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박정원 <바보의자>

미송 2014. 8. 31. 09:26

 

 

 

바보의자 / 박정원

 

사무실 의자가 마당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

오랫동안 몸을 내주었던 그가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다

자리에 연연치 않겠다더니

왜 목숨을 끊었을까

수사기관에서는 그의 주검을 부검키로 했다

아무나 앉아도 되었던 의자

그 자리를 위해 끼니를 거르는 것도 예사였고

해진 방석을 안은 채 다리 하나가 빠진 의자처럼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그의 집 기둥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갔다

설상가상 지난해 유방암으로 아내와 하직했고

한 해에 두번쯤 발표되는 승진자명단엔

그의 이름이 빠지곤 했다

이틀 후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가 앉았던 책상 서랍 속에서

유서도 발견되었다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동료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

어린 자식들은 누구 어깨에 얹혀사느냐고

그가 지킬 자리가 꼭 그 의자뿐이었느냐고

 

 

의자에 대해선 할 말이 많겠지. 한 때 의자 아니었던 이 없을 테니까. 나 비록 빙글빙글 유연한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눈 감고 있어 돈이 척척 쌓이던 그런 시절은 갖지 못했으나, 나 하나 고스란하니 의자가 되면 너의 무겁고 냄새나는 엉덩이 하나쯤은 거뜬히 지탱해 줄 수 있으리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시절에 나와 의자는 우리가 되었고, 우리 안에 갇힌 돼지가 되어 꽥꽥거리다, 어느 날 도살장 앞에 선 기분을 느꼈을 때, 우리로 부터 뛰쳐나와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과 맞닥뜨렸다는 건,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겠지. 죽음에도 두 가지가 있다. 이 꼴 저 꼴 안 보이는 저승으로의 확실한 이동. 이 꼴 저 꼴 다 보여도 관심의 영역에서 이탈시켜 버린 이승에서의 '나 하나' 존속. 어쨌든 죽음의 사유는 남은 자들의 구설수와 호기심의 목록에 오르기도 하여 불편한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안 죽을 자 또 몇이나 되겠니.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너무 많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들처럼 말이지. 의자는 한 쪽에 치워져서도 굳어져서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시인의 입을 통해 소설가의 통찰력을 빌어 오늘도 구전되고 있으니. 아무튼 나는 이 시를 읽으며 고골리의 <외투>가 대비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