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예구상과 상상력
문심조룡에서는 성인이 경전을 탄생시킨 '마음의 작용(用心)' 을 문예창작을 위한 심적인 활동의 표준양식으로 삼고, '신사론(神思論)' 이라는 문예구상론을 통해 더욱 심도있게 작가의 창작을 위한 '마음의 작용'을 다루고 있다.
외부 사물에 대한 감동과 표현 욕구의 발생
문심조룡에 의하면 문예창작활동은 작가가 외부 사물에 대해 미감을 경험하고 - '감(感)',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 욕구가 일어나는 것- '흥(興)' 으로부터 시작된다.
창작충동은 작가와 외부 사물간이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부>편에서 "감정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사물에 의해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협은 창작을 위한 미적 체험이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작가가 미를 감상하는 능력과 미를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적체험을 위한 최적의 마음상태
유협은 <신사>편에서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의 상태(虛靜)'와 '집중력' 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미를 감상하는 능력과 미적 체험을 위한 최적의 마음상태를 구비하고 있다고 하여도 창작충동을 촉발하는 객관적인 사물을 떠나서는 미적 체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적 체험의 진행과정
그렇다면 작가의 외부 사물에 대한 미적 체험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유협은 <물생> 편의 "감정이 무언가를 선물하듯 사물에게로 향하면 사물은 이에 답하는 듯이 감흥을 선사한다" 는 구절을 통해 작가와 사물간의 상호작용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작가의 외부 사물에 대한 미적 체험은 '반응' 이 아닌 '감응' 이라는 의미이다. 문심조룡에 의하면 작가에게 감응을 일으키는 대상은 주로 계절에 따라 자연경관의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의미하는 '물색(物色)' 임을 알 수 있다.
상상력을 동반한 문예구상과 과정
문예창작을 위한 심적인 활동은 작가가 언어문자로 예술형상을 창조하기 위해 진행하는 사유 활동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창조를 위한 상상활동이 필수적이다. 작가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사물에 감응하게 되고, 이로부터 사물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얻게 된다. 이러한 인상과 감정이 그것을 예술화하는 과정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작가의 창작활동에서 상상력이란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근원이다.
상상 사유의 특징
<신사> 편의 첫 단락에서 " 옛 사람이 이르기를 ' 몸은 강이나 바닷가에 있어도 마음은 높은 궁궐에 있다' 고 했는데 이것이 상상력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유협은 문예구상에 있어서 상상력의 범위는 참으로 요원하기 때문에 조용히 생각을 모으면 천 년의 세월도 접할 수 있고 천천히 얼굴을 움직이면 만 리를 내다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글을 읊조리는 가운데 주옥같은 소리가 나오며 생각을 모으는 가운데 눈앞에는 바람과 구름의 변화 많은 모습이 펼펴지기도 하는데 이 모든 현상들이 바로 상상력이 극에 달한 것이라고 하였다.
