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4장>

미송 2011. 12. 8. 22:36

 

 

 

 

트럭이 기어를 올리면서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타이어에 두들겨 맞은 땅이 쿵쿵 울리는 것이 느껴지자 조드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트럭이 시야를 벗어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공기가 파란색으로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먼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금속 마개를 돌려 열고 조심스럽게 술을 마신 다음, 위스키의 향기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병목 안쪽과 자신의 입술 주위를 혀로 핥았다. 그리고 뭔가를 시험하듯이 입을 열었다.

"거기서 우리는 깜둥이를 염탐했다...."

생각나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밭들 사이를 직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비포장 샛길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뜨거웠고, 흙먼지를 피워 올리는 바람도 없었다. 길에 파인 고랑에는 흙먼지가 바큇자국을 따라 쌓여 있었다. 조드가 몇 발짝 걸음을 내딛자 노란색 새 신 앞에서 밀가루 같은 먼지가 풀썩거렸고, 회색 먼지 때문에 노란색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몸을 기울여 신발 끈을 푼 다음 양쪽 신발을 차례로 벘었다. 그리고 뜨겁고 건조한 흙먼지 속에서 편안한 기분으로 축축한 발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 사이로 풀썩서리는 먼지가 들어왔고, 건조해진 피부가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상의를 벗어 그것으로 신발을 싼 다음 겨드랑이 밑에 끼웠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서 피어오른 흙먼지가 그의 뒤에서 땅 위에 낮게 걸린 먼지 구름이 되었다.

길 오른쪽에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고, 버드나무 기둥에는 가시철조망 두 가닥이 감겨 있었다. 구부정한 모양과 기둥은 제대로 손질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적당한 높이에 가지가 갈라진 부분이 나올 때마다 가시철조망이 걸쳐져 있었고, 갈라진 부분이 없을 때는 가시철조망이 녹슨 철사로 기둥에 묶여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는 바람과 더위와 가뭄에 녹초가 된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이파리와 줄기가 만나는 오목한 부분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조드는 먼지 구름을 꽁무니에 매단 채 터벅터벅 걸었다. 약간 앞쪽에 등딱지가 높이 둥글게 속아오른 땅거북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흙먼지 속에서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녀석의 다리가 뻣뻣하게 경련하듯이 움직였다. 조드는 걸음을 멈추고 녀석을 지켜보았다. 그의 그림자가 거북의 몸 위에 드리워지자마자 거북은 머리와 다리를 집어넣고 뭉툭한 꼬리도 옆으로 접어 넣었다. 조드는 녀석을 들어 올려 뒤집었다. 녀석의 등은 흙먼지처럼 갈색이 섞인 회색이었지만, 등딱지 아래쪽은 크림 색이 섞인 노란색이었으며 깨끗하고 매끈했다. 조드는 팔에 끼고 있던 짐 꾸러미를 더 높이 밀어 올리고 손가락으로 거북의 매끄러운 배를 쓰다듬다가 눌러 보았다. 녀석의 배는 등보다 부드러웠다. 딱딱한 머리가 밖으로 나와 자신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을 보려고 했다. 다리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거북은 조드의 손 위에서 오줌을 지리며 허공에서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드는 녀석을 다시 똑바로 돌린 다음 신발과 함께 상으로 쌌다. 녀석이 팔 밑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고운 흙먼지 속에서 발꿈치를 약간 끌며 아까보다 조금 빠르게 걷가 시작했다.

 

