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과 순대국밥 / 오정자
선반 위 얌전히 뵈는 그릇들 가운데 원두커피 병이 비어있다. 관음사 언덕에 올라 '길 다방 커피'를 빼 먹다 돌아온 오늘도 나는, 커피 볶는 집을 찾지 못했다. 원두 향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관념에 지나지 않을 빈 병에 대한 아쉬움을 핑계로 누군가가 커피를 타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이내 내 손가락이 커피를 타더니 벌컥 마신다.
그릇들은 개성적이다. 사람의 양다리도 재보면 짝짝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색 다른 디자인 다른 길이를 하고서도 한사코 세트야 하며 웃는 철부지들. 실체에 골똘하자니, 댓돌 위 고무신이나 밥상 위 젓가락도 질량에 예민한 저울에 달아보면 다르듯, 세트도 역시 다르단 생각이 든다. 그릇들 속엔 소음이 그득하다.
녹차 주전자 옆 꽃무늬 찻잔 두 개가 나란히 웃고 있다. 어디서 찬사라도 받았나 미소를 띤다. 같은 크기 같은 무늬 같은 색의 다기에다 그저께는 녹차를 어저께는 커피를 마셨다. 그 때, 다른 그릇들이 울그락푸르락 하자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집에서 유일한 세트인 다기잔인데 그들 역시도 달랐다. 생각되어짐에 따라 쌍둥이일 수도 있고 영 별개일 수도 있는 그릇들이 엄숙해 보인다.
사람의 몸에 관해서도 나는 늘 반신반의한다. 치수를 재보면 적확한 불구의 모양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게 최근 나의 지론이다.
노을이 발 아래로 지는 저녁이었다. 최소한 오늘은 그랬다. 뒤뚱한 내 걸음을 지고 가는 노을이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차마 말 못하는 남자들은 무엇이든 같은 것끼리는 맞대봐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그 눈빛 역시 다를 것이다. 외등 켜 진 거리, 각자 여인의 품을 향하는 발소리도 다르고, 앙증맞게 손 흔드는 사람들도 사뭇 달랐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놀을 보는 듯, 어적어적 타들어 가던 사람들은 각자의 등짐을 지고 헤어졌다.
모든 게 다르기만 하여 모순명제로 떨어질 것 같은 순간, 나는 다시 찬장 속 그릇들을 헤아리고 앉았다. 부딪쳐 금이 간 것도 아니요, 이빨이 빠져 바람이 드는 것도 아니요, 녹슬어 쇳물이 흐르는 것도 아닌 그릇들이 너무나 다르게 보이는 게 이상해, 원두 알갱이는 누가 다 먹어 치웠지 하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지친 혀들이 저녁놀의 불길을 찜찜해 하고 있었을 때, 검은 상처의 알갱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도시의 밤은 어째서 매연뿐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커피 알갱이들도 각각이다. 놀라운 발견이지, 말하자니 우스워진다. 뭘 새삼스럽게 하며, 같다고 여겼던 '우리들 마음의 빛' 그 외, 모든 것은 달라지고 있다. '같은 것은 곧 다른 것'이라는 말. '진정'이라는 말마저 역시 변하고, 변한다는 생각 자체도 좀 전 것이 아닌 것이 된다는...
잡을 수 없을 땐 차라리 놔 버리는 게 현명하다고, 해서, 나는 아무 것과도 같지 않고 닮았다고 주장하는 그림자까지도 오늘의 나 까지도 이미 내일이면 내가 아니니 너도 아니니, 말하자면 조촐하고 생각 먹기로 하자면 즐비한 그릇들까지도 내일이면 다르게 태어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비 오는 날과 부침개가 어울린다는 오랜 기억이 있다. 오늘처럼 오래된 향을 찾지 못해 언덕을 서성이다 붉디붉은 노을을 만나게 되는, 바람 부는 날에는, 순대국밥이 딱 어울린다는 경험도 있다. 중앙시장 지하로 내려가 우리는 펄펄 끓는 뚝배기 안에 순대를 꿀꺽 삼킨다. '우리는 세트야!' 하며, '다르다' 라는 용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사전에서 지운다. 그것이 그저 슬프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라지던 저녁놀이 너무 붉었기 때문이요, 민낯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20080217-201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