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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

미송 2015. 11. 11. 23:31

 

 

 

자연에 있는 높은 산 정상에 다다르면, 우리는 뭔가 특권을 얻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발을 디디고 선 산보다 더 높이 솟아 있다. 자연의 최고봉이, 최소한 이 지역의 최고봉이, 이 자리에, 우리의 발아래에 있다. 우리가 그 곳에 서면 우리는 볼 수 있는 세계의 왕이 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우리보다 낮다.

 

인생은 가파른 비탈이다. 인생은 우리 자신이 다다른 구릉과 산들의 발치에서 누워 쉬고 있는 평원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우연이고 계략이며, 우리가 다다랐던 위대한 고지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커지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더 높은 곳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면 사람은 숨쉬기가 더 편안하고, 유명해지면 사람은 더 자유롭다. 심지어는 귀족 작위조차 조그만 산의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은 현혹이지만, 현혹은 결코 우리의 작품이 아니다. 우리는 산을 오르거나, 혹은 산으로 올려지거나, 혹은 산 위에 있는 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반면에 정말로 위대한 자는 계곡에서 하늘로 이르는 거리와 산 정상에서 하늘로 이르는 거리가 사실은 차이가 없다고 깨달은 사람이다.

 

홍수가 나서 물이 범람하면, 그때는 산 위에 있는 것이 좋겠으나, 만약 제우스 신이 분노의 번갯불로 우리를 벌하려 하거나 아이올로스의 바람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항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바람을 자루 속에 감금시켰다)이 풀려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계곡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으며 땅바닥에 배를 깔고 납작 엎드리는 편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정말로 현명한 자는 정상을 정복할 만큼 튼튼한 근육을 갖고 있으면서도 통찰력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선으로 모든 산들을 차지하고 그 자리에 있기만 함으로써 모든 계곡을 장악한다. 산 정상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은, 산 위에서 그 빛을 온 몸으로 받는 사람보다 계곡에 있는 그에게 더욱더 찬란한 광채가 된다. 숲 속에서 우뚝 솟아난 성은 그 안에 갇힌 채 성 자체를 잊어버리는 사람보다, 계곡 아래에서 그것을 올려다보는 그에게 더욱 아름답다. 

 

나는 이런 생각에서 위안을 찾는다. 삶은 나를 위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의 방랑자인 내가 도심 저지대의 거리를 지나 테부 강변으로 걸어갈 때, 은유와 상징이 현실에 섞여 들어간다. 이미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은 마지막 태양빛 속에서 수많은 겹의 영롱한 햇살을 등진 리스본의 언덕들이, 낯선 명예처럼 빛나는 후광을 이고 있다.

 

 

페르난두 페소불안의 서 』pp147-148 타이핑 채란 

 

Fernando Pessoa 1888 ~ 1935

1888년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태어나 양아버지가 영사로 근무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5년 그곳에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무역통신문 번역가로 일하며 눈에 뜨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생전에 그는

몇 편의 시를 발표했을 뿐, 작가로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후 발견된 유고는 시와 드라마 초고,

정치적 에세이등을 포함하여 모두 27,543매나 되었다. 그중 1982년 출간된 유작산문집은 문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그는 포르투칼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힌다.

 

 

어떤 막연한 사랑의 몸짓이- 그 몸짓이 덜 쓰다듬어줄수록, 그 손길은 더욱 부드럽다 -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저녁의 산들바람으로 내 이마와 내 이성에 부채질을 해주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이 순간 내가 앓고 있는 권태가 자꾸만 상처를 쓸면서 아프게 하는 옷보다 더 편하게 내 몸에 맞다는 것이다.

 

살짝 불어오는 공기의 흐름에도 고통을 당하는 초라한 감수성은 잠시 동안이라도 편히 쉬고 싶다! 하지만 인간의 감수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갑자기 생긴 돈이나 기대하지 못했던 미소라 해도 지금 나를 스치며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내게 주는 의미보다 더 많은 것을 다른 인간들에게 줄 수는 없으리라.

나는 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꿈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 모든 사물의 객관성을 더 명료하게 관찰한다. 삶의 외부에 대한 내 감정을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지, 거리 모퉁이 바로 앞에서 방향을 튼 산들바람이, 내 피부 위를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우리가 상실한 모든 것이, 사물이든, 존재든, 의미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피부 위를 이렇게 스치면서 우리의 영혼으로 안착한다.이것은 신의 사건이다.

 

오직 나에게 일순간 상상의 편안함을 선사한 산들바람만이 모든 것을 능숙하게 상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그것은 가능한 순간을 알고 있다. <160쪽>

 

가까이서 관찰하면 모든 인간은 단조로운 방식으로 다들 다르다. 비에이라의 말에 따르면, 프레이 루이스 드 소자가 이것에 대해 "독특함으로 표현되는 범속함"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여기 이 인간들은 자신들의 범속함으로 독특하다. '대주교의 생애' 스타일과는 반대인 것이다. 나는 이 모두에 우울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도 생각한다. 다른 모든 생명들처럼 나 또한 오직 우연히 여기 있는 것이다.

<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