그의 앞에 뻗어 있는 길가에 먼지로 뒤덮인 앙상한 버드나무 한 그루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빈약한 가지가 길 위로 늘어지고, 이파리들이 털갈이를 하는 닭처럼 누더기가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조드는 이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등과 겨드랑이 부분에서는 셔츠의 파란색이 더 짙어졌다. 그는 모자의 차양을 잡아당겨 중간의 딱딱한 테를 완전히 접어 버렸다. 새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저 멀리 버드나무 그늘을 향해 한층 더 열심히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버드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면 틀림없이 그늘이 있을 터였다. 태양이 이미 정점을 지났기 때문에 적어도 나무줄기의 짙은 그림자라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목덜미를 후려치고 있는 햇빛 때문에 머릿속이 조금 윙윙거렸다. 나무의 밑동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평지보다 오랫동안 물을 붙잡아 두는 저습지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조드는 햇빛을 이기려는 듯 걸음알 빨리하며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무줄기의 그늘 속에 이미 누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걸음을 늦췄다. 어떤 남자가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신지 않은 한쪽 발이 거의 머리 높이까지 쭉 올라와 있었다. 그는 [예 그녀는 내 애인입니다]라는 노래를 엄숙하게 휘파람으로 부느라 조드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쭉 뻗어 있는 발이 박자를 맞춰 위아래로 천천히 까딱거렸다. 춤을 출 수 있는 노래는 아니었다. 그가 휘파람을 멈추고 편안하고 가느다란 테너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 그가 나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나의 구세주입니다

솔직히

악마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제 나의 구세주입니다.

 

남자는 조드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나뭇잎의 그림자속으로 들어온 다음에야 그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그가 노래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기다란 머리는 마치 뼈에다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목은 셀러리 줄기처럼 튼튼하고 근육질이었다. 커다란 눈은 박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눈동자를 덮느라 한껏 늘어난 눈꺼풀은 생살처럼 붉은색이었다. 갈색으로 빛나는 뺨에는 수염이 전혀 없었고, 도톰한 입술은 우습기도 하고 관능적이기도 했다.

단단한 배부리코 위의 피부는 한껏 당겨져 있어서 콧잔등에 하얗게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전혀 없었다. 당당하게 우뚝 솟은 창백한 이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마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넓었으며, 관자놀이에는 가느다란 파란색 정맥들이 보였다. 얼굴의 절반이 눈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벗어 넘긴 뻣뻣한 흰머리는 손가락으로 대충 빗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파란색 셔츠와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 바지였다. 놋쇠 단추가 달린 데님 상의가 돼지고기 파이처럼 구겨진 얼룩덜룩한 갈색 모자가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캔버스로 만든 운동화는 먼지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채 그가 벗어 던진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남자가 조드를 바라보았다. 빛이 그의 갈색 눈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는 것 같았다. 빛 때문에 홍채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황금색 반점들이 돋보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목 근육도 두드러져 보였다. 조드는 여전히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나뭇잎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땀에 젖은 얼굴을 훔친 다음 바닥에 던져 버리고, 둘둘 만 상의도 땅 위에 놓았다. 완전한 그늘 속에 있는 남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발끝으로 땅을 헤집었다.

조드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 길이 지옥보다 더 덥군요."

남자가 뭔가를 묻는 듯한 시선으로 조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 젊은 톰 조드가 아닌가? 톰 영감 아들이지?"

"예 멀리서 왔습니다. 집에 가는 길이에요."

"내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

남자가 말했다. 그가 미소를 짓자 도톰한 입술 사이로 커다란 말을 같은 이빨이 드러났다.

"그래, 기억 못 하겠지. 내가 자네한테 성력을 주었을 때 자네는 어린 여자 애들 머리칼을 잡아당기느라고 항상 바빴으니까 말이야. 땋은 머리를 아예 뿌리째 뽑아 버릴 기세였지. 자네는 기억 못 할지도 모르지만 난 기억한다네. 자네가 그렇게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다니는 바람에 자네 부자가 한꺼번에 예수님을 찾게 됐잖아. 관개수로에서 두 사람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았지. 고양이 새끼들처럼 서로 싸우고 소리를 질러 대면서 말이야."

조드는 눈을 내리깐 채 남자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목사님이시군요. 목사님이세요, 어떤 사람한테 목사님 얘기를 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옛날에는 목사였지."

남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짐 케이시 목사는 불타는 시골뜨기였어. 악을 쓰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왜쳐 대면서 영광을 바쳤지. 관개수로에서 세례를 줄 때면 죄를 뉘우치는 죄인들이 머못거리면서 수로를 가득 채웠고 말이야. 그놈들 중 절반은 물에 빠지는 걸 좋아했어. 하지만 다 옛날 얘기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그냥 짐 케이시야. 이제는 그런 부름을 받지 못한다네. 죄스러운 생각도 많이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조금 현명한 것 같기도 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게 마련이죠. 목사님이 분명히 기억납니다. 예배를 훌륭하게 이끌곤 하셨는데. 언젠가 설교를 하시는 내내 물구나무 선 채 손으로 걸어 다니던 게 생각납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소리를 질러 대셨죠. 목사님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분이셨습니다. 할머니는 목사님이 성령으로 가득 찼다고 하셨고요."

