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
<깨달음은 오는가>, 이러한 물음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과연 완전한 인식은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깨닫기 위하여 스스로의 욕망을 날카롭게 버려냈던 수많은 시인의 삶에서도 완전한 이치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무애(无涯)와 무위에 도달하고자 했던 많은 시인들에게서 우리가 찾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지(無知)이다. 인간은 어떤 진리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진리를 구성할 권리 또한 부여받은 바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시가 추구하는 무위의 소통이란 무위에 대한 욕망과 구분된다. 무위의 소통은, 그것이 무위이건 무소유이건 진리를 구성하겠다는 어떤 욕망과도 결별한다. 시적 소통은 진리의 깨달음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불가능성 속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정권 시인의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가 열어놓은 것이기도 하다.
바람의 제자가
겨울 속으로 찾아가 문안 드렸다
참나무 숲이 말했다
아무리 빈궁해도
난 이 겨울 추위를 장작으로 팔지 않았다
나는 추위로부터 자유로워했지만
추위가
나를 평생 구속했다는 것을.
-조정권의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 (문예중앙.2011여름) 전문
조정권 시인이 바람의 제자라는 사실은 언제나 변함없이 맞다. 그의 영혼은 특별한 거처를 가지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안식도 구하지 않는다.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방랑벽을 지닌 까닭으로 하나의 언어에 포획되지 않는다. 조정권 시인이 오래전 참나무 숲에서 깨달았던 것 역시 이 바람의 의미였는지 모른다. 때문에 시인은 스스로를 “바람의 제자”라 명명할 수 있었다. 오래전 시인은 참나무 숲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채 살 수 있는 용기이자 정신의 힘을 읽는다. “아무리 빈궁해도/ 난 이 겨울 추위를 장작으로 팔지 않”으리라는 결기도 함께 얻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그가 다시 참나무 숲에서 와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추위” 즉 부정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구속이었다. 대상을 지운다고 해서 자유가 오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들뢰즈가 말했듯, 변증법적인 부정의 부정이 아닌 ‘긍정의 긍정’ 속에서만 돋아난다. 장자는 덕(德)을 “죽음과 삶, 존속과 사라짐, 인궁(因窮)과 영달(榮達), 가난과 부(富), 어짐과 우둔함, 욕먹음과 칭찬,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라는 변화와 운명으로부터 평형(平衡)한 상태라고 말한다. 때문에 지인(至人)이란 생의 모든 변화와 조화한다. 덕은 모든 경계와 형체를 잊는 것이다[故德有所長 而形有所忘]. 선악과 진위, 미추를 가르고 선후를 따지는 분별도 잊을 때 비로소 만물의 이치에 닿을 수 있다. 이제 참나무 숲에서 시인이 들은 것은 젊은 시절 그가 들었던 것과 다르다. 숲은 말한다. 자유롭고자 하거든 자유의 상마저 지워야 한다. 그러나 지인이 아닌 범인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평생을 바쳐도 알 수 없으리라. 시인은 그래서 여전히 바람이다.
이처럼 더 이상 현대의 시는 완전한 소통을 위장할 수 없다. 행복한 조화는 통속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만 그것은 현실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소통에 대한 모든 신화는 다시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 소통과 공감의 신화가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은폐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례로 언젠가부터 자본가들에게 공감이 새로운 효율적 경영법으로 인식되는 역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소통은 어떤 관계도 수정하지 않으면서 또 어떤 비극적인 파국에도 도달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생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평온한 삶에 동의하도록 유도한다. 그렇다면 소통은 무설탕 제로 콜라의 제국적 단맛과 무엇이 다른다. 그러므로 무위 가운데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시는 소통의 불가능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신진숙의 「무위無爲의 소통」중 <깨달음은 오는가> 에서)
― 『유심』2011년 09/10월호
신진숙 : 문학평론가. 2005년 <유심>으로 등단. 저서로《윤리적인 유혹, 아름다움의 윤리》가 있음. 현재 경희대 학술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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