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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미송 2009. 3. 27. 16:40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지은이: 소냐프리드만
   

 

 

[심리요법에 있어서의 이성과  정서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나 어른이 되는 것을 방해하고자기를 못되게 만드는 주된 사고방식 12가지중에서 

  

  1. 무슨 일이건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다.
  2. 자기의 괴로움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며, 자기이외의 타인에게 원인이 있다.
  3.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피해 지나가는 것이 편하다.
  4. 자신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
  5. 자기의 기분을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

제임스 라메이는 저서 <친밀한 사귐>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대에게 다해야 할  최대한의 의무는 단 하나, 서로 알게 된 시점보다 나빠진 상태에서 상대를 버리지 않을 것, 즉 자기와 알게 된 일이 상대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대 취향'이 아닌 '자기 취향'의 여자가 되라. 여성은 인생의 동반자를 선택하기 전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어린애 같은 부인'으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부부란 서로 일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내의 자립을 원하지 않는 남편은 즉시 단념하라.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약

남자에게는 대들지 마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파도가 드세지면 너 자신만 위험해진다. 언제나 남편 곁에 있거라.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을 가진 배의 선장이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관계

말로는 쉽지만, 평등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의 깊은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은 평등해질 수 있다. 개인으로서의 평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자는 남녀 평등의 관념을 배우지 않는 한 여자와 남자를 평등하게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여자 또한 자신들이 남자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지 않는 한 남자와 대등하게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오랫동안 길을  잘못 들어 헤매왔으므로, 노예제도가 가져오는 일종의 힘과 같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노예처럼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힘을 몰래 즐기는 사람 또한 상당수 있을 것이다.

 

노예는 사회나 커뮤니티의 진보에 대하여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그런 것들은 모두 여자의 소유주인 남자에게 맡겨두면 된다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머리 위를 덮을 지붕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써 노예에게 주어진다. 날마다 정해진 작은 노동을 할 , 생산율을 높이고 표준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은 노예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예로서의 여자는 두뇌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계의 사전은 그녀들과는 관계가 없다. 자기가 지니고 있는 힘을 짜서 자기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여 남자의 지배자가 되는 일에만 마음을 쓸 뿐이다.

 

나는 미국  남성을 위한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싶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모든 특권을 여성에게 주고 있으면서도그것과의 교환 조건으로 실제상의 책임을 여자에게 지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미국 사회는 여성에게 모든 우선권과 여러 가지 보호교육을 충분히 베풀고 있으면서도여성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봉사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이는 양식이 있는 남성들을 아연하게 만들 것이다. 어떠한 정부 밑에서도, 어떠한 문명국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남자에게 완전한 만족을 준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여자의 가장 좋지 않은 성격 가운데 하나는여자는 어떠한 경우에 빠져도 그것에서 잘 빠져나가고 왠지 시끄러운 인간으로 간주되므로, 거기서 남자는 괴로워하는 것이다. 남자는 어느 나라에 가도 여자의 열등성이랄까 또는 여자의 우월성이랄까, 어쨌든 무엇인가에 의해 여자에게 휘둘림을 당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나라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자유와 평등이 있음으로 해서 여자는 사회의 책임을 남자와 함께 분담하게 된다그렇게 되면 여자는 노예의 무책임한 생활이나 안일을 즐길 수 없게 된다. 그때가 오면 충분한 교육을 받은 남자와 여자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분담하게 되어 쌍방의 이익을 가져오게 되며, 비로소 이상적인 관계의 새 생활을 시작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남자는 여자가 좋아지게 되므로 호의를 가지기 시작하며, 여자는 남자가 호의를 가져준다고 느끼면  지금 지니고 있는 것 같은 불평 불만은 여자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는 의식을 무엇보다도 강하게 느껴, 그것은 여자의 골수에까지 사무친다. 그 때문에 여자는  불안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자신을 아주 잃게 되므로 안정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정의'  변해가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에게도 권력이 주어지고 경험이 중시되고 있으며, 지원단체가 생겨 나거나 '이해심이 있는' 새로운 남성이 늘어나는 등 사회변화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성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낡은 관념에 얽매여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해리 스택 설리번은 다음과 같이 재치있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사랑이란 서로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과 그에 대한 만족감이 똑같이 중시되는 것이다.이 정의는 상대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또 한 사람의 요구가 희생되는 일이 없는 대등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 공동의 목표나 상대에 대한 존경, 상대의 안락과 행복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시대 최대의 발견은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의 여성은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부모 탓으로 혹은 사회가 불공평하기 때문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으며따라서 그 책임은 부모나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기 이외의 어떤 다른 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의 경우처음부터 좌절감을 갖고 있거나,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거나, 자기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함에 집착한 나머지 만일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사서하는 사람도 있다.

