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y.e.kong '군산비응항'
'실존적 헤르메스의 탄생: 경계의 시학 - 진이정의 시세계'
박대현
(…상략…)
진이정은 해탈욕망의 경계에서 다시 실존의 그리움을 뿌리치지 못하고, '옛 장의사 자리엔 무지개 룸살롱이 들어와 있'고,' 잠자는 죽음의 코털을
건드린 줄도 모르는'(105p) 자본주의 문명의 속악한 진창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진창이란 '짜장면 젓는 폼만 보아도 양갈보 똥갈보를 용케
구분하던 양민들'(115)과 '일용할 봉지쌀과 함께 퇴근하던 외삼촌'이 살았으며, '외국군대에게 언제까지 의지해야 하'(66)고 '민족반역자들이
출세하'(78)는, '개같은 / 나의 무지와 무기력에 혐오를 느'(78)낄 수밖에 없는 '식민지' 현실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거지가 강남
중산층보단 행복'(44)할 만큼 비참한 현실이다.
죽음을 한껏 체험한 자에게 진창의 현실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죽음으로 인한
실존의식과 초월(해탈)의 욕망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착되는 것일까? 그러기엔 진이정의 사회과학적 상상력은 그의 실존적 상상력 속에서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 숨쉬고 있으며,그 자신을 생생한 현실의 환부 한가운데 서 있게 한다.
데뷔작 '일터에서 보낸 편지' (주:진이정은
'민중시대의 문학적 실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이 사실은 진이정이 해탈이라는 관념의 세계를 처음부터
지향했던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개혁과 구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과 맞물려 현실과 해탈이 뒤얽히는 실존적 상상력이라는
독특한 시세계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에서 알 수 있듯이, 진이정의 시세계는 현실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하여 육체적인 유한성에서
비롯된 실존적 자각과 해탈의 관념까지 아우르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세계가 관념적으로 흘렀다는 비판적 논의보다는 보다
폭넓은 세계관으로 확대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와 죽음, 그리고 근원에의 절망적인 탐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세계는 관념성을 극복하고 시적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해탈의 상상력과 죽음의 감수성을 치열하게 보여준 진이정이지만, 그가 지닌
시세계의 근저에는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자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단전호흡은 우리 사장님의/비술입니다/할딱거리면서/간신히
횡경막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저희들의 숨쉬기와는 질적으로 다르지요/지난번 조회시간에 사장님은/고맙게도 자신의 호흡법을/저희들에게 소개를
했는데요/(…중략…)/그 때부터 우린 감히 사장님과 마찬가지로/단전호흡을 시작했는데요/우리 공장에 있던 분진, 카바이트, 납, 소음,악취가/어느새
기가 되어/이제 우리들의 단전 속으로 모두 들어와 있고/언젠가 심부름 가는 길에 보았던 사장님 댁의/안뜰같이/세상은 다시 청정해진 것처럼
우리들의 눈에는 비쳤답니다 안녕('일터에서 온 편지' 중,<실천문학>, 1987)
단전호흡을 매개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선명한 계급적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위 시에서 진이정이 등단 초기에 가지고 있었던 시적 세계관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나머지 데뷔작
'사슴목장에서 온 편지' '무허가 시장' '상도동 무당집에서'에서도 노동자가 시적 화자로 등장하거나 시의 제재로 쓰이고 있다. 죽음이 그의 육체에
스며들기 전, 그는 민중 문학적 실천을 통해 사회변혁과 개조를 이루어 내고자 하는 민중시인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가 병들어 가면서, 개조되어야 할 이 현실은 점점 추억의 공간으로 전화된다.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이 생생한 현실은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이다.
폐질환으로 인해 죽음을 서서히 확신하던 그는 '어둡고 초라한 이국의 병사들 틈에서'(19)에서 '딱딱한 미제 사탕을 입에 물고 예배당을
두리번거리던'(20) '유년의 기지촌'(18)을 추억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현실이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더
나아가 '아아 이 몸은 그 진창의 아들일 터이니'(115)라고 절규한다.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으로 인해 해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했던
그가 다시 되돌아보는 이 현실의 추억은 그를 '감전'(57)되게 한다.