조드는 둘둘 만 상의를 뒤져 주머니를 찾아내서는 술병을 꺼냈다. 거북이 다리 하나를 움직였지만 그는 녀석을 단단히 싸 버렸다. 그가 마개를 열고 병을 내밀었다.

"한 모금 하실래요?"

케이시가 병을 받아 들고 뭔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지금은 별로 설교를 하지 않아. 이제는 사람들 속에 성령도 별로 없고. 그보다 더 나쁜 건 나한테도 이제 성령이 없다는 거지. 물론 가끔 성령이 들어오면 내가 예배를 이끌기도 해. 사람들이 음식을 차리면 내가 축복을 해 주기도 하고. 하지만 내 마음은 거기에 없어. 사람들이 내가 해 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해 줄 뿐이야." 조드는 다시 모자로 얼굴을 닦았다.

"술을 안 마실 정도로 경건한 분은 아니죠?"

케이시는 술병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그는 병을 기울여 크게 세 모금을 마셨다.

"좋은 술이군."

그가 말했다.

"그럼요 공장에서 만든 건데요. 1달러 주고 샀어요."

조드가 말했다.

조드는 병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예의를 지키느라 소매로 병 입구를 닦지 않은 채 그냥 술을 마셨다. 그는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쭈그리고 앉아 둘둘 말아 놓은 상의에 병을 기대 똑바로 세워 두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더듬어서 작은 가지를 하나 찾아냈다. 자기 생각을 땅에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땅에서 나뭇잎을 쓸어 내고 바닥을 평평하게 골랐다. 그리고 다각형과 작은 원들을 그렸다.

"목사님을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요."

그가 말했다.

"아무도 날 못 봤지. 혼자 떠나서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 봤거든. 성력이 내 안에 강하게 살아 있기는 한데 예전과 달라. 지금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목사는 나무에 기댄 등을 더 곧게 폈다. 뼈가 앙상한 그의 손이 마치 다람쥐처럼 주머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이미 잘근잘근 씹힌 검은색의 씹는담배를 꺼냈다. 근 ㄴ지푸라기 조각과 주머니에서 묻은 회색 보푸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담배 한 귀퉁이를 베어 물었다. 그가 담배를 권하자 조드는 싫다는 뜻으로 막대기를 흔들었다. 둘둘 말아 놓은 상의 안에서 거북이 발버둥을 쳤다. 케이시가 꿈틀거리는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뭔가? 닭? 녀석이 질식하겠네."

조드는 옷을 더 단단하게 말았다.

"늙은 거북입니다. 길에서 주웠죠. 낡은 불도저 같은 녀석이에요. 제 동생한테 줄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애들은 거북을 좋아하니까요."

목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은 전부 한때 거북을 기르지. 하지만 아무도 거북을 붙잡아 두지 못해. 녀석들이 발버둥을 치고 또 치다가 어느 날 마침내 어딘가로 도망쳐 버리거든. 나하고 비슷하지. 난 그냥 펼쳐져 있는 복음을 덥석 잡는 사람이 아냐. 그걸 쑤셔고 보고 연구도 해 보느라 결국 산산조각을 내놓지. 나한테 성령이 있는데도 때로는 설교할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름을 받았지만, 사람들을 이끌고 갈 데가 없어."

"계속 끌고 돌아다니면 되잖습니까. 관개수로에 사람을 던져 넣고 목사님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하세요. 도대체 뭣 때문에 사람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끌고 다니세요."

 

똑바로 뻗어 있는 나무줄기의 그림자가 더 길어져 있었다. 조드는 반가운 듯이 그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새로 땅바닥을 고른 다음 막대기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털이 푹신한 노란색 양치기 개가 머리를 늘어뜨리고 혀를 쪽 뺀 채 침을 질질 흘리면서 길을 따라 뛰어왔다. 녀석의 꼬리는 둘둘 말린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헐떡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조드가 녀석에게 휘파람을 불었지만 녀석은 머리를 살짝 더 숙이고 어딘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뛰어가 버렸다.