 

어머이기 전에 건전한 여성인가. 그러면 건전한 어머니란 어떤 것일까? 건전한 어머니라면 아들에게 여성이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경할만한 존재라고 가르칠 것이다. 교양이나 취미나 삶의 방식등에서 자신과 비슷한 여성 쪽이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또한 첫눈에 반해서 상대를 택하기보다는 타오르는 듯한 열정은 없지만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선택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극히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지만 반드시 성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타인을 돌보아주는 일을 가르친다. 또 그가  세계에서 어느 만큼의 존재인가 하는 것을 지나치게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리는 일 없이 분명히 알려준다. 결국 남성이 여성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교육에 달렸다. 건전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건전한 여성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미워하거나 반대로 항상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평생 자기에게 붙들어매 놓을지도 모른다.
 

진실한 사랑

애정 어린 섹스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  사랑의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한 사랑은 아니다. 공통의 체험을 거쳐 서로를 아는 과정을 건너뛴, 착각에 의한 사랑에 불과하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나름의 단계가 있다. 낯선 두 사람이 만나서 상대의 인간성을 알게 되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며, 서로가 상대의 인생을 보다 유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느낌이 샘솟기 시작한다.  단계에 이르면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해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상대가 곁에 없을  때에도 마음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되살리 수 있다. 진실한 사랑이란 상대의  몸이 되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며 성실함이다. 남녀 사이에서는 그러한 사랑에 덧붙여 육체적인 결합이 두 사람의 유대를 한층 강하게 한다.

 

여성은 상대를 따라오게 하여 사랑을 발전시킨다. 사랑의 의미가 희미해져 있는 것은 남녀의 교제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이 애매하거나 혼란스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믿는 로맨티스트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관계에 뛰어든다대체로  로맨티스트는 자신의 사랑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게 되며, 그들의 생활이란 것도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다. 아무 일이 없으면 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뭔가 사소한 일이라도 발생하면 생활의 균형이 깨지고  감정적으로 매우 약해져 버린다.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여성

섹스를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과 마음으로부터의 노력과 성에 대한 스스로의 욕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섹스에 대한 생각은 점점 변해가는 것이다. 마돈나 콤플렉스란 무의식중에 아내와 자기 어머니를 동일시해 버리기 때문에 근친상간이라는 터부와 맞부딪히거나아내에 대한 성적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하는 경우다. 엄격하고 비판적이고 타인에게 벌주기를 좋아하는 남성을 남편으로 두어 점차적으로 성적인 관심을 잃게 되는 여성도 있다. 남편이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이미지와 겹쳐져 그에 대한 성적인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결혼은 자립한 남녀의 평등계약

평균 수명이 47  정도였던 금세기 초만 해도, 17세에 결혼하여 곧바로 아이를 갖고 죽을 때까지 부부가 함께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평균 수명이 77세를 넘어서고 있는 오늘날에는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혼인서약을 애정이 소멸되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로 바꾸어 쓸 법도 하다.미국의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만일 결혼의 서약이 이혼을  위한 자료로써 기록되어 남는다고 하면, 적어도 결혼하는 부부의 3분의 1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 놓을 때까지를 두 사람이 다른 배우자를 선택할 때까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한 영구히 가족으로서 지내고 싶어하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사회가 관용을 베풀고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인간은 의무와 속박 투성이의 전통적인 가족 관계 쪽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해 보고자 하는 문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 생활에 뛰어드는 문제인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인가
여성을 위한 개혁을 시작하는 가장 쉬운 길은 남성의 공격으로부터 개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성 자신 속에 있다. 참다운 여자의 특질은 어디엔가 중심이 있어서 강하고 저항적이다. 여자는 자기 자신에게 불안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약하지 않다. 여성이 자신을 가지면 세력의 선풍이 되어 강한 힘의 샘이 된다. 여자임이 자연스러우며 올바른 것이며, 그것을 바꾸거나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여자는 남자의 곁에 자신의 장소를 기꺼이 차지하였으리라.
  