그의 추억은 너무 생생하다. 너무 생생해서 '악몽이다'.
'크레용의 햇님이 고향을 북북 문대'(17)던 진창 속의 연꽃 같은 어린 시절까지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추억실조'(16)에 걸려 있다고 엄살을 떠는 걸까? 그의 추억은 그의 사회과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한 '진창', 죽은 추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추억 다오/나는 추억 거지/나는 추억 부랑자'(17)라고 절규한다.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고 말했던 기형도나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라는 종시를 남겼던 박정만과는 달리, 해탈의 관념에서 다시 현실의 '진창'으로 되돌아온 그는 '남자인 희망의 입
속으로 혀를 들이'밀고 '희망을 아직 그녀라고 부르'는 '희망의 호모'(51)가 되어 '슬픔의 화폐개혁'(36)을 꿈꾼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그의 죽음조차 그 꿈을 걷어 들일 수 없었다.
눈물도 없이 나는 운다 울었다/너무 팔아먹을 것이 없었으므로/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 가끔 나는 바로 선다/깜빡 꿈이란 걸 잊은 채 말이다/허나 고런 때래야,/겨우 시가 되는 것이다('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
중)
이미 죽어버린 그는 '눈물도 없이' 운다. 살아생전 이미 죽음에 깊숙이 침잠해 버린 그의 어조는 죽음 이후의 생에 대해서
말하는 듯하다. '거꾸로 선 꿈의 세상'이란 이미 죽어버린 그가 꿈꾸는 이 세상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깜빡 꿈이란 걸 잊은 채') 가끔 살아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가끔 나는 바로 선다') 그런 때라야, 겨우 시가 되는 것! 죽음을 체험한
자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전언! 이 전언은 그의 다른 시구를 통해서도 암시되고 있다.
나는
건넌다, 다리는 곧 없어질 터이다/사라진 다리로 돌아올 테다/그림자 다리를 건너 빛의 나무에 오르겠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8' 중)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의 신이지만,이미 죽음을 체험한 '실존적' 헤르메스의 모습으로 그는 돌아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이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진이정은 헤르메스를 닮았다. 하지만, 그는 속악하고 추악한 이 현실을 이해할 수는 없으되
버릴 수 없는 실패한 헤르메스이며, 삶의 경계를 넘어 '영원'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실존적 헤르메스다. 그는 실존의 피가 뜨겁게 살아 숨쉬는
현실의 우리에게, '살아있던' 그가 듣고 싶어 했던 '시인의 목소리', 즉 '이미 저승에 가버린 시인들의 목소리'(51)를 이미 '죽어버린' 그가
들려준다. 그리고 '그림자 다리를 건너 빛의 나무에 오르'며 비로소 삶과 죽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죽었다. 하지만,'구토를 걱정할' 만큼 '시인의 기침은 너무 상투적이'고, '기계로 쓴 시를 읽는 사람들, 뜬소문처럼 우주에 떠 있'(70)는
삭막한 시대이기에 '거꾸로 선 꿈' 속을 헤매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귓전을 내내 울릴 것이다. 다만, 유하의 말대로 '이 추억의 저녁을
지나, 마침내 울음이 나를 버릴 때, / 세상의 병을 다 앓고 난 마음이 / 내 안의 그대를 영영 데려'(유하 '상수리나무숲에서')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다시 인생이라는 중고시장에서 마치 새것처럼'(19) 인생을 앓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죽은 시인의 전언은 무섭다. 진이정이 남긴
시편들은 무섭고 눈물겹다. 그의 죽음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오랜 공명을 가지고 폐부를 울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사소한 그림자
하나하나에도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잎이라고 눈이라고 풀씨라고'(14)라고 명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진이정의 시편들은 그가 가진 이 세계의
눈물겨운 사랑이 어떤 것이었나를 보여준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검은 강물에 서서히 가라앉는 자만이 토해 낼 수 있는 육성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이다.
2005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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