"어딘가 갈 데가 있는 모양이군요."

조드가 약한 화를 내며 말했다.

"집으로 가는 건지도 모르죠."

목사는 아까 얘기하던 주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어딘가 갈 데가 있다.... 그래 맞아, 녀석은 어딘가로 가는 중이야.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아나? 난 옛날에 사람들이 지쳐 쓰러져 정신을 잃을 때까지 펄쩍펄쩍 뛰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들을 소리치게 만들곤 했다네. 사람들이 쓰러진 다음에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세례를 준 적도 있지. 그다음에 내가 뭘 했는지 아나? 여자들 중 한 명을 풀밭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잤다네. 매번 그랬지. 그러고 나면 나 자신이 싫어져서 기도를 하고 또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다음번에 또 사람들과 내가 성령으로 가득 차면 난 같은 짓을 다시 했으니까. 그래서 난 가망이 없는 인간이다, 더러운 위선자다, 그런 생각을 했지. 하지만 난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 될 생각은 아니었어."

조드는 미소 지으며 긴 이를 벌려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여자들을 넘어뜨리는 데는 뜨거운 모임만 한 게 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케이시가 열띤 표정으로 앞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런데 말이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나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는 뼈가 앙상하고 마디가 크게 불거진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뭔가를 가볍게 툭툭 치는 것 같은 몸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생각이 든 거야. 나는 은총을 설교하고 있고, 저 사람들은 은총을 아주 열심히 받아들여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 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 말로는 여자와 자는 것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은총을 많이 받은 여자일수록 풀밭으로 빨리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어. 나는 여자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코와 귀로 성령을 뿜어내고 있을 때 그 악마라는 새끼가, 아 미안하네, 악마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런 순간에는 악마가 불지옥에 떨어진 눈덩이처럼 버티질 못할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악마가 거기 있었단 말일게."

 

그의 눈이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뺨을 꿈틀거리다가 흙먼지 속으로 침을 뱉었다. 침 덩어리가 바닥을 구르자 흙먼지가 거기에 달라붙어 마침내 둥글고 건조한 작은 콩알처럼 변했다. 목사는 양손을 펼치고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내 손에 쥐고 있었네. 그게 내 책임이었고, 그 책임감을 나도 느끼고 있었지. 그런데도 매번 나는 여자랑 잤단 말이야."

그가 조드를 바라보았다. 무기력한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은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조드는 땅바닥에 조심스레 여자의 몸통을 그렸다. 여자의 가슴, 엉덩이, 골반도.

"저는 목사 일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뭔가 잡을 수 있겠다 싶으면 그걸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았죠. 그리고 그걸 얻고 나면 기쁘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목사가 아니었잖나. 여자는 자네한테 그냥 여자였어. 자네한테는 여자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내게 여자는 신성한 그릇이었네. 난 그 여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있었어. 온갖 책임을 짊어진 내가 그들을 성령으로 인해 거품을 물게 해 놓고, 풀밭으로 데리고 나간 거야."

"어쩌면 제가 목사 노릇을 해 봤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조드가 말했다. 그는 담배와 종이를 꺼내 돌돌 만 다음 불을 붙였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연기 사이로 목사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여자 없이 지냈습니다. 이제 그 기간을 보상 받아야지요."

케이시는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걱정이 돼서 나중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네. 설교를 하러 가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 '오, 하느님, 이번에는 정말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벌써 내가 그 짓을 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결혼을 하세요. 어떤 목사님이 아내와 함꼐 저희 집에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이이었죠. 우리 집 2층에 살면서 마당에서 모임을 갖곤 했습니다. 저하고 다른 애들은 그 목사님의 얘기를 열심히 들었죠. 그런데 매일밤 모임이 끝나고 나면 목사님 사모님이 참 시끄럽게도 그 짓을 해댔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반갑군.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결국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일을 그만두고 혼자 떠나 버렸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해 봤어."