만일 여자가 조금  게으르거나 인색하거나 거짓말쟁이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소문내기를 좋아한다 해도, 이런 작은 죄는 여성의 약점에 지나지 않을 뿐 도덕의 강한 윤곽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남성은 여자가 자기 곁에 나타나 자기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왜 그렇게 놀라는 것일까이상한 것은 여자가 남자들보다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올바른  점은 뭐니뭐니해도 온실에서 자라 세상 풍파를 겪지 않고 유혹도 당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므로 참다운 저항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여자는 가엾게도 그렇게 남자보다 더 선량하다고 칭찬을 받고 있지만, 교회에서 남자가 설교를 하는 동안 죄석에 걸터 앉아 듣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여자는 품행의 단정함에 대하여 교회로부터 아주 조금밖에 보상받고 있지 못하다. 적어도 교회에서는 도덕적으로 높은 것이 종교세계에 들어가는 조건의 하나이므로 여자는 그 세계에서 어떤 세력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천만의 말씀, 남성은 거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발견하였다. 여자에 대해서는 올바른 길을 요구하는 남자가 자신은 거기에서 면제 받을 수 있는 종교를 만들어 냈다. 구원을 원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이 있으면 올바른 품행은 결국 더러워진 누더기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라고 남자는 선언한 셈이 된다. 하나님의 위대한 애정은 죄악을 용서하는 것이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남자의 죄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죄를 씻어 남자를 깨끗하게 하여 오점이 없는 자로서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큰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성은 자신의 부족한 데서 우월성을 만들어 냈다.

 

40세 무렵에 찾아오는 아내들의 사춘기

결혼에는 변화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가정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답답한 생활에서 해방되어 평화롭게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안식처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정은 폭력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가정이 폭력의 온상이 되어 버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불평등이며 또 하나는 체벌을 옳다고 생각하는 빗나간 남자다움이다. 어떤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 사람이 권력을 잡고 모든 일을 결정하는 가정에서 폭력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평등하게  결정권을 갖고 있는 민주적인 가정에서는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따라서 두 남녀가 대등한 인간으로서 결혼하는 경우 가정내에서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아내가 남편의 아이라도 되는 듯한 상태에서 결혼한 남녀의 경우, 남편이 아직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내가 자립을 하려고 하면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남자들은 다음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아내에게 전하려고 폭력을 쓴다. 나는 지금의 부부관계를 지키기 위해 굉장한 희생을  치르고 있는 거라고, 다른 남자든 일이든 어떤 경우에도, 어떤 것에도 당신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성인끼리의 결혼이라면 가정내 결정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투는 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폭력이 필요해지는 일도 없다. 성인끼리의 두 사람이라면, 결국 부부간에 어느 정도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나는 신성한 것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입에 담은 일이 없으므로 큰소리로 떠들수는 없다. 그것은 내 속에 반발심과 흉폭성을 불러일으켜 마음의 고요함을 침해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일 여성이 남성보다도 정신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뛰어나다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벙어리가 되어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여성의 도덕적 우위성 따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혁명은 인간의 머리를 굴러 떨어뜨리고, 전쟁은 대도시를 덮쳐 세계가 이대로 나간다면 뒤에 남는 것은 파괴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성이 이기적인 퇴각에서 빠져나와서 남자의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 이 세계의 존속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민주적인 조직을 세우는 일에 참가하지 않는 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도덕적 우수성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은, 자기의 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권한의 본질과 그 쓰임을 바르게 알고 있어서 이성적으로 실력이 있으며,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활약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는 업무에도 능통한 여성이다. 그러면 그와 마찬가지의 능력을 가진 여성의 경우는 어떠한가일반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이론을 구사하는 능력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에게만 주어진 특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남성특유의 능력에 감히 도전하는 여성은 남성 입장에서 보면 강인한 여자인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역량부족을 통감하게 하는 상대가 남성일 경우 그 결과에 승복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갖게 만드는 힘을 가진 존재가 여성일 때 그녀는 가장 품격이 떨어지는 여성, '고집 센 여자'로 통한다. 남자의 시샘에는 "고맙습니다!" 라고 응수한다. 남성은 자기의 세력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야에서 여성이 남자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할 때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남성이 감정을 상하고 화가 났다고 해도 그것은 일에 관한 일이며, 무릇 일의 세계란 다 그런 것이다. 여성은 자기를 속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발휘할 만한 능력을 시시한 경쟁의 도구로 삼지 않는 것이다. 오직 남성의 무능을 폭로하기 위해서 그를 괴롭히거나 놀리는 일은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자질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여성은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여성다움을 유지할 수가 있다. 낮 동안은 인정사정 없는 맹렬한 간부사원인 남성이 가정에서는 지극히 다정한 아버지이고  남편이라 해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그것에 모순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여성이 일에 대해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면 그녀는 성적으로 욕구불만임에 틀림없다, 어딘가 이상하다,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자기의 실력을 깨닫게 해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고집 센 여자라는 등의 험담을 해댄다. 그러나 편견을 갖지 않고 평가해 보면, 그녀는 지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을 진척시킴으로써 자기 실현을 하고 있는 그 때문에 고집 센 여자라고 불린다면 대답해줄 말은 단 한 마디 뿐이다.  "고맙습니다!"

