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작가들

<전혜린> 먼곳에의 그리움

미송 2009. 10. 18. 19:40

  • 1934년 1윌 1일 평안남도 순천 출생.
  • 1953년 경기여중고등학교 졸업.
  •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
  •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 졸업.
  • 뮌헨대학 에카르트 교수 조교.
  • 경기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역임.
  •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
  •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요절

 주요번역작품

  • F. 사강의 <어떤 미소>(1956)
  • E.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 E. 캐스트너의 <화비안>(1960)
  •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의 <안테 프랑크의 일기>(1960)(같은해 4월에 {신협}에서 공연)
  • L.린저의 <생의 한가운데>(1961)
  • W.게스턴의 <에밀리에>(1963)
  • H.막시모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1964)
  • H.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4)
  • H.노바크의 <태양병>(1965)

 

작품집

  •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유 작 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먼곳에의 그리움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이어령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둠이 깔리는 박명(薄明)의 층계(層階)위에서 그 여자는 기다리듯이 서있다.
그에게 다가가는 이는 그 여자가 얼마나 낯설은 얼굴 속에서 놀라움의 눈을 뜨는 가를 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손님>인 것이다.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항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서서히 친근해지는 그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무엇인가를 향하여 타고 있는 그의 눈은
모든 의미를 말하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모든 얼굴을 향하여 정면으로 질문한다.
그는 이미 [손님]이 아니며 낯설지 않다.
어둠은 경이(驚異)로 열리고 그의 목소리는 당신의 가슴 속에서
아늑하게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나직하게, 그러나 그 속에는 걸잡을 수 없는 분류를 담고 있다.
그의 내부에서 끈덕진 열을 뿜으며,
모든 습관의 예복과 미지근한 생의 소도구들을 불태워버리는 그 광기로써 그는 당신을,
아니 자기자신을 보석과 같은 순간의 빛 속으로 해방한다.
그의 의식이,
그의 언어가 집요하게 떠밀고 가는 순간의 지속-그것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 준 가장 귀한

선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동요하며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보도 위에서 먼 곳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남몰래 훔쳐 보았다.
그의 눈은 쉬지 않고 인식을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를 보고 왔다. 그래서 그는 서울의 거리에서도,
뮌헨의 카페 앞에서도 [손님]이었다.
그리하여 여자는 행복하기를 거부했다.
그 여자는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그는 하나의 활화산이었다. 이 토지에 살고간 서른 두해,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
가짜가 아닌 생이었다.
생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았다.
정말로 유일한 여자였다.
그는 오늘의 침묵에 이르기 위하여 언제나 말을 했고 언제나 노상에 있었다.
당신은 이제 알 것이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값을.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지글] 쟝 아제베도에게

 

 

<전혜린의 단문>

 

달팽이의 논리

 

네가 나의 상황(예컨대 나이) 같은 것 때문에 나를 불신하느냐 ?
그와 똑같은 이유로 내가 너를 불신한다면
그것은 원(圓)을 긋고 도는
달팽이의 논리가 될 것이니 그만두자.  

1964. 2.12 

 

 

시간의 풍화작용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사고(思考)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는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국가와 시간의 풍화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식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성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듯이
완전한 자유의지는 아닌 것 같다.

1964년 1월  20일 

 

 

연기(演技)의 불일치

 

그렇다.
나는 나와 연기(演技)를 일치시킬 수 없는 순간을 종종 갖는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를 혐오해서라기보다 혼자 있는 거의 필요해서인 것이다.

1964년 1월 21일

 

 

소시민적 일요일

 

권태와 어느 안정감
소시민성 속에 자기를 고정시키려는 의도와,
또 그 의도의 무용함과 번거로움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텅빈 공허감이
내 가슴을 찬바람 불 듯 지나간다.

감정도, 애정도 다 떨어진 느낌, 가정, 직장, 나, 국가, 사회
이런 단어들이 아무 연결도 없이
내 머리를 지나간다.

1964년 1월 19일

 

 

왜 보를레르는 일생 동안 쟌느 듀발을 사랑한 것일까?
백인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고,
오욕의 생활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마음으로 극악했다는,

또 릴케가 왜 자기보다 열 네 살이나 위인, 남편 있는, 남성적인 루를 사랑했던가!
니체가 [수세기에 한번 구라파에 나타나는 두뇌를 가진 여자]라고 평한 루의 총명 때문에?
릴케의 모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정의(定義)할 수 없는,
정의보다는 보다 높은 법칙 밑에 놓여 있어
운명이니, 만남이니, 하는 말로 그 편린을 알 수 있는 이외에는
전모를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무엇이 아닐까?

결국 이 마술적인 것이 없는 모든 관계는 모래 위의 성인 것 같다.
아무리 그 관계가 지속됐다 해도 그것은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비본질적인 무엇인 것이다.

1964년 10월 5일 

 

 

매순간마다 확인시키고 싶다.
도대체 내구성耐九性이 없는 언어로서가 아니라,
언어 따위는 초월한 무엇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1964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