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손보미<육인용 식탁>

미송 2011. 9. 29. 22:21

 

육인용 식탁

 

손보미

 

  

 

 


 

먼저 도착한 사람은 윤과 그의 아내다. 내 아내는 그들을 거실로 안내한다. 그들이 도착하기 바로 전까지, 나는 베란다 창문 너머로 검은 하늘이 끊임없이 뿌리고 있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한 눈이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이 눈을 푹푹 밟으며 아파트 광장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들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실눈을 떠보지만, 결국 그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무도 없다. 텅 비었다. 윤 부부는 신발을 벗기 전에 현관에 서서 외투를 벗고 탁탁 소리 나게 눈을 턴다. 아내는 외투를 받아서 현관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 둔다. 윤의 아내는 눈이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며 호들갑을 떤다. 차가 막히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윤의 아내가 웃으며 대답한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왔어요. 차를 몰고 나왔다면 큰일날 뻔했어요. 그런데도 이이는 전철 타는 게 불편하다면서 아직도 불평이라니까요.”

윤의 아내는 장난스럽게 윤을 질책한다. 윤은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윤은 잘 포장된 상자를 하나 건네며 내게 묻는다.

“이 식탁은 어디서 난거야?”

그리고 자신이 본 것 중에 가장 좋은 식탁이라고 감탄하듯 덧붙인다. 직사각형 식탁은 여섯 명이 앉고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식탁의 상단은 산호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산호 대리석의 중앙에는 길쭉하게 이탈리아산 월넛 무늬목이 코팅되어 있다. 식탁의 하단 부분은 최고급 비치나무인데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식탁 의자의 쿠션 부분과 등받이 부분은 최고급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모두 여섯 개다. 사실 우리 집에 놓기에는 지나치게 크다. 평소에는 벽에 붙여 놓아서 될 수 있으면 좁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만드는데, 오늘은 모처럼 친구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거실 중앙으로 내놓은 것이다. 거실이 꽉 찼다.

“이 집에 온 건 처음이죠?”

“그렇군.” 윤 부부가 집 안을 휙 둘러본다.

“별로 볼 건 없어요. 워낙 좁기도 하고.” 내 아내가 말한다.

윤의 아내는 장식장 위의 조그마한 액자 하나를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액자 속의 사진은 몇 년 전 신혼여행을 갔을 때 찍은 것이다.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고, 우리 둘은 활짝 웃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내의 시선이 정면 카메라를 향해 있지 않고 아주 미묘하게 몇 도쯤 어긋나 허공을 향한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최근에야 그것을 발견했다. 그때 그녀는 무얼 보고 있었던 것일까?

“식탁이 정말 대단한데요, 이렇게 멋진 식탁은 처음 봐요.”

윤의 아내가 한 번 더 식탁 이야기를 하며, 의자에 앉고, 윤이 그녀 옆에 앉는다. 나와 내 아내가 그 맞은편에 앉는다. 윤의 아내가 선물 상자를 뜯어 보라고 나를 재촉한다. 고급스러운 목재 상자 속에는 비닐로 낱개 포장되어 있는 시가가 여러 개 들어 있다.

“고히바 시가야.”

나는 고히바 시가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상자 뚜껑을 덮는다. 윤이 핸드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번호를 꾹꾹 누른다. 윤의 통화가 끝나자 그의 아내는, 한 부부는 언제쯤 도착한대요? 라고 묻는다. 조금 늦는 모양이야,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윤이 대답한다. 아내는 먹을거리를 가지러 부엌에 간다. 나는 맥주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내를 따라간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에 나는, 마른 오징어와 땅콩, 비스킷 따위를 접시에 담고 있는 아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아내는 음식을 담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고 입을 앙다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음식을 접시에 담기 시작한다. 대충 가지고 나오세요, 라고 윤이 소리친다.

