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안도현 <스며드는 것>외 1편

미송 2009. 3. 17. 09:35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

 

 

 

해찰(海察)
                            

봄날, 병아리가 어미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다
나란히 되똥되똥 줄 맞춰 가고 있다

 

연둣빛 풀밭은 병아리들 발바닥을 들어올려 주느라 바쁘다
꽃이 진 자리에 꽃씨를 밀어 올리느라 민들레꽃도 바쁘다

 

민들레 꽃대 끝에 웬 솜털 같은 눈이 내렸나?
병아리 한 마리 대열에서 이탈해 한눈을 팔고 있다

 

그리고는 꽃씨에다 노란 부리를 톡, 대어본다
병아리는 햇빛을 타고 날아간다
허공에다 발자국을 콕콕 찍으며 날아간다

 

 

해찰海察 ; 마음에 썩 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침. / 쓸데없는짓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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