그는 다리를 반으로 접어 먼지투성이인 건조한 발가락 사이를 긁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네. '뭐가 그렇게 괴로운 거야? 그 짓이야?' 그러고는 또 이렇게 말했지. '아냐, 죄 때문이야.'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어. '사람이 죄로부터 절대 안전한 순간에, 온몸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럴 때 왜 바지 단추를 만지작거리게 되는 걸까?' "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리듬에 맞춰 손바닥 위에 놓았다. 마치 자기가 말하는 단어들을 부드럽게 나란히 늘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지. '어쩌면 그건 죄가 아닌지도 몰라. 사람은 원래 그런 건지도 몰라. 우리가 지옥을 걷어 내는 것이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일인지도 몰라.' 그리고 3피트 길이의 거친 가시철조망으로 자기 몸을 때렸던 수녀들을 생각해 봤네. 그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좋아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좋아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 이걸 생각해 냈을 때 나는 어떤 나무 밑에 누워 있었는데 곧 잠이 들었네. 그동안 날이 저물어서 깨어나 보니 사방이 캄캄하더군. 근처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꽥꽥거렸네. 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어. '에라 모르겠다! 죄는 없어. 미덕도 없고. 그냥 사람들이 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뿐이야. 그건 전부 같은 거야.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쁘지만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      

 

그는 말을 멈추고 자기가 말을 늘어놓은 손바닥에서 시선을 들었다. 조드는 그를 바라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조드의 눈도 재미있다는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철저하게 생각해 보셨군요. 문제를 해결한 거예요."

케이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통스럽게 혼란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이렇게 혼잣말을 했네. '이 부름은 무엇인가? 이 성령은?' 그리고 또 이렇게 맗했지. '그건 사랑이야. 난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가끔 터져 버릴 것만 같아.' 그리고 또 말했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나?'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결국 이렇게 말했다네. '아니, 난 예수라는 사람을 몰라. 여러 가지 얘기들을 알고 있지만, 난 오로지 사람들을 사랑할 뿐이야. 때로는 몸이 터져 버릴 것처럼 그들을 사랑해서 생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말로 설교를 했어.' 그러고는.... 아이고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구먼. 내가 천박한 말을 써서 자네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뭐 이제는 그런 말들이 천박하게 생각되지 않아.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이지. 사람들이 천박한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내가 생각한 걸 하나만 더 말해 주지. 목사가 하는 말 중에서 이만큼 신앙과 동떨어진 말도 없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걸 믿고 있으니 나는 이제 목사가 될 수 없네."

"그게 뭔데요?"

조드가 물었다.

케이시는 수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좀 안 좋게 들리더라도 화는 내지 말게,  알았지?"

"저는 코가 깨지지 않는 한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 목사님이 생각해 낸 게 뭐죠?"

"난 성령과 예수님의 길에 대해 생각해 봤네. 이런 생각이 들었지. '우리가 왜 그걸 하느님이나 예수님에게 걸어야 하나? 어쩌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건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인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바로 성령인지도 몰라. 바로 인간의 정신.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말이지. 어쩌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모두가 그 영혼의 일부인지도 몰라.'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알겠더란 말이야. 그게 너무 분명해서 이게 틀림없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조드가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마치 너무나 정직한 목사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런 생각을 갖고는 교회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 목사님을 마을에서 쫒아낼 겁니다. 우리 할머니가 흥분해서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막을 수가 없었죠. 할머니는 다 큰 남자도 주먹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 분이었어요."

케이시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계속 나를 괴롭히던 문제인데."

"말씀하세요. 가끔은 저도 말을 하니까요."

목사가 느리게 말했다.

"그게, 자네는 내가 제일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세례를 준 사람일게. 그날은 내 입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마구 쏟아져 나왔지. 자네는 기억하지 못할 거야. 여자 애들의 땋은 머리채를 잡아당기느라고 바빴으니까."

"기억합니다. 그 애 이름이 수지 리틀이었죠. 일 년 후에는 그 애가 제 손가락을 때렸습니다."

"음, 그 세례를 통해서 뭔가 혜택을 본 게 있나? 더 훌륭한 삶을 살게 됐어?"

조드는 생각해 보았다.

"아뇨, 아무것도 못 느낀 것 같은데요."

