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작가들

프랑시스 잠

미송 2023. 1. 17. 12:56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게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우리는 가리라, 네가 좋단다면,/ 네가 좋단다면, 단조로운 들판으로 가리라.”(‘정오의 마을……’) 프랑시스 잠이 쓴 이 시에서의 “단조로운 들판”은 우는 수탉과 공작, 공중을 나는 까만 제비, 길고 높게 선 포플러 나무가 있고 농가의 우물에는 우물물을 깃는 두레박의 도르래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다. 이 화평한 들판의 풍경과 삶을 프랑시스 잠은 즐겨 노래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소박하고 부드럽다. 그의 노래는 과거의 시간 속에 화환처럼 빛나는 추억을 회억(回憶)하기도 하고, 현재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늑하고 신성한 전원의 풍경에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시에는 높은 웃음과 투명한 사랑의 감정이 녹아 있는데, 나는 프랑시스 잠의 시를 읽을 때 인간이 하는 생각 가운데서도 가장 깨끗한 생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프랑시스 잠은 그가 태어난 프랑스 남서부의 피레네 산맥 아래 산간 지방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시를 지었으며 “영혼들이 사는 천국”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양떼, 언덕, 물통을 등에 걸친 당나귀, 산봉우리, 독수리, 시내, 초원, 붉은 장미, 포도송이, 무지개 등이 등장한다.

 

그가 시 햇볕 속의 나무딸기들 사이로……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산들이, 산들이 높이 솟은 옆./ 그래 이제 난 정녕 느낀다오, 내 영혼 속에/ []이 있고, 무서리 빛깔의 도랑이 있고,/ 깨어져 나간 높은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취할 것 같은 대기 속에, 눈과 도랑을 후려치는/ 바람 속에 맹금(猛禽)들이 떠도는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렴, 난 정녕 느낀다오, 내가 산을 닮았다는 것을.”이라고 쓴 것도 이러한 그의 지리적 생활공간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이 공간적으로 제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시까지 닫혀서 막힌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안식 같은 것을 되찾게 된다. 다음과 같은 시를 읽을 때가 그러하다. 조용한 숲 속에, 흘러가는 시냇물을 가르는,/ () 같은 나뭇잎들 위에/ 평화가 있다.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노래한다. 우유를 담고, 밀 이삭을 따고, 소를 풀과 숲에 풀어놓고, 벌목을 하고, 버들가지를 꼬고, 낡은 구두를 수선하고, 베틀을 짜고,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들고, 씨앗을 뿌리고, 달걀을 거두어들인다. 겁이 없이 대담하게 해야 할 일들은 아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당찬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다. 한 시골 농가에서 이뤄지는 노동의 낱낱의 조항을 나열한 듯하다. 넉넉한 살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짐작할 수 있고,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이 비교적 여유로운 노동들은 무언가와 경쟁적으로 대립하면서 종사하게 되는 일은 아니다. 크고 뛰어나고 후일에 업적을 남기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 하루를 넉넉한 느낌으로 저물게 만들고 내일의 시간을 준비하는 노동들이다. 인품을 후덕하게 하는 노동들이다. 프랑시스 잠은 실로 이런 일들이 인간이 해야 할 숭고한 일의 내용이며, 위대한 일이라고 긍정하고 지지한다. 이런 즐거운 노동으로 인해 우리 삶의 상처와 배고픔, 목마름은 잠시 사라지고 삶의 살갗에 윤택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프랑시스 잠의 시는 ‘좋은 위로’의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친우여, 우리들의 모든 마음의 기쁨을/ 앗아 가는 괴로움이 없다면 모든 것이 다사로우리./ 하지만 괴로움을 떠나려 함은 헛된 일./ 말벌은 풀밭을 떠나지 않는 법이니./ 그러니 삶이 저 갈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세나. 검은 암소들이 마실 물이 있는 곳에서/ 풀을 뜯도록 내버려 두세나./ 그래 언제까지고 괴로워하는 모든 이들을,/ 우리와 같은 모든 이들을 동정하기로 하세.”라고 쓴 시 ‘시냇가 풀밭은……’을 읽을 때에도 우리는 시인의 선심(善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나는 괴로워하고 사랑하나이다. (……)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라고 겸손하게 유순하게 썼다.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2.2~1938.11.1)1868년 프랑스 투르네에서 태어났다. 스테판 말라르메, 앙드레 지드와 친하게 지냈으며, 특히 지드와 평생을 주고받은 편지는 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되었다. 상징주의 말기의 퇴폐성에 반발하며, 시를 통해 자연으로, 사소한 일상생활의 사건으로,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프리물라의 슬픔], [하늘의 빈터], [그리스도교의 농목시], 소설 [클라라 델레뵈즈] 등이 있다.

