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팔에 눕는 나무 / 김경주
자꾸만 키가 줄어서 누워있다
아주 먼데서부터 걸어오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문 앞에 와있는 나무를 떠올려본다 주머니 속의 나무들을 만지다가
오늘은 한 동작에서 줄어드는 몸무게를 생각한다 한 동작에서 사라지는 토끼들을,
나무는 방으로 들어와 내 오른팔에 눕는다
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물컵은 차분한 해안선을 만든다 기차는 모래를 흘리며 달린다 기구는 멀리 사라지고, 뱀은 바위틈에 돌가루들을 모은다
나는 방금 생긴 먼지 같아서, 작은 햇볕에도 눈이 부셔, 내 키는 방금 생긴 먼지 같아서, 희미한 벌레들이 방으로 기어온다. 내가 차가워지면 줄어들기 시작하는 벌레들
그래서 나무는 나에게 잎을 피운다
내 워크맨 속 갠지즈 /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즈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한 판에 찍히다 한 판에 승부를 걸다 머리를 탕 치는 이 판이 팬인가 계란후라이팬인가 궁금하여 판을 검색창에 치니 그리스 신화 다산의 신 이야기가 나오네. 짐승처럼 얼라를 동시에 많이 낳았나 도리아식으로 파온이 줄어 판이 되었다는 설명을 들여다보다 더 들여다보니 판의 이 pan이 모든 것이란 뜻이라고 하네. 어 이것은 또 모순. 한 판 할래 할때의 한 판 이 판이 모든 것이라면 어떻게 한 판을 한 번에 다 끝낼 수 있어? 한 판에 찍히네 하며 K의 나무와 갠지스에 위로를 받는 중, 산만한 나 대신 누군가 부단히도 집중하고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얄미운 아전인수인가? 국경꽃집으로 달려가 모든 꽃이라도 사다 바치고 싶은 마음. 나는 시인의 전위성에 놀란다. 시.니. 시는왜니가될수없니니는왜시가될수없니시도니도삶도. 니가 자폐인게야 그래 그러며 궁시렁거린 말은 어젯밤의 말. 니 대신 다시 시를 읽으며 니 아닌 K의 시를 들으며 니와 시를 동시에 만난 기분. 든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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