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어제 문인모임에 갔다가 일부러 독사진을 부탁하여 찍힌 모습이다.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에 한참 넋을 놨으니 중늙은이가 틀림없다. 이 사람이 나인가? 풍상(風霜) 지난 자국 깊다. 되돌아보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삶을...특별히 살아왔다고도 말하기 부끄러워 그냥 시달려왔는데, 서울 태생이 서울에서 그 많은 서울 사람 틈을 비집고 은둔자처럼 지내온 55년의 세월이 짧지만은 않다. 그래서 사계절이 55번을 스친 얼굴에 나 스스로도 놀랐는가, 허기야 평생 동안 로션이나 크림조차 바르지 않고 바람과 햇볕에 노출 시킨 얼굴이니 이만한 모습이나마 다행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안 갔으니 사진 찍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환한 얼굴 옆에 추한 내 모습을 들이대기 미안했고, 또 한편으론 사람들이 사진을 함께 찍으려 달려드는 저명인사처럼 살아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인상이 그 생애를 말한다. 눈 그늘이 깊은 내 인상은 그다지 내보일 것도, 자랑할 것도 없어 보인다. 언젠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유명한 정치가와 로비에서 찍힌 모습일까, 많은 사람을 앞에 놓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일까, 자식이나 손자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일까,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일까, 모두 상상해 봤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딱 하나 흉내라도 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폐허의 성터를 더듬대며 글을 찾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우주를 건너고 건너다가 도착한 이 세상이 무엇일까 사유하며 뒷골목을 헤매다 나처럼 적당히 쉬어지고 늙어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록하는 내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은 저렇게 낡았어도 마음은 푸르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더욱 은둔자가 되어서 사진을 찍지 말아야겠다. 이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십년을 버텨야겠다. 약간의 슬픈 색조마저 띠고, 얼굴 전체에 드리워진 그늘이 왠지 마음에 든다.
햇살 한 줄기와 대표작
이름이 없다 함은 좋은 일이다. 장미나 백합도 아니고 또 그 어느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으니 모양이나 향기에 구속될 일이 없다. 유명한 작가가 아님은 다행이다. 무명이 넉넉하고 미친 자의 길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것은 곧 자신에게만 양심껏 매달리는 솔직함을 가져다준다. 언젠가 그럴듯한 사회적 세력을 가진 사람이 어깨를 으쓱이며 나의 꿈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연히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제대로 된 대표작이나 하나 얻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자리를 꿈꾸던 사람은 나의 대답에 갸웃했다.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물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되물은 그의 질문에 오히려 내가 멍청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요. 작가가 대표작 하나 제대로 쓰는 것이 꿈이지,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그럴듯한 사회적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자리라도 오르고 싶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그였기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이때 알렉산더대왕과 디오게네스의 고사가 떠올랐다. 세계를 정복한 위광을 뿜으며 알렉산더대왕이 거지 철학자에게 물었던 말이 바로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가 아닌가.
디오게네스는 마침 햇볕을 가리고 선 알렉산더대왕의 그림자가 성가셨던 모양이었다. 조금 옆으로 비켜주시는 것입니다. 햇볕을 쬐고 있는 중인데....
창가에 가을 햇볕 한 줄이 늘어진 오늘 아침, 그 햇살 속으로 손을 슬쩍 들이밀었다. 대각선으로 밝은 빛을 그으며 손바닥 위에 올라앉은 햇살이 예쁘다. 강가에서 벌어진 소유와 무소유의 대결에서 패배를 모르던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참담하게 당했다고 후대의 사람들은 말하는데, 대표작이라는 꿈도 알렉산더의 오만이 아닐까?
이것은 글에 대한 용기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 자리를 잃고 흔들리는 삶의 주춧돌 문제다.
명성을 하찮게 생각한다면 대표작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글귀신이 씌워서 햇살을 잊었는가, 역사시대 이후의 모든 글을 다 가져다 손바닥 위에 올려놔도 한 줄 햇살의 무게보다 더 가벼울 것 같다.
자명(自明)함이란 스스로 밝혀 세삼스레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하늘과 직결된 진리를 말한다. 자명을 쫓는 글쟁이라면 글도 자명하여 특별히 대표작을 운운할 필요가 없을 터인데,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스스로 빛을 밝혀 자명한 한 줄기 햇살이 손바닥 위를 가로질러 있는데, 무엇을 더 찾는단 말인가, 원효대사는 무지한 백성에게 득도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물건은 물건이 아니니, 업장을 끊고 극락 가는 방법도 역시 손쉽지 않으면 길이 아니라, 그저 나무관세음보살만 외쳐라. 율법을 파괴한다고 유태인들이 손가락질 했지만 예수는 율법을 한 자 한 획이라도 다 완성하러 왔다고 말하며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바로 네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면 된다고.
손바닥을 꾸물거려 본다. 햇살 한 줄기가 예쁘다. 혹시 이것이 나의 대표작이 아닐까?
2006.09.01. Mr lee - 2021.11.23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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