 

한 부부가 오기 전에 우리들은 먼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윤은 술을 잘 못 마시지만, 그의 아내는 술을 아주 잘 마신다. 여러 가지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누군가가 얼마 전에 함께 갔던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두 달 전 우리 부부와 한 부부, 그리고 윤 부부는 함께 도심 가운데 있는 호수로 나들이를 갔다. 막 여름이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계절은 가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은 추워지기 전에 어디 근처에 간단한 나들이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들 여름에 휴가 한번 떠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여름휴가 때, 내가 뭘 했는지 알아? 3박 4일 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 뉴스에서는 매일 경포대에는 올 여름 최대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쩌고저쩌고 호들갑스럽게 방송을 해대지. 하지만 그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뉴스야? 해마다 여름의 어느 날에는 그 해 여름의 최대 인파가 해수욕장에 모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나한테 집에서 수박이나 먹으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게 가장 훌륭한 피서 방법이라고 말하지 말아 줘,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고 해. 전기요금 때문에 마음껏 에어컨을 켜지도 못한다고. 게다가 수박에는 완전히 질려버렸어. 매일매일 수박만 먹었다고. 진짜야, 진짜 밥 대신 수박만 먹었다니까! 한이 한탄하듯이 말했다.

한참 전에 나들이철은 지나갔고 날씨는 이미 쌀쌀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우리의 나들이를 가능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일요일 낮의 호숫가는 더할 나위 없이 한적하고 조용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충분히 따스하다고 느낄 만한 햇살이 있었고, 도무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늦가을의 하늘이 있었고, 과일이 있었고, 샌드위치와 김밥이 있었으며, 맥주와 담배가 있었다. 그것들로 우리는 충분히 평화롭고 고요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아내는 남색 재킷과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고, 면바지 안에는 팬티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스타킹 때문에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온몸이 나일론으로 꽁꽁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 아내는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을 때도,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불편하면 스타킹을 벗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아까 화장실에서 벗었어요. 아내가 대답했다. 화장실? 응, 저기 카페 안에 있는 화장실. 호숫가와 도로가 맞닿은 곳에 대형 카페가 하나 있었다. 언제 저렇게 먼 곳까지 다녀왔어? 아까 전에요. 아내는 신발을 벗어 나에게 맨발을 보여주었다. 나는 잠시 동안, 아내가 좁은 화장실에서 스타킹을 벗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바지를 벗고, 스타킹을 벗고, 그리고 다시 바지를 입었겠지. 신발은, 신발은 어떻게 했을까? 신발을 신고 바지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신발을 벗었을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나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컵을 하나 깬 것 외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아내는 깨진 컵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유리 조각을 꼼꼼하게 치운 후,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을 함께 봤고, 커피도 한 잔씩 마셨다. 당신 친구들은 이상해요. 아내 말에 내가 물었다. 왜? 너무 경직되어 있어요. 무슨 뜻이지? 다 바보들 같아. 아내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 앉아, 아내가 스타킹을 벗기 위해 한쪽, 한쪽 신발을 벗는 장면을 오랫동안 떠올려 보았다.

 

우리들이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부부가 도착했다.

“늦게 오셔서 우리들 먼저 시작했어요.”

윤의 아내가 말한다. 한 부부는 식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렇게 좋은 식탁이 어디서 났어요?” 한의 부인이 묻는다.

“글쎄요.” 내가 딴청을 피운다.

“어서 앉아요.”

자리에 조금 변동이 생긴다. 나와 아내는 식탁의 짧은 쪽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고, 내 왼쪽에는 한 부부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윤 부부가 앉는다. 아내는 부엌으로 들어가, 맥주와 과일, 그리고 배를 채울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을 담아온다.

“우리가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윤의 아내가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묻는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한이 묻고,

“저번에 호수로 놀러 갔을 때 이야기요.” 아내가 대답한다.

“전 호수 옆 도로에 있는 카페에 잠시 들렀었어요. 스타킹을 벗으려고요.”

“아, 그때 카페 쪽으로 가는 걸 봤는데, 스타킹을 왜 벗었어요?”

윤이 묻는다. 아내는 그냥 웃는다. 다시 윤.

“하긴, 점심 먹고 나서는 우리 모두 흩어져 있었죠. 호수의 다리를 구경하러 간 사람도 있었고, 차 안에서 낮잠을 잔 사람도 있었고, 그리고 카페에 스타킹을 벗으러 간 사람도 있었네요.”

