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천경자 作
자화상 / 김 현승
내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고,
혈액은 철분鐵分이 셋에 눈물이 일곱이기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뺨이 쪼들어
연애엔 아조 실망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사랑이고 원수고 모라쳐 허허 웃어버리는
비만肥滿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내가 죽는 날
단테의 연옥煉獄에선 어느 비문扉門이 열리려나?
―― 『김현승시초』 (1957)
멋들어진 자화자찬. 아닙니다 자화상이군요. 손가락이 가늘었을까요. 물방울 튕기듯 당신은 목소리에서도 찬물 냄새가 나는 군요. 자성하는 눈빛에 자책의 채찍을 그리시는 군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무엇이 쉽냐고요. 비만의 모가지에 기름 끼를 빼는 일 말이라구요. 목이 유난스레 탈을 냈던 올 초에는 정말 모가지를 비틀다 못해 꺾어 내 버리려고 했었죠. 머리가 아무리 몸 전체에 삼분의 일 무게라지만 목은 너무 가늘어 휘청 꺾이려 했죠. 다행히 죽지 않았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같은 건 나 밖에 없다 위로하며 살았지요. 까만 책을 옆구리에 아가리에 머리 위에 싣고 온 이웃들 자기를 따르라 했지요. 낮술에 충만하여져 할렐루야 따라갈까 하였지만 몸이 아니 그 놈의 모가지가 따라가 주지 않았네요. 정말 나야말따나 죽어 단테의 연옥앞에 가면 어느 비문이 열리려나 궁금합니다. 진정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아 쉽게 신앙에 길들지도 못하는 나 참으로 골치 아프고 시꺼먼 탄 덩이가 아닌지요. 어제도 내 관상을 봐 주겠다던 그녀 다녀갔지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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