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나쁜 일을 견디는 명약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쁘고도 가장 나쁜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다.
나이듦은 죽음이라는 숙명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모래시계의 흘러내리는 모래 같은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오탁번
시인은 이 나쁜 일을 유머로 상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유머는 우울을 견디게 하는 명약이어서, 왕년의 니체 같은 철학자도 명랑할 것을
주문했었거니와, 오탁번 시인은 한국의 시인들 중에 이 명랑성(Heiterkeit)의 묘미를 가장 즐겨 활용하는 시인이다.
다음의 이 시도
그 한 예다.
젊은 날 술집에서
유두주 마시며 희떱게 논 적 있다
위스키 잔에
아가씨 젖꼭지 담갔다가
홀짝 단숨에 마시고는
팁으로 배춧잎 뿌린 적 있다
독한 위스키에 취한
오디빛 젖꼭지의
도드라진 슬픔은 모른 채
내 젊음의 봄날이
깜박깜박 반짝이는 불빛에
만화방창 활짝 핀 적 있다
이순 지나 종심이라
일락서산 끄트머리에서
콧속 유두종 수술을 받았다
이비인후과에 난생처음 가서
내시경 진찰을 받았는데
콧속에 딱 젖꼭지 모양으로 생겨먹은
혹이 있었다
수술받고 내내 코피를 쏟다가
문득 젊은 날 마신
유두주가 떠올랐다
그때 그 아가씨의 젖꼭지가
콧속으로 들어와서
숨운 막으며 벌 주는 것일까
유두주 죄값 치르는
피 흐르는 봄날!
— 오탁번 〈봄날〉(《문학의 오늘》 가을호)
이 시에서 화자는 콧속에 난 유두종을 제거한 일을 소재로 삼아, 이를 젊은 시절에 한량처럼 놀면서 맛보았던 유두주에 연결 지으며, 이게 다 그 죗값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 이 유두종과 유두주 사이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느냐 하면,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게 정답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이렇게 끌어다 붙이는 게 무슨 시겠냐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우문일 수밖에 없으니, 이 시의 묘미는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데 있는 까닭이다.
하나의 선명한 대조가 이 시의 두 연을 가로지르고 있다. 만화방창의 젊은 날과 유두종에 걸린 노년의 삶. 찬란함은 뒤로 사라지고 노쇠한
삶이 남았다. 그래서 우울해해야 하나? 이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이 생을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살다 갈 작정일 것이고 이
시도 그를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는 이 파티를 위해 유두종과 유두주를 연결 짓는 언어유희를 보여주며 논다. 노는 것, 유희가 삶의
본질의 하나임을 주장한다. 나는 이 시인이 오늘의 시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임을 안다.
나쁜
기억에 연민을 보내다
강은교 시인의 시를 이 달에 여러 편 읽었다. 옛날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알기 쉽고 또
선명해졌다. 자기 외부에 존재하는 시적 대상에 대한 관심이 자애롭게 드러나는 시를 쓴다. 무언가 무거운 자의식을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그런
변화가 담긴 시 가운데 하나로 다음의 시를 인용해 본다.
이태준 씨가 고개 숙인 아이를 안고 가운데 서있고
상고머리 남자 아이 뒷짐을 지고 찡그리고 있으며
흰 저고리에 검은 통치마 얼굴이 긴 한 여인
그옆에한여자아이그옆에또한여자아이그리고장독대그리고낡은계단그리고단풍나무그리고과꽃
이제 오려나, 장독대 앞 구불구불 단풍나무 속으로
장독대 앞 구불구불 과꽃 속으로
— 강은교 〈이태준 씨의 가족사진〉(《시와 문화》 가을호)
성북동 수연산방에 가면 이태준의 옛 자취가 남아 있다. 그는 그곳에 초가집을 사서, 그 옆에 기와집을 지었다고 한다. 옛날에 아버지 없이
어렵게 자라서 기자 월급으로, 소설 써서, 기와집이라도 지으려면 꽤나 부지런하고 소비 지출을 아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그는 인정 많고
자애롭다. 문단사에 남아 있는 정황들을 보면 그는 문학 하는 동료들의 사랑도 꽤나 받았던 것 같다. 그런 그에 관해서 내가 늘 품고 있는 의문은
그가 왜 ‘해방 전후’에서 그토록 격앙되어 있었는가 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월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시대에 똑같이 이상을 품고도 월북은 불모에 빠진 반면, 월남은 비옥한 새 문학의 담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태준은 그
불모를 향해 나아간 불행한 작가였다.
그는 언제 다시 이곳에 오려나. 사진을 보면 그는 늘 우리 바로 곁에 있을 것 같은데, 그 행복을
뒤로하고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가벼워서 나쁜 세상을 응시하다
요즘처럼 커피가
흔해 빠진 음료가 되기도 사상 유례없다. 커피는 신의 음료가 되기를 그치고 아무나, 어디서나 먹는 천한 음식이 됐다. 옛날에 이효석이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걸려 가서 맛보던 커피의 기품 있는 향취 대신에, 또 옛날 손님이 오면 각설탕 곁들여 맛나게 타 내오던 정성 대신에,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먹고, 그러면서도 그것에 무슨 멋이라도 있는 것처럼 거품이 뜬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이 값싼 커피의 시대에 아메리카노 대신 가끔 카푸치노를 달라고, 그 거품의 미각을 떠올리며 예외적인 주문을 할 때가 없지 않다. 그러나 유정이 시인에게는 이 카푸치노조차 한갓 거품의 표상인 것 같다.