 

평생의 일을 선택하라

여성이 전업주부를 그만두고 밖으로 일하러 나갈 때 명심해야 할 수칙이 세가지 있다. 일정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할 것, 일을 시작할 때  일어나기 쉬운 감정적인 마찰을 잘 처리할 것, 하찮은 일과 필생의 일과의 차이를 구별할 것 등이다. "  여자가 싫거든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자를 심하게 경멸하고 질투심이 강한 그 젊은 여성은 보통의 평범한 것 이상의 일을 하는 여성이 싫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보다 더 진심으로 중세기의 전통을 지키는 여자가 꽤 많이 미국에 있는데, 그것은 마치 중국에서 무지한 전통의 노예가 되어 버린 여자가 자기 자신과 딸들의 전통에 매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실로 여성은 여자들 사이에 많은 적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열등감에서 나온 옛날부터 있어온 질투심에 의한 것인데, 전통이 한 여자를 얽어맨다면 여성 전체가 결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자리는 가정인가

남자는 현재에도 밸런스를 결혼 거부나 결혼 연기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으며 남자가 결혼을 거부할때마다 가령 신의 나라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한 사람의 여자가 남게 된다. 그래서 남자는 현재 구미에서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즐기며 변함 없이 여자의 장소는 가정이라고 떠들고 있을 수 만은 없다. 그와 같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그러한 자유를 즐기는 것이 남자에게는 혹 유쾌한 일 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지만 유쾌함은 언제나 희생을 동반한다. 이 경우 그 희생은 과잉의 여자들인 것이다.

 

