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핏줄로 짠 필사의 그물 / 유용주
삶은 이렇게 큰 현실이다.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교정본을 백여 번 반복해서 읽다. 소금기둥의 여름과 벌거벗은 겨울을 건너 온 남자에게 가을은 너무 가볍다. 낙엽 하나만으로도 먹고 살 만하구나.
나는 여전히 나무다, 라고 목청껏 외치는 시인이 있다. 성성한 나무에는 벌레가 잘 끼지 않는다. 그늘에서 더 밝게 트이는 눈, 지친 나무에 무수히 매달려 있는 열매들, 숨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안간힘으로 뿌려놓은 새끼들, 벌레는 밑동부터 파먹기 시작한다.
저 캄캄한 땅속에서 몇억 광년을 썩고 참고 출렁이면서 고여 있던 나무들의 내장이 어떤 보일러공의 섬세한 용접 불빛을 쫓아, 그 관 속으로 스며들어 지상에 최초로 나왔을 때 맨 처음 본 것도 눈이 멀 것 같은 강력한 불꽃이었다. 시인은 전신으로 뛰어든다. 거듭 죽어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리라. 소신공양이다. 나를 태워 너희들이 따스해지고, 나를 두드려 너희들이 산다면, 내 기꺼이 죽어주마. 녹아주마.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여기 불을 피워 삶을 녹이는 사람이 있다. 삶은 그 자체로 놓아두면 도대체 뻣뻣하고 딱딱해서 쓸모가 없을 뿐더러 깍을 수도 다듬을 수도 휠 수도 없으며 볶거나 데치거나 삶거나 구워 먹을 수가 없는 아주 지독한 놈이다. 가만 놔두면 금방 곰팡이가 슬고 쉬어터져서 그냥 내다버릴 수 밖에 없는 게 삶이라는 놈이어서, 요놈은 그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 삶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질겨진다. 촘촘해진다. 깎으면 깍을수록 빛이 난다. 쪼으면 쪼을수록 엄정해진다. 닦으면 닦을수록 광채가 난다.
불을 피우는 사람이다. 가장의 책임에 대하여 끊임없이 돌아보고 자기암시를 거듭하는 것이다. 거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긴 아내나 자식들에게 기대어 피 빨아먹는 시인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쓴다고 해도 허공에다 집 짓는 격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삶은 문학보다 투철해야 하고 엄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좋은 삶에서 좋은 문학이 나온다. 투철하고 엄격한 삶은 자연에게서 배운 듯하다.
군불을 피운다. 태우면 고분고분해진다. 성깔있는 거친 것들도 얌전해진다. 분노를 은근하게 굽는다. 불을 안으로 삼키는 구들장을 보라. 너희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하여, 피둥피둥 살이 오른 너희들을 마약같이 부드럽게 죽이기 위하여, 불은 불 같은 생명을 무수하게 죽인다. 구족을 멸하거라. 하늘은 연기를 삼키고 굴뚝은 구들을 삼키고 구들은 불을 삼켜 독을 만든다. 극약 처방이다. 따뜻하다고 방심하지 말라.
언제였더라?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대전에 사는 친구가 달필로 휘저은 A4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와 빨간 표지가 유난히 촌스럽던 시집을 부쳐온 것은. 그 편지 속에는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일을 하는 한 평범한 사람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으며 작품이 깜짝 놀랄 만하게 좋다고 한번 읽어보라는 꽤나 들뜬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는 여러 수난을 겪어왔으면서도 겪은 만큼 축복 또한 많이 받아서 가는 곳마다 시인이 넘쳐나고 도처에 시집이 쌓여 있어, 버려진 시집 위로 파리떼들이 똥을 싸고 알을 슬어 썩은 침출수가 새로운 첨단공법으로도 정화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그 즈음, 나는 시를 읽는 고통스러움에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하물며 이름도 처음 듣는, 지방에 사는 그렇고 그런 시인으로 미리 짐작하여 어디 방구석으로 던져버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좁은 땅에서, 그것도 문단이라고, 작품보다는 뿌리깊은 도제의식과 파벌로 갈라져, 학연과 지연과 혈연과 술상 언더에서 맺은 끈끈한 인연으로 이리 쏠리고 저리 휩쓸리는 것을 경험한 눈으로 만사가 귀찮기도 했고, 우선 한귀퉁이에 들지 못해 안달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글쓰는 일을 집어치우고 가능한 한 몸으로 부딪쳐 먹고 살기를 바랐던 시절이었다. 막노동과 우유배달을 거쳐 술집을 하려다 실패했고 농사를 지으려고 마음먹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아 지친 마음으로 술을 벗삼아 취생몽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주야장천 술자리 끝에 해장국 집도 문을 열지 않은 새벽에, 목은 타고 속은 쓰리고 이마는 불가마로 찌끈거릴 때 거듭 비운 찬물 주전자 옆에 며칠 전 던져버린 시집을 무심코 뒤적거렸나보다.