시청각적인 미감은 외부의 사물을 직접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상상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각과 청각의 미적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률> 편에서 유협은 문예 상상활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작가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음향에 대한 미감을 '내청(內聽)' 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외부의 음향을 귀로 직접 듣는 '외청(外聽)' 과 구별하고 있다. 음향에 대한 감각을 내외로 구분하는 이치에 근거하여 본다면 상상 속에서 전개되는 형상에 대한 미감은 '내시(內視)'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활동의 원인인 외부 사물에 대한 감동과 연상은 모두 작가의 감성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예적인 상상을 유도하는 주관적인 조건 - 작가의 사고와 기질
지(志)는 작가의 사상과 의식이라고 할 수 있고, 기(氣)는 작가의 개성적인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志)는 작가마다 각기 다른 개성적인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마다 각기 다른 개성적인 기질이 밖으로 표현되면 재기(才氣)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개성적인 기질은 그 안에 재능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志)와 기(氣)는 본질적으로 작가가 문예 상상활동을 통해 창조해내는 문예형상의 개성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체성> 편에서 유협은 "기질이 사고에 열매를 맺게 하고 사고는 언어표현을 결정짓는다" 고 말하고 있다. 신(마음: 神)은 작가의 문예창작활동의 핵심이며, 문예형상을 창조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그 활동은 반드시 작가의 사상의식과 재능의 발휘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기(志氣)' 가 '신(神:마음)' 을 통솔하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문예적인 상상활동에 있어서의 영감의 문제
양기(養氣) 편에서도 "문예구상에는 예리함과 둔함이 있고 영감이 도래하는 시기에는 통할 때와 막힐 때가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문예구상의 트임과 막힘 속도의 느림과 빠름은 영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영감이란 문예구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돌연히 나타나는 독창적인 사고의 흐름을 말한다. 영감으로부터 촉발된 사고의 흐름이 창작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상상을 포함한 문예구상 활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영감은 신사(神思)와 동일한 개념은 아닌 것이다. 영감은 예술구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우연히 출현하여 신사 활동을 원할하게 해주는 사고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협은 물색(물색) 편에서 "사물에는 한결같은 모습이 있으나 사고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깊은 표현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깊게 생각할수록 하고자 하는 표현과 더욱 멀어지기만 할 때도 있다" 면서 왕래가 일정치 않은 영감의 내재적인 규율을 말하고 있다.
<문심조룡文心雕龍> 일부 타이핑, 채란
고대 중국의 가장 긴 장편 문학이론서를 해설한 책. 문장 짓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5세기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협이 쓴 문심조룡은 중국은 물론 동양을 대표하는 최고 최대의 문학이론서이다. 유협은 굴원, 이백, 두보 등과 더불어 중국문학사에 뛰어난 인물로 지칭된다. <文心>은 마음의 작용으로 문장을 짓는 원리를 말하며 <雕龍>은 문장을 정교하게 갈고 닦는 수사법을 말한다. 총 50편으로 구성된 본문은 편과 편 사이, 부분과 부분의 연결이 유기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짜여져 마치 뛰어난 건축물과 같이 문학이론의 위대한 전당을 구축하고 있다. 문심조룡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그 구성이 엄밀하고 근거가 분명하여 기나긴 문학사의 흐름을 계통화하였으므로 그 이후 허다한 문학이론서들이 저술되었지만, 어느 것도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저자 유협
자를 언화(彦和)라고 하며 지금의 산둥성 쥐현에서 태어나 장쑤성 전커우현에서 살았다. 유협은 소년 시절부터 유학을 익히다가, 일족이 몰락한 이후에는 남경 교외에 있는 정림사에 몸을 의탁해 그곳에서 폭넓게 불경의 경론을 공부했고, 정림사에 소장되어 있던 불경 서적의 분류 정리 사어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후 출가해 이름을 혜지로 고쳤으며, 그로부터 1년이 채 못 되어 죽었다. 아마도 제나라 말기 무렵, 약 서른 몇 살쯤에 '문심조룡' 저작에 뜻을 두어 50편으로 이루어진 문학론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시대적으로는 대체로 5세기 말부터 6세기초로 추정하고 있다.
동양 문예학의 집대성 문심조룡
유협(465?~ 520?)은 정치 , 사회적으로는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나 문화와 예술면에서는 다양한 발전을 이룩한 위진남북조 시기에 활동한 문예이론가이다. 소외된 지식인이었던 유협은 당시 정림사라는 절에서 중국의 고적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얻은 중국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문심조룡> 저작에 밑거름이 된다.
작가의 문예구상과 상상력
유협은 <물색>편에서 "사물에는 한결같은 모습이 있으나 사고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깊은 표현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깊게 생각할수록 하고자 하는 표현과 더욱 멀어지기만 할 때도 있다"면 왕래가 일정치 않은 영감의 내재적인 규율을 말하고 있다.