"음, 그럼 그 세례 때문에 더 나빠진 게 있나? 잘 생각해봐."

조드는 술병을 집어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아무 변화도 없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냥 세례가 재미있었을 뿐이에요."

그가 술병을 목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술을 마신 다음 위스키가 많이 줄어 든 것을 보고 다시 아주 조금 술을 마셨다.

"다해이군. 내가 그렇게 난리를 치고 돌아다니면서 혹시 누굴 상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했거든."

조드는 자신의 상의기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북이 옷 속에서 빠져나와  처음 조드와 만났을 때 가고 있던 방향으로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드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녀석을 집어 들어 다시 옷으로 쌌다.

"애들한테 줄 선물이 없어요. 이 거북밖에."

그가 말했다.

"재미있어. 자네가 나타났을 때 나는 자네 아버지 톰 조드를 생각하고 있었다네. 톰을 한번 찾아가 볼까 하고 말이야. 옛날에는 톰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톰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저도 모릅니다. 사 년 동안 집에 온 적이 없으니까요."

"톰이 자네한테 편지도 안 썼어?"

조드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글쎄요. 아버지가 원래 글씨는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아예 글을 안 쓰시는 편이죠. 아버지는 누구 못지않게 멋지게 서명을 하고 나서 연필을 핥곤 하셨어요. 하지만 편지를 쓰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입으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연필로 쓸 필요도 없다고 항상 말씀하시죠."

"그동안 여행을 다녔나?"

케이시가 물었다.

조드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제 얘기 못 들으셨어요? 모든 신문에 제 얘기가 났는데."

"아니, 한 번도 못 들었어. 무슨 일인데?"

그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로 휙 올리며 나무에 기댄 몸을 조금 더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오후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태양의 색깔이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조드가 유쾌하게 말했다.

"지금 그냥 목사님께 말해 버리는 게 낫겠네요. 하지만 만약 목사님이 지금도 목회를 하고 계셨다면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목사님이 저에 대한 기도를 할까 봐."

그는 마지막 남은 위스키를 다 마시고 병을 던져 버렸다. 납작한 갈색 위스키 병이 흙먼지 위를 가볍게 미끄러졌다.

"저는 맥알레스터 교도소에 사 년 동안 있었습니다."

케이시가 그를 향해 급히 몸을 돌렸다. 눈썹이 아래로 내려가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넓은 이마가 훨씬 더 넓어 보였다.

"그런 얘긴 하고 싶지 않겠지? 난 자네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만약 자네가 나쁜 짓을 했다면....."

"저는 또 그런 상황이 되면 같은 짓을 할 겁니다. 싸우다가 사람을 죽였어요. 춤을 추러 갔다가 다들 술에 취했는데, 그놈이 저한테 칼을 찔러 넣기에 저는 거기 있던 삽으로 그놈을 죽였습니다. 그걸로 똑바로 내리쳐서 으깨 버렸죠."

케이시는 눈썹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그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예. 부끄럽지 않아요. 그놈이 저를 먼저 칼로 찌른 게 인정돼서 칠 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사 년 만에 지금 막 나왔죠. 가석방으로."

"그럼 사 년 동안 식구들 소식을 전혀 못 들은 거야?"

"아, 들었어요. 어머니가 이 년 전에 카드를 보냈더군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할머니가 카드를 보냈고요. 나 참, 감옥에 같이 있던 녀석들이 얼마나 웃어 댔는지. 나무 그림에다가 눈처럼 보이는 반짝이를 붙여 놨더라고요. 시도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예쁜 아이야

순하고 상냥한 예수님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 있단다.

 

아마 할머니는 그 시를 읽어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판매원이 내민 것 중에 제일 반짝이는 걸 골랐겠죠. 저와 같은 감방에 있던 녀석들을 죽을 것처럼 웃어 댔습니다. 그 뒤로는 나를 순한 예수님이라고 부르더군요. 할머니가 웃기는 장난을 치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카드가 예쁘다는 생각에 시를 읽어 볼 생각을 안 한 것뿐이죠. 제가 떠나던 해에 안경을 잃어버리셨거든요. 아마 그 뒤로 안경을 못 찾았을 겁니다."

 

[하략]  

 

채란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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