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거짓말
1. 과학의 오래 된 궁금증이 하나 있습니다. 우주의 끝. 또는 끝없는 우주...라고 할 때의 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의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질문을 한퀴에 해결한 사람이 가스통 바슐라르입니다. 가스통 할배가 아니구요.
가스통 바슐라르는 어휘가 곧 상상력이란 말을 합니다. 즉...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어휘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휘(말)이 있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죠. 실제와 실재의 차이고 리얼리티와 리앨리티의 차이입니다. 용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제하는 것이죠. 신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제합니다. 많은 종교인들은 신이란 실재한다고 믿습니다만, 사실 그들이 믿는 신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실제하는 것이죠.
2. 즉... "우주는 끝이 없다"라고 할 때 끝이 없는 영역을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우주라는 실제한 개념을 만든 것이죠. 우주가 끝이 없는게 아니라 끝이 없는 그 무엇을 우주라고 명명해서 인간의 인식의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주에 대해서 궁금해 할 수 있는 것이죠. 우주란 개념을 만들어 내지 않고선 우주에 대해
서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 없는 법입니다. 다시 바슐라르의 명제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 상상력이란 그냥 어휘일 뿐입니다.
3. 어린 아이를 키우면 종종 생각지도 못 한 엉뚱한 말을 자주 합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상상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휘가 짧아서죠. 뱀과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아이는 육식동물 뱀이 초식동물 코끼리를 먹을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죠. 어른들은 뱀의 크기와 코끼리의 크기를 알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바슐라르는 이것을 인식론적 장애라고 부르죠. 어린아이는 상상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이해력이 부족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4. 그렇다고 해서 뱀이 코끼리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생떽쥐베리는 뱀이 코끼리를 잡아 먹었다는 그림을 그렸죠. 즉.. 상상력이란 있는 말을 가지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인간의 습성입니다. 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을 수 있다 없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깨트리는 것이 문학이고 과학이죠. 즉... 단어(어휘)가 갖고 있는 본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깨트리고 뛰어넘는 것에서 인간의 정신세계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처음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고대 희랍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였죠. 원자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그것을 상상해서 원자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때문에 상상력은 그 자체로 발전적인 인간이 모습입니다. 이미 지존 어휘들에 세뇌되어 어휘의 힘을 깨트리지 못 하는 어른들 보다 어린이들이 상상력이 뛰어난 이유가 바로 인간의 발전적인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사회가 급격히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새로운 어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게 생겨납니다. 즉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것이고, 이 상상력은 결국에 가서는 실현될 것이 분명합니다.
6. 그렇다면 거짓말이란 무엇일까요?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시대에 관해 연구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제 때문입니다. 고전 어디를 뒤져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죠.
시오노 나나미는 악법도 법이다는 문명 사회의 유행어는 기득권자들이 시민들에게 거짓된 질서를 강요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규정합니다. 악법이 법이건 아니건... 거짓말의 실체는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세상사람 누구나 다 알고 인간 사유의 가장 뛰어난 고대 철학자를 거짓으로 꾸며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7. 상상력이란 공공재입니다. 누가 가져다 쓰건 말건 상관이 없죠. 음악의 코드는 주인이 없이 아무나 자기 머리 속에 떠오른 음악을 구현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사유재죠. 이효리도 인정한 이번 표절 사건은 개인이 사익을 위해 주인이 있는 음악을 자기 맘대로 갖다 쓴 것입니다. 들통나지 않으면 이익을 얻는 것이고 들키면 토해 내야 하는 거죠.
8. 처음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상상력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다 못 해 인간로켓이란 개념까지 등장했었죠. 이 황당한 개념도 잠시나마 또는 누군가에겐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이후 국방부에선 세간에 떠오르던 상상력에 결론을 내렸죠. 어뢰가 타격대상 외부에서 폭발해서 버블제트 현상이 발생했고 그 폭발력에 의해 천암함이 두 동강 났다구요.
이미 국방부가 결론을 내렸음에도 많은 국민과 시민사회는 또다른 상상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국방부가 상상력을 통제하는 방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이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고 외국이나 외부세력의 권위에 기대어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기 때문이죠.
9. 누가 뭐라고 상상력을 발휘하건 그건 공공재입니다. 허황되건 그럴싸 하건은 중요하지 않죠. 상상력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그냥 국방부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발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휘가 짧은 어린아이 수준의 사람들이 상상을 하건 딸딸이를 치건 국방부가 상관할 수준이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어휘가 짧은 어린 아이들이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하고 전문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국방부 발표를 믿지 않고 상상을 계속 한다는 것입니다. 두 상상력이 충돌할 때 이명박 정부는 논쟁을 여론통제의 방법과 기득권적 제도들로 구속한다는 것입니다.
10. 천안함 사건을 보면 가장 한심한 것이 그것입니다. 정부가 왜 상상력 대결을 회피하고 진실게임으로 유도 하냐는 것입니다. 선의로 보자면 이명박 정부는 유언비어가 난무해서 국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혼란한 상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통제한다고 볼 수 있죠.
즉...이명박 정권의 권위가 서 있어야 사회가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상상력을 통제해서는 안됩니다. 상상력이 통제된 사회에선 거짓말만 횡횡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권의 권위 국가의 권위가 통제에 의해서 유지된다면 그것이 바로 사상누각이죠.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믿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법을 공평하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게 올바르게 세우는게 국가의 목표인 것입니다.
11. 거짓말에 대한 뛰어난 우화를 담고 있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죠. 한 부부가 길에서 양아치 한 놈을 만납니다. 양아치는 남자의 와이프에게 색욕을 느껴서 남자를 죽이고 그 여자를 겁탈하죠. 이 사건은 숨어서 나뭇꾼이 모두 다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의 당사자 세 명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양아치는 여자가 남편이 살아있는데 겁탈당할 수 없다며 남편을 죽이라고 해서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편은 여자가 양아치를 유혹했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남편이 자기를 지켜주려고 하지 않고 비겁하게 도망가려다가 양아치한테 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죠.
나뭇꾼은 이 세 명 모두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한심해서 영화의 제목이 되는 나생문이란 절터에서 한 스님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그 때 스님이 한마디를 하죠. 인간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면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라도 거짓말을 한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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