영감의 왕래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문예구상의 막힘과 트임, 느림과 빠름은 작가의 재능, 기질, 학식, 문장수련의 습관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영감의 왕래가 본질상 우연에 기초한다고 하여도 영감의 도래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랜 예술수양과 천부적인 재기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재(才), 기(氣), 학(學), 습(習)은 영감의 도래를 준비하는 보조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문예구상의 느림과 빠름에 대해 <부회>편에서도 "부여받은 재기가 같지 않으므로 사유의 실마리도 각기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체성>편에서도 "훌륭한 창작과 성과는 학문을 쌓음으로써 이루어지고 내면에 잠재해 있는 재능은 선천적인 기질에서 말미암는다. 기질이 사고에 열매를 맺게 하고 사고는 언어표현을 결정하므로 아름다운 문예작품을 창작함에 있어서 작가의 개성과 감정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문예구상 활동에서 재능의 차이는 구상 활동에서의 느림과 빠름의 차이를 낳는다.
<신사>편에서 "구상이 민첩한 작가는 마음속에 창작의 요점을 잡고 있어서, 예민한 감각이 구상을 앞질러 글을 쓸 기회를 만나면 곧바로 결단을 내린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여러 생각들이 가득 차서 의심되는 것을 거듭 살피고 깊게 사고한 후에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기회포착에 민감하므로 순식간에 소비해야 작품을 이룬다. 어렵고 쉬운 차이는 있어도 모두 넓은 학식과 오랜 수련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학식은 천박한데 공연히 시간을 늦추기만 하거나 재능도 없으면서 속도만 내는 것, 이렇게 하여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는 것은 아직 들어본 일이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의 문예구상이 넓은 학식과 오랜 수련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경우에는 속도의 느림과 빠름에 관계없이 모두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구상에 민첩한 작가'가 영감의 왕래에 더욱 민감하며, 사유의 흐름이 더 신속하므로 '쓸 기회를 만나면 곧바로 결단을 내려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기회의 포착에 민감하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을 의미한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장시간의 숙고를 거친 후 비로소 글을 쓴다. 그 사유의 흐름은 완만하고 느리다. 학식에 의존하여 문학적인 재능을 연마해낸다. 그러므로 문예 사유의 느림과 빠름은 영감의 왕래에 대한 기민함과 완만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예구상에 있어서 영감의 출몰은 작가의 주관적인 의지의 방향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협은 <은수(隱秀)편에서 영감은 "열심히 연구하고 깊이 생각한다고 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양기>편에서도 "자연스러운 사고의 조화로운 흐름에 따르면 사유논리에 융통성이 생기고 감정은 시원스레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과도하게 깊이 생각하면 정신이 피로해지고 기력이 약해진다. 이것은 마음의 법칙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 '신(神) 과 지기(志氣)'에 관한 유협의 탐색은 작가가 문예구상을 진행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마음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예창작을 위한 구상과 상상활동 자체는 작가의 마음과 사물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발생한다.유협은 이 점을 명확히 인식했으므로 문예창작을 위한 상상활동과 관계되는 '지기(志氣)'의 역할이 문예창작활동의 본질적인 특성이자 원동력이라는 것에 주의하였다.
