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키스- 김기택

미송 2012. 5. 2. 17:46

 

키스  / 김기택

 

처음 네 입술이 열리고 내 혀가 네 입에 달리는 순간

혀만 남고 내 몸이 다 녹아버리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온 혀가 식도를 지나 발가락 끝에 닿은 순간

열 개의 발가락이 한꺼번에 발기하는 순간

눈 달린 촉감이 살갗에 오톨도톨 돋아 오르는 순간

여태껏 내 안에 두고도 몰랐던 살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

뜨거움과 질척거림과 스며듦이 나의 전부인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갗으로 덮여 있는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이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순간

네가 나의 심장으로 펄떡펄떡 뛰는 순간

내가 너의 허파로 숨 쉬는 순간

내 배 안에서 네가 발길질을 하는 순간

아직 다 태어나지 못한 내가 조금 더 태어나는 순간

 

『문학과사회』2010년 여름호

 

 

그렇다. 시가 태어나는 때도 순간이다. 순산이든 난산이든 돌아보면 다 한 순간에 된 일. 추임새 달린 문장들이 재밌다. 사실적 표현이 극명하여 마치 칼 같으다. 손가락 하나 베지 않으면서도 내 속에 끓는 피를 칼끝에 묻혀 간다. 눈 깜짝할 새. 드뎌 성별을 안 따지고 임신에서 태동으로 간다. 분만 직전에 딱 멈추는 詩眼의 발견. 이것은 어디까지 주관적 확신이지만. 암튼, 시인도 시 속에 화자도 남자다. 해산하는 남자들을 뭐라고 부르나. 여자를 먹고 난 후, 또 하나의 '나'로 태어나는 남자를 신화라 부르나 시인이라 부르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