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원<당신의 왼쪽 뺨>

미송 2011. 2. 26. 11:08

 

  당신의 왼쪽 뺨 

 

  해 지는 강변에서 당신을 기다렸어요

  해는 하늘을 물들이고 강물을 물들이고

  오른 쪽 어깨 너머로 순환선이 지나갔어요

  나는 풀밭에 있었어요

  몸안으로 뜨거운 것이 자꾸 밀려들었어요

  새들이 날아갔어요

  강물 소리를 들었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요

  당신의 감추어진 손과 입술과 두 발과

  목소리를 기다렸어요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당신의 입술 가장자리에서

  불타오르는 하늘 아래에서

  출렁이는 강물의 끝에서 나는

  당신의 손가락이 놓일 그 자리에서

  당신의 두 발이 멈출

  당신의 눈동자가 나타날 그 자리에서

  당신을

  내 왼쪽 뺨에 닿을 당신의 왼쪽 뺨을

  기다렸어요

  당신은 아직 오지 않고

  밤이 되고 봄이 겨울이 되고 눈이 왔어요

  허공 속에서 얼굴이 지워진 몸들이 자꾸 걸어나왔어요

  풀밭은 점점 넓어지고

  당신은 아직 오지 않고

  그러니 당신은 여전히 내게 오는 중이고

  퉁퉁 불어가는 몸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계간 『시평』2009년 봄

 

이원 시인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 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 마침. 1992년 《세계의문학》가을호에 〈시간과 비닐 봉지〉 외 3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문학과지성사, 1996)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지성사, 2001)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가 있음 .'현대시학' 작품상(2002)과 '현대시' 작품상(2005)을 수상.

 

<시감상>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나의 아이큐는 두 자리 숫자였다 (루트root:√,를 씌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교장선생님과 스승들이 서 계신 단상을 지나며 받들어 총! 하던 사열행진 중, 나는 항상 징크스에 걸렸다. 왼발왼팔 오른발오른팔이 동시에 나갔다. 연습과 무관했던 바보같은 슬로우모션,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고 안타깝고 꿈에도 생생했던 추억, 언젠가는 제대로 될 거야 하는 희망과 함께 유년의 운동장은 멀어져 갔다. 기다림은 험난한 시공時空도 뛰어 넘는다. 그러나 그것이 길어질수록 어떤 마음이라도 베베 꼬이기 마련일까. 왼쪽 뺨에다 삘feel을 꽂은 기다림은 실체가 나타나도 삥 토라져 왼쪽 뺨에 왼쪽 뺨만 고집할 것 같다. 예까지 생각이 들자 차라리 그것은 저수지 위 둥둥 떠오른 물고기 유영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유년의 악몽 속에 뜨던 루트 두 자리 수 모양의 별. 그러므로  아름다운 남자가 좋다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여자는 왠지 잔인하단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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