당신은 처음부터 거품처럼 왔다
편향된 걸음으로 느리게
거품이 전부인 것처럼 왔다
삼십 데시벨을 넘기지 않은 실내악은 무조건적이다
그렇게 무조건으로 왔다
당신은 왼손으로 찻잔을 받치고 조용히 입술을 대는
취향을 가졌다 나는 당신의 취향을 따르기로 한다
주로 창쪽에 앉으며 먼 곳을 응시하는 취향
오른 다리를 꼬는 취향과 오른손 머리를 쓸어올리는 취향
주로 오른쪽의 취향을 가진
당신은 몇 개의 취향으로 살아가는 걸까
나는 당신의 모든 취향을 수합하기로 한다
서창으로 느리게 해가 지고
아래로 목을 감으며 떨어지는 실루엣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의 취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좀처럼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당신의 취향
우리는 오늘 취향의 나라에 있다
당신이 키우는 취향의 전모
더는 부드러울 수 없는 취향
눈을 뜨고는 가질 수 없는 취향
그것은 사라지는 모든 속성을 가진 것이어서
만질 수 없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없는 것이어서
나는 당신의 모든 취향을 추종하기로 한다
취향을 따르는 취향
이것이 내가 가진 모든 취향의 당신이다
— 유정이 〈카프치노, 카프치노〉(《문학선》 가을호)
비록 한 편의 시에서라 해도 하나의 물상이 환기시키는 이미지 하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어가기란 쉽지 않다. 유정이
시인이 이 시에서 벌인 일이 그런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의, 아마도 여자가 있다. 그녀와 화자는 지금 커피숍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게 하필 카푸치노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크림이나 거품이 든 커피를 꾸미지 않은 맛의 커피보다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화자는
자기 앞에 앉아서 온갖 거품의 취향을 드러내며 장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을 주밀하게 관찰한다. 이 풍속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관찰
대상이 되어버린 여인은 시대를 상징하는 표상이 된다. 이 시대는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온갖 장식적인 포즈와 가벼움이 환영을 받는다. 여기 그러한
거품에 잘 적응된, 세련된 여인이 앉아 있다. 나쁘다. 이 나쁜 사태를 견디는 법은 그것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품으로 인식하는 시선을 내보이는
것이다.
나쁜 과거를 반추하다
이기인이라는 시인이 있다. 양평에 있는 소나기마을에서
황순원문학을 관리하며 사는 그는 독특한 시풍의 소유자다. 그는 불행한 소녀들의 삶을 동정을 표명하지 않고 제시하기만 하는 시작법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었다. 근래 보기 드물게 독자적인 시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 시인이었다.
지금 내가 인용하려고 하는 시의 주인인 이병국이라는 시인도 그 독특함이 눈길을 끈다. 그가 이번에 보여준 두 편의 시들은 이기인 시인처럼 동정하는 어조 대신에 나쁜 일을 그 자체로 제시하는,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비유법을 활용하여, 그 나쁜 일에 치이지 않고 대신에 그것을 응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생일〉과 〈목캔디〉의 두 시 가운데 하나를 여기 인용해 본다. 〈생일〉이다.
흰 눈, 내릴 때면
호주머니 안쪽,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 접혀 나오는 지폐 한 장
볼이 발간 아이는
흰 눈 맞으며
웃음 한 아름
언젠가
눈으로 만든 케이크 위로
붉은 빛이 반짝,
꼬깃꼬깃 숨겨놓은 시간
아름드리 하늘 아래, 텅 빈
하얀 얼굴, 아비는
슬픈 눈사람
그래도
생일 축하해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꼬깃꼬깃 밟혀가는
낡은 행복들,
하얀 그림자
— 이병국 〈생일〉(《시에》 여름호)
이 시에 나타나는 나쁜 일이란 다름 아닌 생일이다. 이 시의 화자는 아마도 불행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화자의 생일은
겨울날에 있고 아마도 그의 유년시절은 가난이나 그와 유사한 결핍이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이 가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이것은 이 시에서
호주머니 속의 지폐 한 장으로 표현된다. 그 어느 때 화자의 생일에는 케이크를 눈으로 만들었고, 그리고 그 위에 촛불을 꽂았다. 그때 화자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슬픈 눈사람”이었다.
이 시는 아주 간결해서 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꼭 필요한 사연조차 다
보여주지 않을 정도다. 읽는 이의 감각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좋아야 납득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마지막 연에서 왜
“행복들”이라고, 복수접미사가 붙어야 하는지 설명은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시인의 시가 이 정도로 간결한 시행 처리를
보여줄 수 있음은 이채롭다 할 만하다. 대상과 거리를 두는 그 독특한 시작법과 함께.
방민호
문학평론가·시인.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평론), 2001년 《현대시》(시)로 등단. 저서로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등과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유심작품상, 김환태평론상 등 수상.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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