이면우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한 가장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이상 그 가족을 위해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다 나온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의 몸뚱이를 바쳐 소신공양해온 가장의 절절한 삶이, 복부비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천년대의 약하디약한 남자들을 등 서늘히 반성케 한다. 엄정한 삶에서 엄정한 작품이 나온다. 이면우의 이번 시집은 몸으로 사는 사내의 약진으로 가득하다. 몸으로 시를 쓰는 사내의 들큰한 땀 냄새로 가득하다. 본능에 가깝게 냉철한 삶에서 우러나온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만이 뒤돌아볼 수 있다.
삼백 예순 다섯날을 통틀어 강수량이 50밀리도 안되는 사막에서 오래 견뎌온 동물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고, 주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무언가 나름대로 독 하나쯤은 몸 안에 숨겨두기 마련인데, 이면우 시인의 새 시집을 수십번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이 똥 냄새나는 침 한 방울 찾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어디를 뒤적여봐도 깔끔하고 풍성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그 흔한 모래폭풍도 없고 가시로 무장한 덤불도 없고 전갈이나 도마뱀이나 신기루도 보이지 않는다. 풍성하다. 왜 그럴까?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아담한 체구에 음식을 먹을 때 무조건 곱빼기를 시키는 이면우 시인은 개성이 퍽 강한 사람인데, 지금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김치냉장고의 원조 격인 쉬지 않는 김장독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새삼 다시 이야기할 거리도 못되고,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자신이 잘못되면 안되니까 대중교통 수단 중에서도 그중 덩치 큰 것을 이용하고 아예 자전거를 타든지 걸어다니는 편을 택하는 성격 이외에도, 외부에 무슨 행사가 있어 바깥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꼭 칫솔을 챙겨들고 그곳이 어떤 곳이라도 무엇을 먹으면 기어코 이를 닦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면서, 절대로 오입을 하지 않으며, 잘 꺼내지 않는 지갑 속에 지폐 대신 부인이 정성스레 저어준 참을 인(忍)자 석 자를 가슴 깊이 넣고 다닌다. 최근에 휴대폰을 구입한 일 외엔, 그의 가벼운 지갑 속에는 수표도 없고, 흔한 카드도 없고 고액지폐도 별로 안 보이고 참을 인자를 세 번 적은 하얀 종이가 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 지갑을 열면 돈보다도 먼저 참을 인자가 보인다. 돈을 참는 것이다. 여자를 참는 것이다. 술을 참는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다는데 십년 넘게 술 담배를 끊고 그는 무엇을 했을까? 작은 집을 샀고, 아이들을 키워왔으며 약간의 저축과 적선, 무엇보다도 시를 썼다. "낡아가며 새로워"졌다. 그게 모어든 이면우 앞에 가면 기어이 긍정의 큰 우물로 바뀌고 만다. "무릎 아프다는 말, 일터에서 입 밖에 내지 않고 견뎠다" 할 정도로 그는 독한 사람이다. 사실 '참을 인'자 이 세글자가 이면우 시인의 모든 삶을 대신한다. 그의 삶이 그랬다. 옛날 우리 어머니께서도 늘 그러셨다. 참을 인(忍) 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말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두말할 것 없이 가족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나 60년대 보릿고개를 넘어 70년대의 산업화와 80년대의 군사독재를 거쳐 90년대 가짜 고도성장을 고스란히 몸으로 감내하면서 학력 별무의 인생으로 그가 참아냈던 것은 무엇일까? 참을 수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참을 수밖에 없는 그의 내면은 얼마나 끓어올랐을까? 왜 그는 화를 낼 줄 모르나? 왜 분노를 밖으로 표출할 줄을 모르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는 그냥 도처에 감사하고 고마운 따름이다. 왜 그럴까? 대긍정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어내었을 신산고초의 인생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도 남겠는데, 도무지 욕 한마디 할 줄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칼날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세번 참아야 하는 것이며, 수염이 마디마디 끊어지는 고통을 세번 이상 참아야 하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시시때때로 나이를 자각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깨닫기 어려운 것이다. 흐트러진 삶에서 엄정한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쫀쫀하다고 비난하지 말라. 누군 우쭐대고 싶은 마음 없어 한턱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무어든 한웅큼이라도 쥐고 들어가지 못하면 아내와 자식이 굶어죽는 처절한 생활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3000원짜리 점심값이 부담되어 일터에서 제법 떨어진 대전시청 구내식당까지 가서 1800원짜리 밥을 먹고 오는 쉰 넘은 가장의 마음을 요즈음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점심을 일부러 늦게 먹는다. 일찍 먹으면 저녁 퇴근할 때 버스 속에서부터 배가 고파오기 때문이다. 이게 2001년 연봉 1380만원짜리 계약직 보일러공의 현실이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내 방으로 통하는 보일러관을 막았다. 전화도 끊고 신문도 끊고 편지는 받기만 하고 답장은 피하고 우유도 끊고 일년에 한번씩 올리던 세배도 걸렀더니 북향인 내 방은 봄이 와도 냉골이다. 다 틀어막아도 마지막 끈인 가족은 버릴 수 없어 아내와 아이가 자는 안방은 열어둘 수밖에. 텅텅 툭툭 자그락자그락 둥근 관 속에서 다툼이 한창이다. 고여 있던 찬물 밀어내고 따뜻한 물 들어오니 밥상 위의 전등도 새벽까지 환하다. 밤참을 먹으려고 부엌문을 열자 문 밖이 세상 밖이다. 거실은 누가 덥히나. 저 문을 나서면 복도가 있고 마당이 있고 누군가 새벽거리를 쓸고 나르고 봄을 퍼올리고 씨 뿌리고 거름을 낼 것인데, 문 열고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고 있을텐데. 나를 아낀다는 게 나를 버리는 일이었구나. 내 가족을 돌본다는 일이 더 많은 이웃을 떠나보냈구나. 열지 않으면 돌지 않고 돌지 않으면 고여 죽는다. 다함께 죽는다. "누구라도 자기 안에 생의 북쪽을 지니고 간다."
