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작가들

세사르 바예호

미송 2023. 6. 5. 11:53

같은 이야기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데 그러나 빛이

폐병 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날.

 

 

하얀 돌 위의 검은 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
그날이 어느 날인가는 이미 알고 있다
파리에서 죽으리라 피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오늘 같은 가을날 목요일

오늘 같은 목요일 오후 이 시를 쓰는
이 목요일, 상박골이 아파오고 있는데,
내가 걸어온 이 길에서 오늘만큼 내가
혼자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세사르 바예호는 죽었다 바예호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모두들 바예호를 때린다
몽둥이로 얼마나 두드려대던지 게다가,

동아줄로 얼마나 세게 옭아매던지
목요일, 상박골 뼈, 고독, ,

모두가 몽둥이찜질의 증인이다.

 

 

먼 그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안데스 산촌의 다정한 나의 리타

늘씬한 몸매에 까만 눈의 소녀

이 대도시에서 나는 질식해 죽어가고 피는 몸 안에서

흐느적대는 코냑처럼 졸고 있는데

하이얀 오후를 꿈꾸며

기도하는 자세로 다림질하던 그 손은 어디 갔을까

이 빗속에서 나는

살아갈 의욕조차 없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플란넬 치마,

그녀의 꿈, 그녀의 걸음걸이는

5월의 사탕수수 맛, 그녀

문앞에 서서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러다 오스스 떨면서 말할 거야 어쩜 이렇게 춥담

들새 한 마리 지붕에 앉아서 울고 있겠지.

 

 

 28

난 지금 혼자 점심을 먹었다, 혼자서
어머니도, 좀 먹어라도, 어서 들어도, 물도 없이
아버지도, 옥수수빵을 놓고 식사 전 기도하는 풍성한 예식도
왜 아버지가 늦느냐는 소리도 그 모습도
아버지의 그 굵직한 음성도 아무것도 없이

내가 어떻게 식사를 했으랴 어떻게 그 먼 음식들을
자기 집이 모두 없어지고 어머니라는 말도 입에서
안 나올 때
어떻게 그 먼 것들을 어떻게
그 아무것도 없는 것을 먹을 수 있었으랴

한 좋은 친구의 식탁에서 난 점심을 먹었다
금방 세상에서 돌아온 그의 아버지와 함께
그 점잖은 백발과 함께, 그 백자에서 나는 소리 같은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말소리를 들으며
홀아비가 다된 잇몸들로부터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이프와 포크가 거침없이 즐겁게 딸랑대는 식탁

, 자기 집처럼 편히 생각하라구 아 그 맛!
이 식탁의 칼질이
내 온 혓바닥에 아파 왔다

이런 식탁의 점잖은 식사, 거기 과시되는
내부의 사랑 대신 외부의 사랑은
입에 들어가는 것마다 흙이 된다
어머니가 쏟아 주지 않는 음식은
넘기기가 어려워 배탈이 난다 사탕은
소태다, 커피는 장례식 향유,

자기 살던 집이 모두 없어졌을 때,
어머니의 어서 들어가
다시는 무덤에서 나오지 않을 때,
어두운 부엌 속에 바닥난 사랑.  

 

 

시간의 횡포 

안또니아 아줌마도 죽었다 시골 마을에서 제일 싼 빵을 만들던 늘 목이 쉬어 있던 여자 산띠안노 신부도 죽었다 우리 젊은이나 처녀들이 인사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던 인사할 때마다 한결같이 답을 해주시곤 하셨지: 호세, 안녕! 마리아도 안녕!

그 금발머리 아가씨 까를로따도 죽었다 몇 달 안된 갓난아기 하나를 남겨두고 아이도 엄마 죽은 지 여드레만에 죽고 말았다

나의 아줌마 알비나도 죽었다 전래 동요와 풍습과 세월을 노래하곤 하시던 아줌마 토방마루에서 집안 하녀인 곱디곱던 여인 이사도라를 위해 바느질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한 외눈박이 노인도 죽었다 그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 하지만 동네 어귀의 함석장이 집 문 앞에서 노상 주저앉아 아침 햇살을 받고 졸곤 하셨다

