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정지버튼

미송 2012. 12. 19. 11:08

    정지버튼 / 오정자

     

    목요일 아침 십대 미美소년이 구찌 옷을 보려고 왔다
    내가  앉은 녹색가게(Green Shop) 창가
    나만의 디자인을 원하는 소년의 빨갛게 튼 입술이 
    말끝마다 대답을 달고 나가고,

    ' 남자가 예쁜 건 참 신비한 일이야 '
    나는 그날 저녁 少年을 생각하며 낙엽을 만졌다

     

    (나뭇잎들 내가 나로부터 멀어져 온 것처럼 뒹굴고 있었다)

     

    싹둑 자르긴 뭐해도
    지나간 당신 이야기를 듣는 건 솔직히
    지겨운 냄새가 나, 시체 썩는 냄새 같다니...

    나는 지난 밤의 못된 말들을 지우며
    서른 살부터 치주염을 앓아온 枯葉 같은 남자에게
    전화한 일을 반성한다

    수박 줄무늬 위에 밑줄 긋듯 落下하는 잎들
    튕기던 현악줄을 끊어버리고 자각자각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
    꾹꾹 눌러쓴 文章들이 만인의 창가에 흩날린다

     

    흔히 낡아진 잎들은 초라하여서

    서성거리게 만드는 길은
    날 오랫동안 더 直立하게 할 것 같다

     

    복습은 졸음을 쏟아놓는다
    잠들면 죽은 듯 사라지는 여자처럼
    가을은 그리 쉽게 떠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다.

     

    2010, 가을

     

     

    개성 강한 남자가 좋다(犬性 말고 個性).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 밍밍한 쌀뜨물 보단 젊은 초유初乳의 맛이 더 확실하니까.

    호구지책으로 택(?)했던 ymca에서 나는 네 번의 가을을 보냈다. 널브러지면 걍 죽어뿌리자던 나를 꽤나 오래 직립하게 했던 터전.

    와이에서 만난 캡틴 미세스 리가 초교 앨범에 있었단 사실은 참 우연이었다, 2010년 가을, 그녀 아들과 잠간 주거니받거니 했다.

    개성있는 디자인의 헌옷을 구하러 들어왔던 그녀의 아들. 빨간 입술로 유난히 말을 예쁘게 했다. 말솜씨가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와이 내부의 그린샵과도 인연이 길어질 것 같은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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