문예적인 상상을 진행하는 객관적인 도구 -언어문자
그러나 유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의 눈과 귀가 외부적인 사물을 감지하는 데 관계되는 '언어문자' 의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작가가 외적인 사물을 감지하고 '의상'을 묘사하는 언어문자 표현들이 탄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만약 합당한 언어문자 표현들이 작가의 마음 속에 부단히 떠오르면 이는 곧 외부 사물에 대한 미적 체험과 문예형상을 창조하는 문예구상 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감지된 외부 사물의 형상은 문예언어로 남김없이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신사>편에서 말하는 '표현기구(언어문자)가 잘 소통되면 사물의 모습은 숨김없이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의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다시 말해보자면, 상상활동이 시작되어 수많은 생각들이 다투어 생겨날 때 작가 마음속에서는 일정하지 않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생각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면서 문예형상들이 이루어져 간다. '의상' 자체는 작가의 주관적인 마음과 객관적인 사물이 서로 연관되어 탄생되는 것이며, '의상'이 창조되면서 동시에 문예언어도 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색>편에 말한 바대로 문예구상의 과정에서 문예언어가 탄생되는 "기후와 사물의 생김새를 묘사하고, 수사를 정돈하고 음률을 안배하는" 과정은 바로 마음과 사물이 연결되는, "경물을 따라 천천히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오래도록 고려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문예 상상활동인 신사 활동은 언어문자와 더불어 진행된다. 작가는 언어표현의 문제를 고려할 때 마음속에서 먼저 표현을 구상한 다음에 구체적인 표현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예 상상활동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률을 고려하니 음률이 내 마음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유협은 작가의 문예구상에서 이루어지는 문예형상을 '의상(意象)'이라고 칭한다. 이를 문자로 구체화하여 표현하면 감상이 가능한 문예형상이 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표현과정이 바로 <신사>편에서 말하는 "성률을 따라 문자로 표현하며, 의상을 살펴 창작을 진행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언어문자를 예술적으로 활용하는 '조룡(雕龍)'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의 예술성취의 성패는 작가의 예술구상과 상상활동의 진행상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사>편의 찬(贊)에서 말하기를, "생각을 모아 적절한 문예구상을 이루면 휘장을 늘어뜨리고 승리를 얻게 된다"라고 하였다.
작가 수양론
유협의 <신사>편에서 원활한 문예구상을 이루기 위한 작가 수양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학적인 구상을 연마하는 데 있어서는 고요하고 빈 마음의 상태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독서와 연구를 통하여 학문을 쌓고 이를 통해 작가의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평소의 문학적인 수양을 통해 닦인 심정으로 구상을 전개하고 어휘를 선택하여 문학적인 이미지들을 이루어 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글을 가장 잘 짓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요하고 빈 마음의 상태(虛靜)를 유지할 것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요하고 빈 마음의 상태(虛靜)'는 미적 관조를 이루기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 뿐만 아니라 상상력의 발휘나 영감의 도래, 언어문자의 표현활동에 이르는 문예구상과 창작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견지해야할 심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유협은 문학은 적극적인 창조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문예의 매개체인 언어문자와 작가의 사상의식과 개성적인 기질에 의해 "의상(意象)'이 이루어지고, 이로부터 작품의 미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언어문자는 문예적인 상상을 진행하는 객관적인 도구며 작가의 사상의식이나 개성적인 기질은 언어문자를 활용하여 문예적인 상상을 유도하는 주관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협은 문예적인 상상활동에 작가의 재능과 학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작가의 재능과 학식은 고요하고 사심이 없는 마음의 상태에서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풍부한 생활경험과 학식과 수양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구체적인 문예구상의 단계에서는 반드시 미적 체험을 위한 마음의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외부의 자연이나 상황에 감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작가의 학식과 재능을 동원하여 문예구상을 전개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협이 <신사>편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인 "마음과 외적인 사물이 만나 노닐게 된다(神與物遊)"의 '노닐다(遊)'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노닐다'라는 것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예구상에 있어서의 '노닐다'의 경지는 '허정(虛精)'의 심리상태라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창작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허정'은 문예구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의 사상의식과 언어문자의 운용이 막힘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지녀야 할 심적인 상태인 것이다.
'허정(虛精)' 을 위한 수양방법
그렇다면 작가가 '허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작가의 사상의식과 언어문자의 운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양방법은 무엇일까? 유협은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는 것(養氣)과 풍부한 학식을 쌓는 것을 수양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기(養氣)
먼저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면, 작가의 사상의식은 문예구상의 관건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사상과 의식은 늘 정돈되어 있기가 힘들다. 눈에 보이는 온갖 현상들은 마음을 분산시키며 갖가지 생각은 뒤얽혀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만약 재능이 부족하면 정신활동의 기운이 쇠하게 되어 사상의식의 작용도 원활하지 않다. 사상의식이 분명하면 감응이 민첩해져서 취하고 버릴 것에 대한 판단이 명확해진다. 그러므로 문예구상을 원활하고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워야 하는 것이다.