“아, 그 다리요?” 아내가 아는 척을 한다.

“다리가 아주 멋있더라고요, 그렇죠?” 윤의 아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날 점심을 먹은 후, 우리들은 별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그저 호숫가에 앉아 있기만 했다. 한의 부인이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농담을 던졌고, 한에게 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난 정말 너무 졸려요. 눈꺼풀이 쏟아져 내릴 거 같단 말이에요. 한 부부는 차에서 눈을 좀 붙이고 오겠다며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넷이 남았을 때, 윤의 아내가 다리 쪽을 가리키며 구경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호수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폭이 좁은 물길이 이 두 개의 커다란 호수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 물길 위로 왕복 4차선 도로로 이루어진 다리가 있었다. 윤의 아내가 가리킨 것은 그 다리의 아래편이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그냥 그 위로 차가 지나다닐 뿐이야. 구경할 만한 게 전혀 없다고. 윤이 거절했지만, 그의 아내는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접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노곤해져서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이팝나무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마다 잎 사이로 드문드문 떨어지던 햇살이 같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내가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때까지 다리에 가고 싶다는 윤의 아내와 가고 싶지 않다는 윤의 실랑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아내는 그때 이미 카페로 간 후였다. 실랑이를 벌이던 윤의 아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좋은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이 말했다. 나랑 같이 다리 구경하러 가요. 윤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둘이 다녀오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딱히 구경하러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다. 그렇다고 거절을 하는 것도 좀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나는 윤의 아내와 함께 다리 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 다리 바로 옆에는 아내가 스타킹을 벗으러 들어갔던 카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아내가 그곳에 있는지 몰랐다.

“다리가 멋있었죠?”

윤의 아내가 다시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아내는 피곤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유리컵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다. 가끔씩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내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내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 아내는 이 모임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왜? 나는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득 아내의 시선이 나에게 오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둘의 눈이 마주치고 아내가 입 모양으로만 무언가를 말하는 시늉을 한다. 나는 처음에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한참 후에야 나는 아내가 입 모양으로 만든 단어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개자식〉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식탁이 정말 어디서 났어? 나도 이렇게 좋은 식탁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씨발, 부럽다. 씨발, 좆나게 부러워. 응? 알겠어? 좆나 부럽다고, 씨발.”

한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한다. 사실, 항상 제일 먼저 취하는 사람은 한이었다. 우리는 요즘 한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한은 누구나 알아 주는 명문대 공대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바로 유명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가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무너졌고, 그도 갑자기 무너졌다. 한의 아내가 한의 팔을 붙잡는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괜찮아요. 저 사람 지금 취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들은 취하지 않았을 때도 저런 말 정도는 아무렇게나 하잖아요.”

“그럼요, 저런 말 한다고 아무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자들이 한의 부인을 위로한다. 한의 부인은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이지만, 곧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한은 장난스럽게 빈 맥주잔으로 식탁 위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맥주를 가져다가 한 앞에 놓아 준다. 윤이 한에게 자네는 술을 좀 줄여야 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질지 누가 알아? 라고 조금 나무라듯이 말한다. 그리고는 내 아내를 항해, 안 그렇습니까? 동의를 구한다. 아내는 억지로 조금 웃는다. 여하튼 윤의 핀잔이 분위기를 좀 좋게 만들어 주었다.

“나도 술을 좀 더 줘요, 남은 술이 있을까 몰라, 정말, 저이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이 집의 술이 다 동났을 거야.”

윤의 아내가 한을 가리키며 깔깔거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은 맥주 다섯 병과 와인 두 병을 혼자 다 마셨다. 세 번 정도 화장실로 달려갔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먹은 음식을 게워내기도 했다. 윤의 아내가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내 아내를 쳐다보며 묻는다.

“담배 피워도 되나요?”

내 아내는 망설이다가, 결국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불을 붙여 주면서 한마디 한다.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

“아, 잔소리는 그만 두세요. 사실은 이이도 언제나 그 소리랍니다. 담배는 몸에 해로워, 당장 끊는 게 좋을 거야.”