마흔, 귀신도 무섭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많이 포기하고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다. 피도 삭고 뼈도 삭고 정신도 삭아 자꾸 무너지는 나이다.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다. 이 문장을 쓰는 데 꼬박 사십년이 넘게 걸렸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술 담배를 끊지 못한다. 풍경이 운다. 바람이 불자 흔들리면서 운다. 깨어 있으라고, 자면서도 깨어 있으라고 흔드는 게 아니라, 마음속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엉뚱한 곳에서 바람이 꿈틀대면 각성하라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지 말라고 불혹의 풍경이 운다.
세상 끝으로 세상 끝으로 기러기 날아간다. 춤꾼이 발가락 상처를 두려워하랴. 상처가 춤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손 공구 들고 악착같이 날아가야 할 저 아파트숲 어디쯤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겠다.
덤으로 사는 게 아닌가. 그때 그 자리에서 숨을 놓아버렸다면 누가 내 시신을 처리하고 울어줄 것인가. 거듭 태어난 것 아닌가. 봉사하라고, 죄 지은 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까운 시간 낭비한 죄, 갚고 가라고 우선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라고 살려둔 게 아닌가. 주위 사람들에게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현재 내 것으로 등록된 모든 것을 다 퍼줄 것. 다시 사는 삶 아닌가. 복 받은 일은 또 글쓰는 재주도 주시지 않았는가. 시까지 주시다니,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이런 엄청난 선물을 주시다니.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을 부르며 꿈결처럼 다가오는 저 아이들‥‥‥"
여전히 냉골이고 동침이다. 나 아무리 뜨거운 남자라 해도 오직 체온으로만 덥힐 수 있는 구들장은 너무 넓다. 꼬질꼬질 땟국 정다운 이불 펴고 누우니 미적지근해진다. 그대 아직도 추운가? 견딜 만한가? 올 겨울에는 중국산 무쇠난로라도 들여놓고 나무하러 다녀야겠다.
닭이 울었다. 닭이 울었다는 사실은 귀신이 물러갔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나는 붙잡고 안달한다. 시의 귀신이여, 내게 더 오래 머물다 가거라.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으마. 부디 이 집에 오래 머물다 가거라. 닭은 단칼에 때려잡으마. 새벽은 단칼에 무릎꿇게 할 테니, 항복문서 받아올테니, 제발 나가지 말아라. 박용래 시집을 겉표지 너덜거릴 때까지 끼고 일하러 다닌 시인에게는 일찌감치 수건을 던졌다. 인정하마, 내 잘못 살았다는 것을.
삶은 저렇게 큰 문학이다.
<이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착과비평사) 에서>
가장 가벼운 짐 / 유용주
잠 속에서도 시 쓰는 일보다
등짐 지는 모습이 더 많아
밤새 꿈이 끙끙 앓는다
어제는 의료원 영안실에서 세 구의 시체가
통곡 속에 실려 나갔고
산부인과에선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햇발 많이 받고 잎이 넓어지는 만큼
생의 그늘은 깊어만 가는데
일생 동안 목수들이 져 나른 목재는,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겨우 자기 키만한 나무를 짊어지는 것으로
그들의 노동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숨이 끊어진 뒤에도 관을 짊어지고 가는 목수들,
어깨가 약간 뒤틀어진 사람들
<유용주 프로필>
1960년 전북 장수 출생
199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시 「목수」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97년 제 15회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크나큰 침묵』, 산문집으로 『그러나 나는 살아가 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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