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작가들

틱낫한

미송 2012. 2. 17. 19:02

 

 

 

틱낫한 스님은 세계적으로, 특히 서양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큰스님이다. 베트남 왕조의 행정관료 가문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했고 1960년대에는 반전(反戰)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사이공 정부의 미움을 받아 추발당하는 몸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빨리 끝네게 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다니면서 국제여론에 호소하다가 조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히자 1968년 프랑스를 망명지로 선택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로 밀려온 보트 피플들을 위한 수용소를 세워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는 저서의 인세수입으로 20년 전 남부 프랑스의 로테 가론 지역에 불교명상수련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 자두마을)를 만들어 비구 및 비구니 120여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매년 여름과 겨울 일반인들을 상대로 1~4주의 수련원을 열고 있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에서보다 10만여 명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미국에서 더 높다. 그는 미국 버몬트에 세운 '그린마운틴 다르마 센터' 와 플럼 빌리지를 오가며 살고 있다.   

     

     

     

    여여(如如)의 틀

     

    작은 새들을 꾸짖지 말아라

    우리는 그것들 노래가 필요하다

    네 몸을 미워하지 말아라

    인간의 영혼을 위해 있는 제단이다

     

    네 눈에는 우주가 담겨 있고

    네 귀는 새들과 옹달샘과 파도,

    베토벤, 바흐, 쇼팽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와

    그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를 담고 있다

    네 손은

    누구에게도 꺽여서는 안 될 사랑의 꽃송이요

    네 이마는

    모든 아침들의 가장 아름다운 아침이다

    네 안에 있는

    여여(如如)의 틀을 무너뜨리지 말아라

     

    옥수수와 풀과 밤의 향기가

    모두 소리내어 평화를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오늘 아침

    총알 하나가 저 작은 새의,

    온몸으로 생명을 찬양하는 저 작은 새의

    가슴에 박힐 수도 있음을!

    옥수수와 풀과 밤의 향기와

    달과 별들 -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네 목숨을 지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에게 돌려드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깨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부드럽게, 원망하는 마음을 비우고

    이 지독한 고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대의 별 아래에서

    그대를 위하여

    나는 태어났습니다

    어린아이 가슴으로

    천 년을 살고자

    태어났습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내 가슴이요 마음이요

    인생이요

    그 밖에 모든 것인 나의 손입니다

    이 손의 유일한 힘이 

    애달픈 사랑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에게 돌려드립니다

    잊지 마십시오

    어머니는 우리에게

    피어나는 장미꽃과 함께

    무덤 위 시든 풀들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에게처럼

    그들에게도 

    사랑은 

    순결한 새벽 이슬입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숙인 고개로 이것을 그대에게 드립니다

    보셔요, 낡은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흐르는 피는 여전히 선명한데

    그대 영혼이

    떨리는 풀잎 끝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내 손가락 끝에 맺혀 있을 것입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났지만

    여전히 낡은 상처를 지닌 채

    그리고 여기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에 떠오르는

    내 웃음이 있습니다

    여기 또 내 가슴이

    지나버린 날들에서 온

    순결한 내 가슴이 있습니다

     

    여기 내 손이 있습니다

    붕대 속에,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감추고 그대에게 돌려드립니다

    그것이 다시 으깨어지지 않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바라건대, 저 별들이

    나의 증인으로 되기를.  

     

     

     

     

    묵상(默想)

     

    오늘 밤, 달이 저리도 둥그니

    기도로 별들을 불러내자

    밝게 모아진 마음을 통해 드러나는

    선정(禪定)의 힘이

    우주를 흔들고 있다

     

    온 땅을 휘덮은

    공포의 저 바다를 증언코자, 오늘 밤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모였다

     

    한밤중 울리는 종소리에

    시방(十方) 세계 온갖 중생이

    손을 잡고 마하카루나(大慈悲)를 명상한다

     

    인생의 상처를 치료하는

    맑고 신선한 샘물 같은 자비가

    가슴마다 솟구친다

     

    마음산 정수리에서 흘러내린

    복된 샘 줄기는

    무논과 귤 밭을 적시고

     

    풀잎 끝에 맺혀 있는

    감로(甘露) 한 방울을

    독사가 마시자

    혀끝의 독이 사라진다

     

    마라(魔)의 화살도

    향기로운 꽃으로

    모양이 바뀌었다

     

    치료하는 샘물의 놀라운 기적-

    신비스런 변화여!

    한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는다

     

    나뭇잎은 여전히 태곳적 정원에 푸르고

    반짝이는 햇빛은 눈 위에서 웃음짓고

    성스런 샘물은 여전히 동(東)으로 흐른다

     

    관음(觀音)의 버드나무 가지에서나

    내 가슴 속에서나

    치료하는 샘물은 같은 샘물

     

    오늘 밤, 모든 무기(武器)

    우리 발 앞에

    던져져 먼지로 돌아간다

     

    꽃 한 송이

    꽃 두 송이

    작은 꽃 백만 송이가

    푸른 벌판에 피어난다

     

    내 순진한 아이

    웃는 입술과 함께

    석방(釋放)의 문이열린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내일 내가 떠나리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다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오고 있다

     

    깊게 보아라, 이렇게 나는 순간마다

    봄 나뭇가지에 돋는 새싹으로

    둥지에서 노래를 배우는

    여린 날개의 작은 새로

    꽃의 심장에 들어 있는 쐐기벌레로

    돌 속에 감추어진 보석으로, 오고 있다

     

    울기 위하여, 웃기 위하여,

    두려워하고 희망하기 위하여, 나는 온다

    내 심장의 맥박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이요 죽음이다

     

    나는 강물 위에서 몸을 바꾸는

    한 마리 날도래다

    그리고 그 날도래를 삼키려

    물 위로 곤두박질하는 새다

     

    나는 깨끗한 연못에서

    행복하게 헤엄치는 개구리다

    그리고 나는 소리도 없이

    그 개구리를 삼키는 풀뱀이다

     

    나는 대나무 막대기처럼

    뼈와 가죽만 남은 우간다 어린이다

    그리고 나는 우간다에

    살생무기를 팔아먹는 무기상(武器商)이다

     

    나는 작은 배로 조국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가 해적한테 겁탈당하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열 두 살 소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해적이다

    볼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굳어진 가슴의 해적이다

     

    나는 막강한 권력을 움켜잡은

    공산당 정치국 요원이다

    그리고 나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천천히 죽어가며, 인민을 위해

    '피의 댓가'를 치르는 바로 그 사람이다

     

    내 기쁨은 봄날처럼 따뜻하여

    대지를 꽃망울로 덮는다

    내 아픔은 눈물의 강이 되어

    넓은 바다를 가득 채운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그리하여, 내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동시에 듣고

    내 기쁨과 아픔이 하나임을 보게 해다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내 가슴의 문을,

    자비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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