윤의 아내가 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깔깔거린다. 아내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본다.

“담배를 안 피우세요?” 아내가 윤에게 묻는다.

“안 피우지.” 내가 대답하고.

“거짓말, 난 저 친구가 담배 피우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혀 꼬부라진 한이 말한다.

“설마.”

윤의 부인이 이마에 손을 얹고는 고개를 흔들며,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 때문에, 우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내 아내는 웃지 않는다.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윤의 결혼식 때 내가 사회를 봤다. 아내와 만난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그녀의 집에서 우리의 결혼을 반대한 지 4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했다. 그녀의 집은 너무 부자였고,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돌이켜 보면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특별히 입에 담을 것도 없는. 내가 별로 웃기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신경 써서 준비한 농담을 하는 동안 아내는 벽에 기대서서 신랑과 신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가슴에 화려한 코르사주가 달린 푸른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남의 결혼식에 초라하게 하고 가면 내 결혼식도 그렇게 된대요. 나는 그날 보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그 모습만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진다. 그해 겨울에 결국 우리는 결혼 승낙을 받았고 이듬해 봄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가서 술과 안주를 더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비스킷 따위를 먹는다. 내가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동안, 이따금 아내는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느낀다. 어차피 아내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모두 돌아가면 도대체 왜 저러는지 꼭 알아내고 말겠어. 마음이 몹시 불편하지만, 이 모임이 끝날 때까지만 참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린다.

 

“잠깐만 제가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아내가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어요.”

망설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에 비하면 그녀의 말투는 아주 단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억제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웃거나 먹거나 떠들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본다. 아내는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선 채로 맥주 한 컵을 쭉 들이켠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내가 묻는다. 나는 아내가 친구들 앞에서 싸움을 걸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이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갑자기 한이 커다란 소리로 트림을 했고, 그의 아내가 여보, 트림은 화장실 가서 할 수 없어요? 라며 핀잔을 준다.

“내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

아내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는 곧 나에게 말한다.

“여보, 나 사실은 다 알고 있어요.”

그녀는 이제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뭐라고? 라고 되묻는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거 같다고 생각한다.

“나, 다 알고 있다고요.”

어머, 세상에나, 라는 여자들의 목소리와 한이 쯧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영문을 몰라 잠시 허둥댄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취했어?”

나는 아내가 질 나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다. 취하면 그럴 수 있다.

“아뇨, 멀쩡해요.”

“그런데 왜 그래?”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난다. 아내와 나를 제외한 네 명은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우리를 번갈아 쳐다본다. 바람이라고? 4년 동안이나, 장인에게 애걸복걸하면서 결혼한 여자다. 내가 그 4년 동안 얼마나 많은 멸시와 모욕을 받았는지 이 여자는 잊어버린 것일까? 그토록 고생하면서 결혼한 여자를 두고 바람이라고? 다른 사람이면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 시간이 아깝고 아까워서라도 바람 같은 건 못 피운다. 도대체 저 여자, 왜 저러는 거야?

“죄송해요. 당신들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가 놀고 떠드는 걸 전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당신, 제정신이야?”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쩌면 몹시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나와 내 남편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야? 당신,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

“무슨 뜻이냐고요?”

아내가 나를 쳐다보고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되묻는다.

“무슨 뜻이냐고요? 무슨 뜻인지 정말 몰라요? 내 입으로 내가 말을 해야 해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 입으로 뭘 말해?”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말한다. 나는 아내가 하는 저 이야기들이 단지 나를 망신주고 싶어 하는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거짓말에 발끈해서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여보, 정말로 내가 당신이 누구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내 입으로 말하기를 바라요?”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도대체 내가 누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거야?” 나는 조용히 묻는다. 어쩌면 좀 비아냥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내가 나를 쳐다보더니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뱉어낸다.

“저 여자요. 당신, 저 여자랑 바람 피우고 있죠.”

아내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지만, 결국 또박또박하게 말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녀는 윤의 아내를 가리키고 있다.

“당신, 저 여자랑 만나고 있잖아요. 나와 저 여자의 남편을 감쪽같이 속이면서 말이에요.”

