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단 한권의 소설책 - 백년 동안의 고독

미송 2012. 2. 2. 17:15

 

[서평]

 

 

 

닭 때문에 온갖 고초가 시작된 한 집안이 있다. 라이벌의 쌈닭을 죽이고, 나중에는 그 라이벌마저 죽인 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1세는 야반도주의 대장정 끝에 늪지대에 이른다. 늪지대 마콘도는 부엔디아 가문의 신세계다. 닭싸움이 인간싸움으로 변한 후 신세계 마콘도는 부엔디아 가문의 에덴으로 출발해 저주받은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의 출생으로 비극적 대서사시의 설화를 맺는다. 마콘도는 결국 '헝클어진 신세계'가 되었다. 작업실에 파묻혀 황금물고기를 만들던 왕년의 전쟁영웅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늙은 어머니 앞에서 한탄한다. "이 전쟁이 모든 것을 다 망쳐버렸거든요."(195쪽)

 

모든 것이 다 망가지기 전에 현자라 불리는 집시가 쇠붙이를 들고 마을을 찾아왔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뚱뚱한 집시는 모든 물건에는 생명이 있다는 말로 유혹하며 냄비와 부젓가락과 화로와 나사못을 마음대로 굴렸다. 땅속에 황금이 있다고 믿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당나귀 한 마리와 염소 한 쌍을 주고 집시에게 쇠붙이 두개를 얻는다. 땅속의 황금을 모두 찾아낼 것 같았던 쇠붙이는 녹슬고 망원경과 확대경의 유혹이 재산을 축낸다. 자신이 직접 황금을 만들겠다는 욕망으로 부엔디아 1세는 평생을 실험실에 처박혀 연금술만 반복하다 밤나무 밑에서 죽는다. 황금을 쫓는 인간의 유일한 이상은 황금물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황금물고기는 도대체 어느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단 말인가. 독자는 부엔디아 가계도를 읽으면서 마르케스의 뻥과 구라의 혼합에 방황할 것이다. 어지럽고 믿을 수 없는, 그러나 사실처럼 감쪽같이 눙치는 이야기를 문학기법으로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한다.

 

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많이 이용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특징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을 작품 속의 인물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독자 역시 소설의 전개에 흡수되어 믿기 어려운 일을 자연스럽게 믿어버린다. 이를테면 부엔디아 대령의 죽음을 알리러 콘도르들이 밤나무 아래로 내려오고 미녀 레메디오스가 오후 네시에 날개를 달고 천사처럼 하늘로 날아갔다는 설정이 그렇다. 그러나 마르케스의 마술적 기교가 정점을 찍은 것은 돼지 꼬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문이 끝나는 최후에 있다. 습지로 변한 마콘드는 물속에 가라앉는 황금물고기의 소멸을 상징하면서 부엔디아 가문의 황금을 향한 욕망도 함께 수장된다. 한 집안의 내력사와 함께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사다. 라틴아메리카를 바나나공화국으로 만든 미국자본의 횡포는 기차에 자본을 싣고 들어와 나중에는 그 기차에 수천 명의 시체를 싣고 사라지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철도의 역사는 곧 식민의 역사인 것이다. 미국계 바나나 회사에서는 마콘도 주민 출신 근로자 중 상근직원을 한 사람도 고용한 사실이 없다. 언제든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주민들이 노동쟁의를 펼치자 파업 노동자를 '불량배'로 규정해 군대로 하여금 사살명령을 내리게 했다. 어느 흐린 밤에 수천 명의 사람이 실종된 이 사건은 실제 콜롬비아의 비공식적인 역사로 남아있다. 마르케스는 소설 속에서 이 부분을 '민중의 혁명'으로 그린다. 혁명은 실패했고 원주민은 몰락했다.

 

혁명이 실패한 이후 바구니에 담겨 수녀의 손에 들려온 아우렐레아노의 탄생은 부엔디아 가문의 종착점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산맥을 넘어 새 세상을 찾아왔던 늪지대 마콘도가 바나나 열병과 지옥의 번철로 달구어진 후 시간의 기차는 떠났다. 썩은 그루터기만 남은 습지 마콘도는 더 이상 생명의 땅이 아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땅에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의 탄생은 마르케스가 보여준 마지막 마술의 결정판이다. 

 

벅차다. 마르케스가 만연체로 들려준 부엔디아 사람들의 고독을 이 한마디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저력은 풍성한 수다로 어디서부터 인간사의 서론을 작성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르케스가 보여준 쉬지 않는 수다와 화려한 '뻥'과 사실을 최대한 '잘' 섞었다는 데 있다. 대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느낄 '벅차오름'의 뜨거움도 마르케스가 보여준 쉬지 않는 수다와 화려한 뻥에 기인한 것이다.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라는 수다쟁이 마르케스의 입담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한 줄 모른다. 언어의 마술로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연금술한 마르케스. 내 인생에 단 한 권의 소설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책이다.    

 

 

- 윤미화 <깐깐한 독서본능> (2009, 21세기북스) 109~112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