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키다리 아저씨와 종합선물

미송 2014. 8. 20. 09:11

 

 

키다리 아저씨와 종합선물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기억과 함께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아니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원숭이들도 숫자에 민감하였나 보다. 인간의 마음도 원숭이의 마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진화론은 다윈 이전부터 관찰되어 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군것질거리래야 고작 엿이나 강냉이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 종합선물셋트를 얻는 일은 호사豪奢였다. 리본을 푸는 순간 보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들었으니, 욕심을 내어 오빠와 가위 바위 보를 해 가며 과자를 고르곤 했다. 내 주머니를 먼저 채우려던 이기적이고도 유아적인 게임.

 

어느 날 대문을 들어서던 아저씨의 옆구리에 눈길이 닿았을 때 나는 홍조를 띄기도 했다. 세수를 마친 아저씨에게 수건이나 로션을 드리며 (아저씨가 내 단발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와중에도 ) 다음 번 종합선물셋트의 크기를 상상하곤 하였다. 어릴 적 에피소드려니 하면서도 아직도 그 때의 영상을 놓지 못한다.

 

원숭이는 항상 무엇인가를 먹고 무엇인가를 흔들어 대고, 연신 떠들어 댄다. 어린 시절 선물상자속에 든 초콜릿 사탕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이 이와 비슷하진 않았는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아온 건 아닌지.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고스톱을 쳐도 돈을 따야 담요를 접었던, 그 미운 버릇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개인의 성격적 토대가 5세경에 이미 모두 형성되고 그 후 성적에너지를 원인자로 하여 발달단계를 거친다고 한 프로이드의 이론보다는, 인생주기를 갈등과 대립의 조절능력에 따라 8단계로 나눈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이 내겐 더 많이 적용된 듯 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 비유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면, 원숭이는 우리가 살아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죽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배열을 정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것은 하라, 저것은 하지 말라, 이 집을 세우고, 저 집을 부수라, 이 일에서 다른 일로 옮겨라 그래야 이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배열을 바꾸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늘 조삼모사와 살고 있다.

 

그러나 장자는 말한다. 만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면 합은 언제나 같다고, 그 합은 언제나 일곱이라고. 잘 익은 알밤을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받든,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받든, 합계는 변함없는 일곱이라고.

 

한 걸인이 길거리에서 살았다. 그리고 황제는 궁전에서 살았다. 그러나 결과는 동일하였다. 부자와 가난한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합은 똑같다. 삶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면 장자가 아침에 세 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고로 삶은 공평하지도 않고 불공평하지도 않다. 삶은 우리가 좋아하는 배열에 대해선 전적으로 무관심하며 우리가 정해놓은 순서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배열을 바꾼다 해도 전체는 바뀌지 않는다. 삶은 하나의 선물일 뿐이므로! 부자는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배고픔이 무엇인지 잊어버렸고 멋진 침대를 가졌지만 침대와 더불어 불면증을 얻었다. 아이러니한 삶은 겸손과 수양을 요구할 뿐이다.

 

한 수도승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매우 유명하여 온 나라에 알려진 수도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고 깨달음을 얻은 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날에 한 매춘부가 죽었다. 사원 앞에 살았던 그녀는 수도승만큼이나 유명한 매춘부였다. 그들은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같은 날 죽었다. 죽음의 천사가 수도승을 천국으로 데려갔다. 다른 죽음의 천사는 매춘부를 지옥으로 데려갔다. 천사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문은 닫혀 있었고 문지기가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두 사람을 혼동했다. 이 수도승은 지옥으로 가야하고 매춘부는 천국으로 와야 한다.” 그러자 천사는 “무슨 말인가 이 사람은 끊임없이 명상하고 기도한 매우 유명한 고행자였다. 그래서 우린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매춘부는 이미 지옥에 가 있을 것이다. 다른 천가가 그녀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우린 전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분명한 것이니까….”

 

그때 문지기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단지 겉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에 혼동한 것이다. 이 수도승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명상했다. 그러나 그 자신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난 삶을 잃고 있다. 저 매춘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닌가. 내가 거리를 건너가면 언제라도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난 너무 터무니없는 일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명성 때문에 그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금식하면서 고행자로 남아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매춘부와 함께 있었다. 매춘부는 그와 반대였다. 날마다 사원 쪽을 바라보면서 그곳의 조용한 삶을 갈망하면서 그곳에는 어떤 명상이 진행되고 있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녀는 신이 자기에게 그 사원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기를 염원했다.

 

선택하지 않는 깨어 있음이 절대 자유다. 지옥은 속박이며 천국 역시 속박이다. 천국은 아름다운 감옥이고 지옥은 추한 감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 다 감옥이긴 마찬가지! 이제 나는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를 다시 본다. 전체를 보는 눈을 염원한다. 어린 시절 키다리 아저씨의 종합선물을 열어놓고 가위 바위 보를 하거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거나 할 때는 지났다. 어느 곳에도 멈출 수 없는 강물이 되었고 내 안에 원숭이들도 사라졌다. 아침과 저녁 중 어느덧 저녁을 맞이했다. 합하여 일곱이 된 숫자의 의미를 눈치 챘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이나 원숭이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니 조삼모사를 버린 하루치의 열정만 남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나의 삶은 종합선물로서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

 

2010,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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