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중에서

미송 2012. 7. 19. 08:02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중에서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충돌과 살육의 소리는 잠잠해졌다. 바람도 잦아들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했기에 당연히 정의가 승리했다고 믿는다. 이것은 아주 커다란 위안이다. 정말 그렇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살아남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태연한 평화를 보고 있자면, 승리한 이 나라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저 애통하고 씁쓸하다. 그리고 특히 슬프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쓰러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끼엔이 살아남은 대신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고, 갈가리 찢기고, 전쟁의 폭압과 위협 속에 피의 제물이 되고, 어두운 폭력에 고문당하고 능욕 당하다 죽고, 매장되고, 소탕되고, 멸종되었다면 이러한 평안한 삶과 평온한 하늘과 고요한 바다는 얼마나 기괴한 역설인가.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유해 발굴을 떠났던 그 해에 끼엔은 잊혀 간 흔적을 찾아 울창한 밀림 속을 순례했다. 호아를 떠올리며 악어 호수를 다녔고, 그의 정찰 소대 전우들을 생각하며 고이 혼을 다녔다. 바로 그때부터 전쟁을 슬픔의 빛깔로 받아들이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걸음마다, 날마다, 사건마다 차분하고 침울하게 그의 가슴속에 되살아났다. 슬픔의 빛으로 과거를 비추었다. 그것은 각성의 빛이었고, 그를 구원하는 빛이었다. 회상 속에, 그리고 결코 나아지지 않는 전쟁의 슬픔 속에 깊이 몸을 담그는 것만이 일생의 천직과 더불어 그의 삶을 존재하게 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글쟁이로, 과거를 돌아보고 앞을 얘기하는, 지나간 세월이 낳은 미래의 예언자로 살게 했다.

 

작가_ 바오 닌 - 1952년 베트남 출생. 열일곱 살에 베트남인민군으로 참전하여 이후 6년간 전선에서 지냄. 마지막 전투가 끝났을 때 단 한 명의 소대원과 함께 살아남았고, 그는 종전 후 8개월간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 『전쟁의 슬픔』은 그때의 체험을 다룬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낭독_ 배상돈 - 배우. 뮤지컬 <멋진 인생>, 연극 <마누래 꽃동산>, <지대방> 등에 출연.

출전_ 『전쟁의 슬픔』(아시아)

음악_ 심동현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 김태형

 

 

 

 이와사키 치히로(1918-1974) - '꽃으로 피어나다’

 

 

또한 전쟁을 다룬, 바오의 손바닥만 한 단편소설이 기억납니다. 폭격으로 댐이 폭파되고 삽시간에 마을이 수몰되죠. 갓난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가 수마에 휩쓸려 지붕으로, 나뭇가지로 간신히 피신합니다. 강보에 싼 아기를 안은 아내는 새끼 탐하는 짐승처럼 손 내미는 남편도 외면할 정도로 아기 보호에 필사적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내 급류에 휩쓸리고 말지요. 남편이 손 뻗어 가까스로 구해낸 것은 강보에 싸인 아기뿐입니다. 사내는 아내 잃은 슬픔에 넋 놓고 아침을 맞지요. 젖 달라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내, 그제야 한 편에 둔 강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강보를 풀었더니 제 아기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 전쟁은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 살아남은 남남들이 새로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 베트남에서 이런 식으로 꾸려진 가족들을 많이 만났습니다.「전쟁의 슬픔」과 함께 단편「물결의 비밀」을 읽으며 바오야말로 전쟁을 다룬 금세기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터는 인간에게 가장 적나라한 실존의 공간이죠. 그래서 훌륭한 전쟁 소설은 가장 강력한 평화의 책이기도 합니다. <전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