 

 글/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두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

 

 

 

마른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마른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빗방울은 늘 한 장소에서

두드리고 다시 또 일념으로 두드린다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괴로움은 늘 한 장소에서

시간처럼 집요하게 소리 울린다

 

하지만 그 잎과 마음에는 밑빠진 공허가 들어 있기에

나뭇잎은 빗방울을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마음도 송곳 같은 그대를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슬픈 노래

 

당신이 -  사랑이여 - 하고 말하면
나도 -  사랑이여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눈이 오네 - 하고 말하면
나도 - 눈이 오네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아직도 - 하고 말하면
나도 - 아직도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이렇게 - 하고 말하면
나도 - 이렇게 -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당신이 -  네가 좋아 - 하고 말하면
나는 -  당신보다  - 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 여름이 가는군 - 하고 말하면
나는 - 이젠 가을이에요 -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선 우리들의 언어도 달라졌지
마침내 어느  당신이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다시 한번만  말해 줘요.

 

 

우산(雨傘)을 손에 들고 

 

파란 우산을 손에 들고 더러운 양떼를 몰며

치이즈 냄새 풍기는 옷을 입고서

감탕나무 떡갈나무 혹은 모과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당신은 언덕위의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털이 억센 개와 불거진 등뒤에 거무스름한 물통을

짊어진 당나귀를 앞세우고

당신은 마을의 대장간 앞을 지나가리라

이윽고 당신은 향기로운 산에 이르리라

당신의 양떼들이 흰덤불처럼 풀을 뜯어먹고 있을

거기엔 안개가 지나가며 봉우리들을 감추고

거기엔 목털이 빠진 독수리들이 날고

밤안개속에 빨간 연기들이 피어 오른다

그곳에서 당신은 보리라 평온한 마음으로

신의 령이 이 무한한 공간위에 떠돌고 있음을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오 주여 제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가 벌어진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이 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에 드는 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곳은 한낮에도 별들이 빛나겠지요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프랑시스 잠이야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하나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저는 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이리 오게, 푸른 하늘의 순한 친구들이여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내 사랑하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아주 유순하게 당신께서 불쌍히 여기시도록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조그만 발들을 모으며 멈춰서는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속에 끼어

당신 앞에 나타나게 해주소서

 

그들의 수천 개의 귀가 나를 뒤따르게 하며 당신께 가겠습니다

옆구리에 바구니를 걸친 당나귀들이

곡마단의 마차를 끄는 당나귀들이

가죽부대처럼 뚱뚱한 암당나귀들을 업고 절뚝이는 당나귀들이
둥글게 떼지어 달려드는 악착스런 파리들이 만들어놓은

진물나는 푸르죽죽한 상처 때문에 조그만 바지를 입혀놓은 당나귀들이

저를 뒤따르게 하겠습니다

 

하느님 제가 이 당나귀들과 함께 당신께 가게 해주십시오

평화 속에서 천사들이 우리를 인도하게 해주십시오

어린 소녀들이 좋아하는 피부처럼

매끄러운 체리들이 떨고 있는 울창한 시냇가로

영혼들의 이 거처에서 몸을 굽히면

당신의 천상 수면 위로 겸손하고 유순한 그들의 가난을 비춰보는

당나귀들을 제가 닮게 하소서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을 제가 닮게 하소서



이제 며칠 후엔 

 

이제 며칠 후엔 눈이 오겠지 지난해를

회상한다 불 옆에서 내 슬픔을 회상한다

그때 무슨 일이냐고 누가 내게

물었다면 난 대답했으리라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난해 내 방에서 난 깊이 생각했었지

그때 밖에선 무겁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생각만 했었지 그때처럼

지금 난 호박(琥珀)빨부리의 나무 파이프를 피운다

 

내 오래된 참나무 옷장은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난 바보였었지

그런 일들은 그때 변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을 내쫓으려는 것은 허세이니까

 

도대체 우린 왜 생각하는 걸까 왜 말하는 걸까 그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입맞춤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그걸 이해하는 법 친구의

발자국 소린 다정한 말보다 더 다정한 것

 

사람들은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들은

이름이 필요없다는 걸 생각지도 않고

어둠 속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혜성들을 증명하는

수치들이 그것들을 지나가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을

 

바로 지금도 지난해의 옛 슬픔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거의 회상하지도 못하는 것을

지금 이 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난 대답하리라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20120128-20230117 타이핑 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