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강희안<피아노>

미송 2011. 2. 15. 08:40

피아노

 

코끼리 울음을 흉내낸다는 말은

그를 밟고 싶다는 말의 상대어

‘보고 싶다’라는

 그녀의 상아빛 문자를 받을 때마다

 나는 억누르고 싶지

 답글조차 오물조물 씹으며

 엉덩이 자세로 씹하고 싶지

 

 늘 그녀의 겨드랑이는

 까끌까끌 까끄르르

 제모의 흔적에 찔린 듯 아슬하지

 희디흰 그녀의 둔부

 마악 일깨운 듯

 터치, 터치 후레쉬하게 터지며

 싱싱한 암내를 풍기지

 

 밀림의 코끼리도

 상형문자 찍으며 앞으로 질주하지

 포르테 포르테

 피아니시모로 뒤집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지

 콧김의 기율에 따라

 질척질척 늪지를 돌아나왔지

 

 코끼리의 울음 저장한다는 말은

 나른나른 그녀가 연주하던

 ‘죽고 싶다’는 마지막 말과 동의어

 차디찬 태양의 적도에서

 그가 아득해진다면

 한밤의 난기류에 섞였다면

 저 악상 누가 받아 적을 것인가

 

 

계간 『시선』 2010 겨울호 발표

 

강희안(姜熙安) 시인

대전에서 출생. 배재대 국문과 및 한남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거미는 몸에 산다』, 『나탈리 망세의 첼로』와 저서 『현대문학의 이해와 감상』, 『석정 시의 시간과 공간』, 『문학의 논리와 실제』, 『새로운 현대시작법』 등이 있다. 현재 계간 『미네르바』 편집위원 및 배재대 출강.

 

<시감상>

저 시는 일단 귀를 막고서 음미해야 한다. 혹여나 눈부터 감고 음미하거나 덮어놓고 믿어버리거나 화급히 읽거나 하면 재미없는 시다. 대강 철저히(그렇다고 양파 까듯, 까고 또 까고 하진 말 것!) 조석(朝夕)으로 읽다 보면 대체로 시인의 관상까지도 궁금해 지는 시, 개인적인 너무나도 개인적인 감상법이지만 그렇다. 내 말일 뿐. 단, 시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코끼리들 오케스트라는 맨 나중에 들어야 한다. 반드시. 안 그러면 망해 무너지는 울음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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