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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대승기신론4>

미송 2023. 12. 12. 00:44

인간은 습관이라는 옷을 입고 산다.
좋은 태도가 습관화되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 된다.

<기신론>에는 훈습이 나온다. 꽃밭에 가면 꽃향기가 몸에 배고, 생선가게에 가면 비린내가 몸에 밴다. 우리가 진여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서 윤회의 세계로 타락하거나 윤회의 세계로부터 진여의 세계로 올라가는 데는 훈습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업이라는 것은 습관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습관적인 행동은 내면이나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다.

수행은 나쁜 방향의 습관적인 행동을 좋은 방향의 습관적인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수행도 행동의 반복인 만큼 자신의 내면이나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은 뻔하다. 업이나 수행이 모두 내적이거나 외적인 훈습의 결과이다. 훈습은 우리 중생에게 무슨 문제를 일으키고 우리가 깨달음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훈습의 원리를 이용해야 하는지 <기신론>의 가르침이 궁금하다. 먼저 훈습의 원론부터 들어 보자.

훈습이라는 것은 사람의 옷이 그 자체로서는 냄새가 없지만 사람이 그 냄새를 오랫동안 배게 하면 냄새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마음의 진여가 원래 물든 것이 아니지만 미혹무명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그 마음이 망념으로 물들게 된다. 반면에 미혹에 물든 마음이 깨끗하지 않더라도 진여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본래의 깨끗한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여기서<기신론>은 훈습에 두 가지 방면을 들고 있다. 나빠지는 쪽과 좋아지는 쪽이다. 나빠지는 쪽은 미혹무명이 진여의 마음을 훈습하는 것이고 좋아지는 쪽은 진여가 미혹의 마음을 훈습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여의 마음이 훈습을 받아서 나빠지는 길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 보자.

무명이 진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망령된 마음이 생기고 그 망심이 무명을 더욱 활발히 움직이도록 부추킨다. 순환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은 망심은 헛된 대상경계를 일으키고 그 망령된 대상경계가 다시 망심을 더욱 기승하도록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마음에 집착이 생기게 되고 나쁜 뜻을 품고 나쁜 행동을 해서 마침내는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된다.

<기신론>에서는 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딱딱한 말로 설명하지만 대중이 다 같이 <기신론>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쉬운 말로 간추려 보았다. 윤회의 길로 가는 훈습의 과정이 빙빙 돌아서 약간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먼저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을 꼽아보고 그것들을 한줄로 연결시키면 좀 더 단순하게 정리가 될 것이다. 무명 진여 망심 망경계 집착 의지 행동 고통과보 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들을 이어 보면 무명이 진여에 영향을 미쳐서 망심이 생기고 망심이 망경계를 일으킨다. 망심과 망경계 사이에 집착심이 생기고 잘못된 의지와 행동이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 간단하게 줄여서 중요한 말들만 이어 보았지만 물론 잘못된 영향을 순환적으로 미치기 때문에 윤회로 가는 훈습은 보다 복잡하다.

인간은 습관이라는 옷을 입고 산다. 좋은 태도가 습관화되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상대의 인격을 보고 편안해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손님들을 차에 태우고 내리게 할 때 운전하는 이가 손님을 위해 먼저 차문을 열어 준다. 필자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관광지를 안내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하는 태도를 본받아서 실천해 보았다.

차에 타고 내릴 때에 문을 열어주는 것을 비롯해서 영화에서 흔히 보는 서양 신사의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그 손님들은 필자에게 과분한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의 도로사정에 적응하는 운전을 해야만 했다. 더욱이 운전을 난폭하게 하는 사람의 차를 타고 다니다보니 모르는 사이에 필자의 운전방법도 그 분의 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이제는 필자 자신이 보아도 인격이나 멋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운전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영향을 미쳐서 모든 면에서 인격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나쁜 쪽을 잘못 훈습된 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구태여 <기신론>의 가르침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자신에게도 재미없고 남에게도 불쾌감을 주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제 평범한 중생이 고해에 허덕이는 상태에서 진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훈습을 <기신론>에서 들어보자.

깨끗한 진여의 마음이 무명을 훈습하면 이미 있던 망심이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게 된다. 망심의 이런 자세는 진여가 더욱 활발하게 무명을 훈습하도록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마음의 진여본성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제는 눈앞의 경계가 마음의 헛된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점점 초월하게 된다.  눈앞의 사물은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은 갖가지 방편을 동원하여 진여로 향한 길을 걸으면서 모든 집착과 망념을 끊어버린다. 이같은 오랜 훈습의 결과로 무명이 사라지고 무명이 사라짐에 따라 망념이 일어나지  
않고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에 따라 망경계도 또한 사라진다. 안에서는 진여자체의 힘이 발휘되고 밖에서는 진여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한 성능이 발휘된다. 그래서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윤회에서 열반으로 되돌아가는 훈습의 과정은 진여의 세계에서 윤회의 세계로 타락되어 가는 과정과 정반대이다. 윤회의 세계에서 깨끗한 마음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 복잡한 도시 산업사회에서 형식적인 깨끗한 마음은 실제로는 깨끗하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그 환경에서 어떤 것이 가장 깨끗한 마음인가는 그 마음을 먹는 사람 자신이 정좌하고 생각하는 데서만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 깨끗한 마음을 먹으면 탐진치와 어울리는 미혹의 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면 평상적으로 일어나는 망심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인생을 반조하고 보다 참다운 삶을 찾게 된다. 좋은 마음은 연이어서 깨끗한 마음이 더욱 세차게 일어나도록 부추긴다.

진여의 마음바닥 깨끗한 본성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 본성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고 싶어진다. 미혹과 망심을 지우고 사물을 보니 그전에 높은 가격표를 붙였던 것들이 실제로 높은 가격의 것이 아니라 망령된 마음이 공연히 귀한 것으로 지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좋은 마음만 갖게 되고 좋은 행동만 행하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마음 안에서 광채를 발해서 그 마음을 밝히고 밖으로는 진여에 반대되는 것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진여의 마음이 드러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 나타나게 한다.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미혹의 무명이 일어난 곳을 추적하지 않았다. <기신론>도 망념이 일어남을 바로 무영의 일어남이라고 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무명의 과거를 따지지 않고 지금 당장 우리 마음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문제를 만드니까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의 기원으로 잡았다. 그렇다면 진여의 마음이 일어나는 세계로 돌아가려면 맨 먼저 진여의 마음이 일어나는 계기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윤회의 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맨 먼저 진여의 마음, 깨끗한 마음이 무명의 마음을 훈습해야 한다. 여기서 무명과 망심만 득세하는 곳에 어떻게 갑자기 진여의 마음이 나타나느냐가 문제가 된다. <기신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 책 전체를 통해서 다루고 있지만 꼭 집어서 '이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겉 본능과 속 본능을 구별함으로써 이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겉 본능은 욕망이고 번뇌이고 미혹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은 그러한 욕망의 충족만으로 만족하게 되어 있지 않다. 겉 본능 뒤에 속 본능이 있다. 속 본능은 바로 진여의 본능이다. 깨끗한 마음의 본능이다. 마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본능이다. 그 본능이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을 돌아보면 그 참마음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 본능이 없다면 지금 여러 불자들이 이 딱딱한 <기신론>의 이야기를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깨끗한 마음, 진리를 구하는 마음, 내 마음의 참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서 미혹의 마음을 조금씩 물리치기만 하면 거기서부터 열반으로 가는 훈습은 발동이 걸리게 된다.  일단 시동이 걸리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거기에 동력의 관성 이 붙어서 <기신론>이 말하는 대로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석지명<인간의 완성> P 613-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