<양기>편에 근거로 살펴보면, 마음의 생각과 언어는 정신활동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뜻에 자연스럽게 따르면 이치가 명백해지고 감정도 안정되지만 지나치게 파고들다보면 정신도 피곤해지고 기력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 마음 작용의 법칙인 것이다, 양호한 정신상태는 문예구상을 원활하게 전개하는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작가 자신의 원기를 보호하려는 주관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해진다.
사실 작가의 사상활동은 작가의 사상의식과 자질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의 사상의식과 자질은 연령에 따라서도 다르게 드러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살펴볼 때 젊은 사람은 식견이 짧지만 사상의식이 활동은 왕성하고 나이든 사람은 분별력은 강하지만 기운이 약하다. 사상의식의 활동이 왕성한 사람의 생각은 민첩하고 재치가 있어서 피곤함을 느끼지 않지만 기운이 약한 사람이 주도면밀하게 생각을 하다보면 정신이 손상되기 쉽다. 그러므로 정열을 지나치게 소모한다면 자연스런 기운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원고를 들고 목숨을 재촉하게 되니 이것을 글을 창작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주어진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지력을 쉼 없이 사용하다보면 마치 다리 짧은 오리가 다리가 긴 학을 흠모하여 학의 걸음을 좇으려 하는 것처럼 과도하게 문예구상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력이 소진되고 정신이 피곤해져서 마침내는 근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질병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재능과 시기를 살피지 않고 정신이 혼미할 때도 계속 생각에 몰두하게 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니 이것을 문예구상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문예구상을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을 할 때 반드시 정신이 절제 있게 펼쳐질 수 있도록 심경을 청정하고 평화롭게 유지해야 하며 기운이 조화롭고 막힘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즉시 생각을 멈추어 사색이 막히지 않도록 하여, 문장의 구상이 무르익으면 붓을 들어 감정을 서술하되, 사리가 잘 펼쳐지지 않으면 붓을 내려놓고 다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는 양기의 수양은 바로 평안한 마음과 조화로운 기운으로 머리를 맑게 함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이 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고민을 하며 구상에 몰두한다 해도 영감은 떠오르지 않게 되니 작품을 구상하여 언어문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협은 <신사>편에서도 마음을 잡고서 창작의 방법을 단련하고자 할 때에는 지나친 고심은 불필요하며, 창작의 규칙을 장악하는 데에 굳이 마음을 수고롭게 할 것을 없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개성적인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는 '양기(養氣)' 의 수양은 맑은 정신상태로 영감을 느끼고 문예 상상활동의 진행이 순조롭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작품의 의의와 인용문의 천박함과 심오함이 작가의 학문과 동떨어진 예는 들어본 적이 없으며, 체제와 격식의 고상함과 비속함은 작가의 습관과 반대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 것으로 보아 작품의 내용과 형식과 안배문제나 언어문자의 구체적인 활용기교 등은 학문과 문장수련의 습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자체가 문예 매개체인 언어문자의 활용을 통해 예술적인 가치를 완성하는 영역이므로 학문과 문장수련의 습성과 관련된 작가 수양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유협은 <신사>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식견을 넓이는 일은 내용의 빈곤함을 구할 수 있고, 전체를 하나로 꿰뚫는 요령을 장악하면 난삽함을 치료할 수 있다. 만약 식견이 넓으면서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요령까지 지니고 있다면 창작의 구상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문심조룡, 2005 지은이/ 김민나 펴낸이/ 심만수 펴낸곳/ 살림출판사
* 채란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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