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하는 이야기 / 오정자
가을이 오니 낙엽이 밟히고 밟히는 낙엽에 뒹굴고 싶다
눈꽃을 보듯 하늘하늘 잎들을 담고 싶다 낙엽을 쓸지 않고
낙엽 냄새에 꿈자리 포근하여 잠을 자며 잠을 생각하고 싶다
잠은 가을이기 보단 봄 새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잠을 잔만큼 크게 한다 자면서 잠으로 파고들고 고마워 잠
깊은 안식을 주어서 하며 잠에게 말을 건다
잠과 내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거 같은 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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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낭송하라는 그대의 말에 나는 잠을 찾았죠. 여섯 편의 잠이 내 작은 액정 속에 있었죠. 잠은 참 아기자기한 남자라는 기억과 함께 초저녁에 당나귀들을 이끌고 아니 앞세우고 걸어가는 잠을 떠올렸죠. 웃음이 나는 부분에선 눈물도 났어요. 잠의 슬픈 노래가 이른 아침에 보니 정말로 슬프더군요.
슬픈 노래 / 프랑시스 잠
- 내 사랑이여 - 하고 말하면 나도 - 내 사랑이여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눈이 오네 - 하고 말하면 나도 - 눈이 오네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아직도 - 하고 말하면 나도 - 아직도 -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 이렇게 - 하고 말하면 나도 - 이렇게 -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당신이 - 난 네가 좋아 - 하고 말하면 나는 - 난 당신보다 더 - 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 여름이 가는군 - 하고 말하면 나는 - 이젠 가을이에요 -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선 우리들의 언어도 달라졌지 마침내 어느 날 당신이 말하기를- 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다시 한번만 더 말해 줘요
한번만 더 말해 줘요, 이 부분이 슬펐을까요. 처음엔 맞장구치며 웃었는데 왜 마지막에 슬퍼졌을까요. 아침이 와서? 잠에서 깨어서? 꿈결 같은 목소리를 한 번밖에 들을 수 없어서? 운명이 슬퍼서? 슬프- 흑-흑 발음하다 보면, 깔깔 웃을 수 있을까요. 잠을 읽다 잠의 당나귀들과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를 듣다 경건히 잠든 어제 어제의 일이 오늘의 일이 되기도 하는 잠의 이야기.
20121103-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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