침착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좋아하여 갈망으로 초조하며, 날카로운 두뇌와 강건한 육체로 무엇인가 가치 있는 생활을 요구하고 있는 여자들이야말로 안온하고 자유 애호가인 남성에게 있어서 시끄러운 희생이 아닌가. 일부일처제를 실현시킬 실제적인 방법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결혼은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여자는 누군가가 결혼 신청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날에는 결혼에 달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여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뛰어난  여성이나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마저도 가정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며 일부일처가 계속되면 결혼하지 못하는 여자의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유일한 해결법은 여성을 독립한 한 사람의 인간이 되도록 교육하여 국내의 또 국제적인 일터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며, 한편으로 남성에 대하여 여성도 그와  같은 직장을 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가는 것 외에는 없다.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자기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은 두 사람의 평등한 인간을 결부시키는 것이고, 그 두사람이 자기들에게도 또 사회에도 똑같은 책임을 나누어 갖게 되는 것이다. 결혼은 적어도 남성에게 있어서는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이다아내가 되는 여자는 가정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또 자기를  위해 생활 안정을 얻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본질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다. 사나이에게 있어서 아내는 반려가 되는  것으로, 의뢰자를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남자가 병이 들거나 경기가 나빠져도, 그런 여자는 척척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아내가 책임 있는 독립한 인간으로서 교육되어 있다면, 그녀가 사회에 나가서 일하더라도 사나이는 지금처럼 그릇된 거짓 자랑에 번민을 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충분히 아내를 양육할 만큼의 힘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고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혼을 사회의 그릇된  관념이나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잘라내 버리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보다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만일 가정을  갖더라도 여자들이 자기가 즐기는, 그리고 그것  때문에 훈련받은 일을 단념해야 한다는 두려움 없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다면, 그러한 여자의 자유는 얼마나 즐거운 것일까. 여자도 남자처럼 큰 생활력과 애정으로 가정과 일을 양립할 수 있고 바보스럽고 경솔하게 가정이냐 직장생활이냐 라는 말로 표현되는 저주스러운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된다면 여자의 자유는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가령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는 여자들의 비난과 자기 만족에 의존할 뿐인 사람들도경제적인 압박과 사회적인 불명예가 여자의 결혼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진실한 일부일처가 가능해질 것이다.

실패는 분명 불유쾌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실패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어떤 일이나 타인과의 교제를 하려 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려고 한다. 실패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패하면 스스로 자신에게 낙오자의 꼬리표를 붙이는 여성이 있다. 나는 실패했다. 그러므로 낙오자다 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실패담이 뒤 따르게 마련이다자립은 자기를 믿는 마음에서 출발한다.실패를 두려워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자기는 성공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모두에게 알려지면 나는 끝장이다. 어떻게 내가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심사위원의 실수가 아닐까. 내가 승진할 수 있다니, 행운이야. 여성에 대한 낡고  부정적인 편견이 여기에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낙오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성공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스스로 자기의 발을 묶어 버린다. 자립이란타인에 의해 당신은 이러한 인간이라고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가 어떠한 인간인가를 스스로 인식하고 보여주는 행동이다.거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19세기 미국의 부인참정권을 운동의 지도자 스잔 b. 안소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손가락질 받지 않겠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있는 소심한 인간은 뭔가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개혁의 열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적인 일에서 기꺼이 어떤 역할을 떠맡고, 때로는 한 걸음 양보하기도 한다. 상대의 견해가 자기보다 뛰어날 경우에는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켜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그 신뢰감을 더욱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사람도 당신을 방해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은 모두 재정립을 필요로 하고, 어리석게도 기존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버리는 일조차 빈번히 생긴다. 과거 반세기 동안에  일어난 세상의 변화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속에서 일어난 변화보다도 큰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일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사물의 가치가 침식당하고 있다. 이미 도덕은 통용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급격한 변화로 유대관계가 끊기고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 어떤 방법으로든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자유를 추가한 나머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혼란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일까? 자유의 의미를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현대인에게 천벌이 내려지고 있는 것일까? 불안이나 자기 불신으로 짓눌려진 사람,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내 주위에도 많이 있다. 즐거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견실함이 쌓여야 비로소 일이 성취될 수 있다는 오래된 규범은 이미 잊혀진 것일까?신구의 가치관이 마주치는 와중에 그 희생물이 된 사람도 있고,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왠지 허무한 채로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내려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자립하는 여성즉 필요로 하는 것 적어도 희망하는 것이 많은 여성 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언제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여성은 자기에게 결여 되어 있는 것, 혹은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남성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희망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여성은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하며,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여성이 원하는 시시한 것을 뛰어넘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손에 뻗칠 때, 당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면서도 독립된 자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관계와 만족의 함수 

