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류근 <꽃들의 예감>

미송 2014. 8. 10. 08:17

 

 

 

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왜 올해 봄꽃들이 유난히 일찍 피었다 갔는지를.
왜 미친 듯 피었다 서둘러 다녀갔는지를.

꽃나무들도 알았던 것이다.
꽃나무들도 이러한 슬픔의 나날이 올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울 때 저희끼리 깔깔거리며 피어나는 게 미안해서
서둘러 뒤꿈치 들고 왔다가 간 것이다.
먼저 와서 벌 받는 자세로 면목 없이 면목 없이 피었다 간 것이다.
사람만이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만이 오늘의 슬픔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하느님, 시바.

 

- 류 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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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화단에 웃자란 화초들을 보며 나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올해는 참 이상하다, 방울토마토도 호박도 고추도 열매가 중간에 뚝뚝 떨어지거나 아예 달리지도 않는다, 나도 몇 차례 중얼거렸비가  와서 그러나, 거름은 작년보다 더 주었는데 정성도 많이 쏟았는데, 왜 그러나. 혹시 슬퍼서 그러냐 물어 보았다. 어쨌든 작년엔 4월부터 10월까지 꾸준히 열렸던 열매들이 올해는 전멸 상태다. 풀처럼 웃자란 모습만 보인다. 아아, 꽃들도 마음을 전하려 저리 달라지는데 인간들은 뭐냐, 시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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