“뭐라고?” 내가 되묻고,

“뭐라고요?” 윤의 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내 아내에게 묻는다.

윤이 나와 아내,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동시에 쳐다본다. 한 부부는 초조한 눈빛으로 나와 아내, 윤과 윤의 아내를 번갈아 쳐다본다. 한 부부의 초조함 속에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 숨겨져 있다. 젠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날 호수에 놀러 간 날, 둘이 다리 밑에 함께 있는 걸 봤어요.”

“아,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원래 나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내가 내 아내와 함께 가달라고 이 친구에게 부탁한 거예요.”

윤이 조금 안심이 된다는 목소리로 말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 부부는 실망했다는 듯,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닥거린다.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다. 흔들림이 없다. 전혀.

“아뇨, 저 둘이 다리 밑에서 뭘 하고 있는 줄 알아요? 부둥켜안고 키스하고 있었어요. 난 똑똑히 봤어요.”

“설마.”

한과 그의 아내가 동시에 말한다. 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는다.

“주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았죠. 세상에, 난 어젯밤까지도 그 장면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나는 윤의 아내를 바라본다. 내 아내는 계속해서 말한다.

“아뇨, 지금도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요.”

아내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다.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녀는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미쳤군. 나는 모두 다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좋아. 여보, 당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나쁜 짓이야.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잖아. 취했으니까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제라도 그만둬. 사실을 밝히고 사과하란 말이야.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야?”

 

갑자기 윤의 아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미안해요, 여보.”

윤의 아내는 윤에게 울부짖듯이 말한다.

“나는 그저 호기심으로 그런 거예요. 그를 사랑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날 믿어 줘요.”

이건 또 뭔가. 나는 처참한 마음으로 윤의 아내에게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둘이 무슨 사이였다고요? 당신하고 나하고?”

“당신이 날 좋아했고, 당신이 나에게 치근덕거렸잖아요. 난 알고 있었어요. 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처음부터 거절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날도…… 다리 밑에서…….”

윤의 아내는 이제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윤이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한 부부가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쩜 그럴 수가. 한의 아내가 말하자, 정말 너무하는군. 한이 그녀를 따라 말한다.

“모두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내가 저 여자랑? 말도 안 돼!”

윤의 아내 어깨가 더욱 심하게 흔들린다. 윤이 그녀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여러 가지 말을 더 한다. 왜 아무도 나를 믿지 않는 거야? 믿어 봐, 제발. 오해야. 진짜 말도 안 된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이라고! 그때 갑자기 아내가 소리지른다.

“개자식!”

아내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포크를 내 쪽으로 던진다. 포크는 아슬아슬하게 나를 지나쳐서 내 뒤에 있는 탁상시계를 건드리고, 시계와 포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재미있군.” 한이 말한다.

“여보, 조용히 좀 해요.” 한의 아내가 말한다.

나는 아내를 향해 절망적으로 말한다.

“당신 정말 미쳤어?”

“당신은 정말 나빠, 개자식 같으니라구. 저것 봐, 그래도 저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잖아.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당신은 뭐야? 당신 자신을 돌아 봐! 당신 정말 추해, 추하다고!”

“뭔가 오해가 생긴 거야.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오해가 아니라면 저 여자 정신이 어떻게 된 게 틀림없어. 안 그래? 게다가 친구의 아내라고. 친구의 아내를 건드릴 만큼 내가 질 나쁜 인간이야? 내가? 당신에겐 내가 고작 그 정도의 인간이었어? 우리가 몇 년을 연애했지? 난 당신 아버지의 반대도 무릅쓰고 당신이랑 결혼했어. 당신 아버지는 내게 온갖 인간적인 모멸을 퍼부었어. 하지만 난 다 참았어. 난 그런 사람이라고! 난 그만큼 당신을 사랑했던 거야! 알아들어? 이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거야,”

나는 말을 끝낸 후 힘껏 식탁 다리를 발로 찬다.