노예를 자유롭게  만드는 일은 쉬인 일이며, 게다가 정의를  실행한다는 쾌감도 따른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든 일로, 우리들처럼 도덕적인 국민에게는 불가결의 정의감을 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타당한 이론을 발견하여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인간의 진보는 여자가 인간으로서 자라는 것과 같은 비율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참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진실을  찌르고 있다. 내가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줄까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시샘을 하지는 않을까. 우리들은 모두 늘 동성 친구를 구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막상 자기의 연인과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자기를 궁지에 몰아 넣거나 자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모르는 체하는 등의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여성들의 생각도 급속히 변화가 있다. 아직 어느 정도의 거리감으로 남아 있지만 예전보다는 동성인 여성에게 배려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혼자서 행동하는 것이며 집단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어머니에게 교육받아 왔다. 최후에 웃는 자는 단 한 사람뿐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여성은 경쟁심을 불태우는 것이다한 남성을 차지함에 있어서도,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결국 승자는  단 한사람뿐이라고...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여성도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즉, 주는 만큼 받는다라는 사실을 모르면 안되는 시기에 와 있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여성은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여성은 전 인구의 5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파 취급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현재 남성보다 열등한 2급 시민 밖에 될 수 없다고 하면 그 책임은 남성보다는 오히려 여성에게 있다. 여성은 아직 자기 자신을 그리고 동성을 믿고 있지 않다이와 같은 자세는 어떤 소수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자세가 여성을 마치 남성보다 열등한 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여성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너무나 많이 들어와서 불안해졌고, 자신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간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결코  그처럼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부정적인 편견에 동요되지 않고 자존심을 길러 간다면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우월한 듯한 얼굴을 하는 , 과학은 성별에 의해 우열을 가릴 만한 근거가 아무 데도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야 어떻든 인간의 신앙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은 완전주의자인가?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생활방식은 자기 자신에게나 상대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짐을 지운다. 노력가라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한다. 조금씩이라도 전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과제를 이루어 놓고 다음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완전주의자는 단번에 만능의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그래서 하찮은 일로도 금방 자포자기한다. 완전주의자는 언제나 자신을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까지도 불완전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그런 불완전한 타인은 완전주의자의 정연한 소우주의 침입자라고 간주한다완전주의자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사물을 전체와의 균형을 생각해서 바르게 보는 눈이다. 감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판단하지 말 것, 당신은 혹시 모든 것을 한번에  단정지어 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의 기분에 따라 보고 들은 것에 각색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에 시달리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강한 충격을  받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또는 화가 났을 때 누구와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사물을 분석해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피해자형일까 모든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행되는 듯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가? 모든 사람이 다 자기들의 문제를 억지로 내게 떠맡겨서 나쁜일이 생기면 전부 내 탓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데, 내쪽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에는 모두 냉정하게 외면하곤 한다. 피해자형은 자기가 먼저 발언하거나 주장하거나 자기 변호하는 것을 꺼린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분명치 않은 태도를 문제삼지 않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때 그 곳에만 안 갔어도.이렇게 나이를 먹지만 않았다면 모두가 나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준다면. 피해자의 역할은 결코 즐겁지 않다. 피해자형은 흔히 심리적인 마취상태에 빠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은 자꾸 흐른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가엾다고 아무리 한탄해 보아도 무엇하나 변하는 것은 없다. 인생이 자기 형편에 맞게 변하기를 그저 바라기만 한다고 해서 인생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과 경쟁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
한사람 한사람의 여성의 신변에 일어나는 일 그 결혼생활이나 가정에서 생기는 일은 널리 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나에게 이 책을 쓰게 하였다. 우리들 여성이 행복을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성끼리의 협력, 유연한 자세 그리고  행동력이 필요하다.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간으로서 자기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인생의 중심에 자리잡게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뒤에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건전한 감각을 갖고  목표로 하는 일에 정열을 쏟으며 독립심을 길러가야 한다. 날이 갈수록 혼미의 도를 더해가고 있는 세상이지만노력한다면 여성은 그 안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의 인생을 균형잡힌 건전한 것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다.여성은 그 사회적 정신적인 성장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남성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많은 남성을 소외시키고 있기도 하다.

 

대립에서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수세기에 걸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 온 폭력적인 수단으로 그들을 이겨낸다 해도 그런 증명은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사회학자 애슐리 몽테규는 '오래 살아도 젊은 마음 그대로 죽을 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항상 마음을 열고 나이가 들더라도 정신적으로  젊음을 되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모험심을 발휘하라. 성패를  따지지 말고 일단 무슨 일이든지 해보는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 <>

 

2009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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