라요도 죽었다 내 키만큼 큰 개 한 마리, 누군가 길가는 사람의 총을 맞고 죽었다

루까스도 죽었다 허리 가득 평화를 안고 다니던 나의 외삼촌 비가 오면 나는 외삼촌이 생각난다 그러나 내 경험 속에는 아무도 없다

나의 권총 속에서 나의 어머니는 죽었다 나의 주먹 속에서 나의 누이는 죽었다 나의 피투성이 허벅지 속에서 나의 동생도 죽었다 계속 되는 세월의 8월에 모두 죽었다, 슬픔의 슬픈 핏줄로 이어진 새 사람

악사 멘데스도 죽었다 키가 크고 술이 항상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던 나팔로 옛날 슬픈 곡조를 따라랑거리면 그 처량한 음악 소리에 우리 마을 암탉들이 해도 지기 전에 잠들곤 했던

나의 영원은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죽음을 보고 있다.

 

 

 

세사르 바예호 (César Vallejo 1892 페루~1938 파리)

 

문학 비평가들은 세사르 바예호의 시어가 놀라울 정도로 강렬하고 독창성에 있어서 뛰어나며, 수많은 언어로 쓰여진 어느 현대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으로 본다. 바예호의 스타일은 참신하며 독창적이며 난해하다. 바예호의 시에 힘이 넘치는 이유는 바로 이전까지 스페인 시를 옭아매고 있던 구태의연한 시작 규칙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바예호는 신축성 있는 언어, 대화체, 일상어, 문법을 무시한 오류 투성이 산문체를 시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당대의 비평계는 혼란에 휩싸이고 만다. 당시의 비평계는 바로 그 특이한 글쓰기에 바예호의 표현력과 문학적 재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혹은 추상 예술이 불러일으킨 바로 그 곤혹스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바예호의 반전통적인 기질은 '트릴세(Trilce)', '검은 전령(Los Heraldos Negros)', 걸작 '인간의 시(Poemas Humanas)'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바예호는 시를 씀에 있어 일상 언어의 논리와 시제를 파괴함으로써 당혹스런 혼란을 야기 시켰고, 이 당혹스런 혼란이 시의 의미를 가슴깊이 천착하게 만든다. ‘내일 입은 옷이라는 표현, 함부로 걸친 뼈조각이라는 표현, 파리에서 죽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기억에 생생한 가을날 어느 목요일 등은 우리가 마그리트(Magritt)의 그림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정을 자아낸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 뒤로 계속 포개져 나타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 구름이 잔뜩 낀 광활한 하늘 아래 노을이 지친 몸을 누이는 날 저무는 때의 풍경. 바예호 자신이 초현실주의를 비판했지만 그의 시 또한 초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바예호는 페루 현대 작가로서는 최초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혼혈 시인이다. 바예호는 페루인의 심정을 형상화해냈으며, 안데스산맥의 고유 문화와 서구 문화를 창조적으로 결합시켰다. 바예호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네루다(Pablo Neruda)와 같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지역적이고 주변적인 감정을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고뇌로 승화시켰다. 바예호의 모습은 안데스 산맥의 자연 경관에 어울리지만 인간 지성의 중심지인 밝은 도시에도 어울린다. 바예호는 1892년 페루 북부 산티아고 데 추코 산악 지방에서 태어나 1938년 파리에서 요절했다. 고뇌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 끝에 죽었다.

 

바예호는 자기 조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바예호가 투철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작품을 썼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예호의 시는 그런 제한에 구속되지 않다.

 

바예호의 시는 존재에 관한 의문과 인간 조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호소이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지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바예호도 좌익 사상으로 무장한 정객이었다. 그러나 바예호의 정치적인 행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감과 인간을 위한 고심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바예호의 시에는 낙관적이며 비관적인 세계관이 동시에 나타나며,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담겨져 있다.

 

바예호의 신앙심은 안데스의 자연 속에서 지낸 유년기를 회상할 때 잘 나타난다. 이 신앙심은 골수에 사무친 것으로 바예호가 순수하게 불가지론적인 혹은 무신론적인 입장을 표명할 때도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바예호의 시는 분열된 인간, 자기 자아와 갈등하는 인간, 이성과 맹목적인 믿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당혹감을 유발해낸다.

 

우리는 바예호의 시에 동감하기도 하고 당혹해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극심한 고통과 속죄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어떤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공통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조리하고 돌발적인 삶 앞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절망이기도 하다. 바예호가 믿는 창조주도 바로 이런 자가당착에 빠졌다. 창조주조차도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내쳐 달리는 길을 바꿀 수 없었다. 바예호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리움과 상실감이다.

 

20110203-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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