“이 빌어먹을 식탁도 그래, 당신 아버지가 당신에게 달랑 남겨 준 거지. 나는 아직도 당신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 잊지 않고 있어. 무슨 벌레 보듯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지. 〈이렇게 집이 좁아서 이 식탁이나 들어가겠나?〉 그리고는 이 집에 단 1분도 앉아 있지 않고 떠났어. 그래, 당신 아버지는 말이야. 부자였지. 인정해, 하지만 머릿속은 텅텅 비었어. 당신도 알잖아. 당신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살아 왔는지 말이야. 당신 아버지는 자기 자신도 주체 못했지. 빌어먹을 이 식탁처럼 말이야.”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얼굴에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윤의 아내는 계속 울고 있고, 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윤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이 상황을 난감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나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낮게 한숨을 쉰다. 나는 지금 벌어지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한은 술을 더 달라고 한다. 한의 아내가 마치 자신의 집인 양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맥주 서너 병을 들고 나온다. 우리를 바라보는 한 부부의 표정이 공청회라도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요!”

아내가 소리지르고, 윤의 아내가 울음을 그치려고 노력하면서 말한다.

“이런 얘기로까지 비약하지 말아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이제 그만 하자고요.”

윤의 아내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거 원하지 않아요. 내 아내도 뉘우치고 있고, 당신 남편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으니,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군요. 여보, 일어나.”

윤이 자신의 아내를 일으켜 세운다. 그녀는 양손으로 식탁을 짚고 겨우 일어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윤은 그녀에게 외투를 입혀 준다. 아내는 현관문을 열어 준다.

“안녕히 가세요. 다시는 만나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동감이오.”

현관문을 닫고 나서도 윤의 아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그녀의 울음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아내는 거실로 들어온다. 한이 새 맥주의 뚜껑을 딴다. 한의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에요? 어쩐지.”

한의 아내가 말하고.

“둘이 결혼 할 때, 장인이 반대한다는 말 왜 안 했어? 감쪽같이 속였구먼!”

한이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한은 은밀한 목소리로 묻는다.

“잤어?”

“여보, 왜 그래요?”

한의 아내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아내는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숙인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모임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기분이 어떠시죠?”

한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러게 말이에요.”

한의 아내가 맞장구를 친다. 아내는 잠시 후 일어나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 닫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린다. 나는 한 부부에게 돌아가 달라고 말한다.

“술이 남았는데.”

둘이 동시에 말한다. 돌아가 줘, 나는 한 번 더 말한다. 그들은 일어나서 현관 옆 옷걸이에 걸어 둔 외투를 찾아 입고, 아쉬운 듯이 식탁과 그 위에 널브러져 있는 술병과 안주를 바라본다.

“식탁은 정말 좋았는데. 정말 내가 본 식탁 중에서 가장 멋진 식탁이에요. 이 식탁을 또 볼 수 없다니, 정말 아쉬워요.”

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집을 나간 후 나는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는다. 그날 호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와 윤의 아내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아니다. 함께 다리를 구경했을 뿐이다.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저러는 거지?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니, 다리를 구경했을 뿐이잖아. 마치 암흑 속으로 던져진 듯한 기분이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 나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내 앞에는 식탁이 놓여 있을 뿐이다. 직사각형 식탁은 여섯 명이 앉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식탁 상단은 산호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산호 대리석 중앙에는 길쭉하게 이탈리아산 월넛 무늬목이 코팅되어 있다. 식탁 하단은 최고급 비치나무인데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의자의 쿠션과 등받이는 최고급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졌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가보니, 다리 하부가 꽤 정성들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오길 잘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다리 밑, 좁아진 물길을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널찍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는데,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여러 개의 아치형 기둥이 마치 지붕처럼 산책로를 덮고 있는 다리를 떠받치고 있었고 그 벽면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램프가 달려 있었다. 기둥 사이에는 초록색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서 사람들이 호수로 내려가는 걸 막고 있었다. 심플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다리 밑은 햇빛이 들지 않아 무척 춥게 느껴졌다. 호수의 잔물결이 기둥 밑부분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그럴 때마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 밑까지 흘러온 갈색의 작은 이파리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 멀리에는 어렴풋하게나마 윤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보였고, 한 부부가 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난간에 딱 붙어서 호수에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손을 내밀고 있는 중이었다. 도로 위쪽으로는 대형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의 문 왼쪽에는,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커다랗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개 인형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카페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자였는데, 면바지와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문득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언제부터 일행에서 사라진 거지? 점심 먹을 때까지는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어디 간 걸까?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 있는 거지? 나는 어디 있는 거야? 아니, 그럼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싱겁기는. 나는 혼자 픽 웃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빤 뒤, 재킷의 깃을 올렸다. 이제 이 다리 밑에도 가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곧 겨울이 오겠군.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8월호》

