼 산이 너무 가깝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은 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어쩌면 가장 겸허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은 다음 우리 모두 다 덮을 수 있겠느냐.

     

    * 충청북도 청원군의 한 마을. 지금은 대청댐으로 수몰되었다.

     

     

    시인의 생가터인 미룡동 용둔 마을에선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원하는 풍물 한마당이 오늘까지 오일 째 펼쳐지고 있나 보다. 사뭇 결과가 궁금해진다.

    매 년 시인으로 하여금 잠을 설치게 만드는 달 시월에, 그의 문의마을을 찬찬히 올라 보니, 시의 배경은 눈 내리는 겨울이나 분위기는 시월과도

    잘 어울린다. 겨울을 맞이할 채비로 시월은 숙고할 지점임에 그러할까. 이미 수몰되었거나 죽은 것들은 말이 없고, 남은 것들의 증언만이 역사를

    쓰고 있다. 불쑥 살아 돌아온 듯한 착시의 향수와 즐거움을 주는 마을. 문의 마을에 올랐던 삼십 대 중반의 내 삶 속에는, 호수의 속내를 몰랐던

    산수유람만 남아 있지만, 늦게나마 시를 통해 옛 것을 돌아본다. 죽음이 날 기다리듯 아쉬운 나도 죽음을 되돌아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