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김명인<문장들>에 대한 대담

미송 2011. 7. 16. 18:34

수상작품; 김명인의 시 <문장들>에 대한 대담

 

김명원: 선생님, 반갑습니다. ‘2011 올해의 좋은시賞’ 수상자로 선정 되셨는데요. 그간 여러 문학상을 받으셨지만《웹진 시인광장》에서 기획한 작품상은 시인들이 수상작을 고르기 위해 까다로운 선별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선 좋은 작품을 저희 웹진에 리뷰하도록 배려해 주신 점에 감사드리고, 아울러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에 대한 소회랄까요,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명인: 문장들」을 천거해 수상작으로 뽑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선고에 관여하신 분들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간의 전말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런 번거로운 과정에는 말려들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문학상을 상업적인 절차로 수식해서 복잡하게 꾸민 어떤 요청을 물리친 직후라, 나도 모르게 진행되어온 이 순전한 결과는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는 지난 몇 년간 시작(詩作)에의 집중력을 제대로 모아보지 못했습니다. 직장 일이나 칭병(稱病) 등이 그 구실이었지요.「문장들」은 시의 자리로 돌아가 몰두해보려는 간절함이 반영된 작품이라, 여러분들의 주목이 내게도 각별하였습니다.

 

김명원: 수상작인「문장들」은 시업을 운명처럼 짊어지고 진정한 문장을 찾아 바다로 떠나 온 시인의 절박함과 스산함을 잘 형상화하고 있는 수작인데요. 왠지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보르헤스의「궁전에 관한 우화」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미 유실된 단 하나의 완전한 문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시인들의 행보가 가슴 저몄다고 할까요? 이 시를 쓰시게 된 배경이랄까요, 시상이랄까요, 궁금합니다.

 

□ 김명인: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이 보르헤스의「궁전에 관한 우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보르헤스에 의하면 시란 전체이고 세부이면서 그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시인에게 불멸의 이름과 죽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지만, 그때그때의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본질이라는 점에서 우주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의 “우주의 완성을 건 한 자(字)의 생명(「꽃잎 3」)”이라는 언급도 의미심장하지요. ‘문장들’은 잃어버린 완성을 찾아 미로 속을 헤맨다는 영원한 우화의 운명과 겹쳐서 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우화들이 그러한 것처럼 어떤 보편성이「문장들」에서 환기된다고 해서 보르헤스나 김수영이 이 시의 출발점은 아니었습니다.「문장들」은, 시란 본질적이며 궁극적이라는 나의 오랜 믿음을 반영한 작품이지요. 세상에 없는 유일한 원본을 찾아 헤매는 것은 시인들의 대(大)로망이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과 관련해서 보르헤스나 김수영을 떠올려보는 것은 질문지를 받고난 뒤부터입니다.

 

김명원: 「문장들」의 내용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시는 시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을 제시하고 있지요. 선생님께서 피력하신 “쓰지 않는 문장”과 ‘씌어 진 문장’에 대한 간극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적 화자가 고백한 “쓰지 않는 문장으로 충만하던 시절”과 ‘이미 쓴 문장들로 허기진 시절’ 사이에서의 심적 방황이 서늘하거든요.

 

 □ 김명인: 시적 가능성과 그 실현에 관한 문제라면 어떨까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절대의 시(詩)더라도 언표(言表)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시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시는 불가지적 원형을 가시(可視)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정신활동의 결과이며, 그 가치는 드러난 존재의 개별적인 형상성으로 가늠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시적(先詩的)인 혼돈을 언어로 매개할 때, 여간한 긴장 없이는 그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말할 나위 없이 시는 표현되는 순간에 이미 불가피하게 매재(媒材)의 간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매재란 최초의 형상을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불순한 질료들이기도 하지요. 그런 까닭에 시인에게는 이런저런 장애를 돌파해 완성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며, 또 그것을 실현시켜보려는 치열함과 끈질김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를 흠모하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그의 목표가 끝내 도달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자각하는 것입니다.

 

김명원: 시인이란 끝내 도달점이 없는 길 위에서 문장을 찾아 헤매야 하는 존재인가요? 문득 주어 든, 혹은 찾게 된, 여정에서의 문장에는 인격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인지요? “이 문장은 영원히 완성이 없는 인격이다”라는 초입에서의 단정이 명료하기도, 아프기도 하였습니다.

 

□ 김명인: ‘문장’을 찾아 나선 탐색의 도정에 선 구도자라면 어떤 권위에게도 쉽사리 예를 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각하는 절대란 자체가 예(禮)인, 전인격적인 존재일 테니까요. 그리하여 이 불가능한 목표에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미로 속을 헤매다 마칠 운명임을 예감한다하더라도 그의 희구는 일생동안 그를 긴장시킬 것입니다.

 

김명원: 시 창작상의 질문인데요. 비교적 긴 6장으로 이루어진 장시를 쓰실 때의 구성을 미리 계획하셨는지요?

 

□ 김명인:  이 시는 처음부터 시종(始終)이 함께 일깨워진 작품입니다. 구상이나 계획을 갖고 쓴 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이태 전 가을, 남해안의 어느 항구에서 지난밤의 과음으로 숙취한 몸을 추스르면서 한나절을 혼자서 여객선 터미널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있었을 때 문득 떠올렸던 시의 전모(全貌)인 것입니다. 물론 부분 수정은 했었지요. 그러고 보니 제 시의 대부분은 어디로부터 불현듯 날아와서 얼결에 나를 수태자의 위치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장악하며 쓴 시라면 짜임새가 더 있었을까요?

 

김명원: 선생님의 작품들에 유난히 물 이미지가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는데요.「문장들」도 바다에 귀착한 한 시인의 고달픈 시적 항로를 펼쳐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물이 주는 시원성에 닿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하는 이유에서, 시를 향했던 원초적인 그리움이 태생의 환경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며, 바다와 산맥으로 가로막힌 고향 영동의 기막힌 자연과 척박한 사람살이, 그리고 유년시절의 배고픔을 통해 일깨워진 본능적 감각과 일상으로 마주쳐야 했던 무한도피에의 열망을 자극하던 가없는 바다, 동해를 들고 계십니다. 바다는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 김명인: 주지하다시피 내가 태어난 곳은 동해의 궁벽한 바닷가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높이에 걸려 출렁대던 수평선이나, 해안선을 둘러 띠처럼 펼쳐진 명사십리, 그 뒤로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태백준령들과 마주하며 자랐습니다. 그 물과 그 산맥은 건너고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어린 나의 무의식 속에 일종의 경계로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바다는 내 시의 주된 심상이었습니다. 물은 물이되 마실 수 없는 물, 바다. 그 광활함과 광포함으로 늘 외경의 대상이 되었던 동해는 깊이 모를 심연을 동반하고서 줄곧 내 곁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바다를 두고선 경계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태생의 무의식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시가 줄기차게 바다를 변주해왔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김명원: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려 주셨으면 합니다.

 

□ 김명인: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말자는 게 요즘의 설계입니다. 한 학기 뒤면 정년이라, 내년부터는 지금보다 일상이 다소 느슨해지겠지요. 그 남는 시간들에는 여기저기 많이 떠돌고, 심심해지지 않도록 몇 권 책이나 집중해서 읽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