 

창작 노트

마이클 스캇은 이렇게 말했다. “가끔 나는 다른 행성에 사는 우주인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해요. 매우 멀리 사는 사람 말이죠. 지구의 많은 문제들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안 돼요. 멀리서 보면 우리는 그저 작은 불빛일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는 날 위해서 가슴 아파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는 굉장히 좋은 망원경을 갖고 있어서 내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소설을 쓰는 시간의 대부분은 성능 좋은 망원경을 가지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서 바라볼 것. 그래서 ‘작은 불빛’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사물을, 이야기를 발견해 내는 것. 그리고 아마 가장 마지막에는 ‘나’를 발견하는 것. 마치 내가 그런 사물인 것처럼, 내게 가장 낯선 사람인 것처럼. 아아,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야.

 

 

작가약력

-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 졸업, 2008년 박사 수료

- 현재 경희대학교에 출강 중

- 2009년 《21세기 문학》에서 단편소설 <침묵>으로 등단

-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담요>로 등단

- 도서출판 지만지에서 나온『최일남 작품집』과 『손소희 작품집』에 해설 등재

- 중앙북스에서 발간된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한국 대표작가 스무 명이 쓰는 개인 가족사 그 감동과 추억)』에 수필 등재

- 2011년 『신춘문예 당선자 새소설 - 사바스』에 작은 소설 「피코트」등재

 

<감상후기>

상당히 드라이하단 느낌을 받았다. 내용의 일부일까, 하며 소설읽기를 마쳤다. 어제 사무실에서 손보미의 6인용 식탁을 프린터로 빼서 읽고 오늘 새벽 감상문을 써 보려고 그녀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몇 군데 검색을 해 본다. 젊은 작가란 소개는 글을 가져올 때 문장웹진에서 읽었고 검색을 통해선 그녀가 서른이란 걸 확인했다. 젊긴 젊구나! 내 아들도(경희대 시각디자인과) 얼마 안 있으면 서..른? 세월 참말로 역시다. 우연히도 경희대 출신의 시인과 작가(김원경, 손보미)를 이틀간 내리 만난다. 물론 짧은 글조각을 통해서.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시나 소설을 쓸까, 가 호기심을 당기는 부분이다. 손보미의 6인용 소설은 부부스와핑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닐까, 어렴푸시한 그녀의 글 마무리를 쫓아 어렴푸시 나는 추리해 본다. 문장의 미사어구 생략, 용건만 간단히 식, 그러면서도 조물딱조물딱 열심히도 엮어냈구나, 기특하다, 신선하다, 드라이하지만 읽을거리를 던져준 것만으로 고맙다, 가 내 소감이다. 엊저녁 신림 기사식당의 된장찌개를 먹으며 밥이 나오기 전 심심한데 읽은 소설 얘기나 해 줄까 했더니 해 보라고 했다. j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그 정도 얘기론 무슨 주제인지 왜 그런 글을 썼는지 감이 안 왔나 보다 하면서, 한편으론 그가 30대 여자의 소설 내용이 대체 자기랑 무슨 상관이야 하는 격세지감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이 아침에서야. 아직은 파랗게 밝아오지 않는 이 꼭두새벽에 이러고 앉았다. 오른쪽 뿌연한 창가가 비치는 의자에. (오정자)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장산 단풍>외4편  (0) 2011.10.05
박성우<오이를 씹다가> 외 6편  (0) 2011.09.30
정용준<돼지가 방으로 들어간다>  (0) 2011.09.29
류시화 <나무와 새>외 2편  (0) 2011.09.19
헤르만 헷세  (0) 201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