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백<將進酒>

미송 2013. 2. 11. 22:46

     

     

     

    將進酒(장진주) / 이백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의 밝은 거울을 보고 백발을 슬퍼함에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머리가 저녁에는 흰눈처럼 되었음을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이란 득의하면 모름지기 실컷 즐겨야 하니

    莫使金樽空對月     금 술독 헛되이 달만 마주 대하고 있게 버려두지 말게나

    天生我在必有用     하늘이 내게 재주내신 것에는 반드시 쓸모있기 때문이려니

    千金散盡還復來     돈이란 천금을 다 써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네

    烹羊宰牛且爲樂     양 삶고 소 잡아 또 한 번 즐기세

    會須一飮三百杯     모름지기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 丹丘生       잠부자와 단구생이여

    與君歌一曲           그대 위해 한 곡조 불러줄 터이니

    請君爲我傾耳聽     제발 날 위해 귀 기울여 들어주게

    將進酒君莫停        술 권하노니 잔을 멈추지 말게나

     

    鐘鼓饌玉不足貴     풍악 울리며 진귀한 음식 먹는 것도 대단한 것이 없으니

    但願長醉不用醒     다만 오래 취하여 다시 깨어나지 않길 바라네

    古來聖賢皆寂寞     예부터 성현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 이름 잠잠하고

    惟有飮者留其名     오직 주객만이 그 이름 남기고 있네

    陳王昔時宴平樂     옛날 진왕이 평락에서 연회를 열 때

    斗酒十千恣歡謔     천만금 나가는 술도 몇 말이고 마음껏 마시게 했는데

    主人何爲言少錢     주인은 어찌하여 돈이 적다 하는가

    經須沽取對君酌     우선 술을 사다가 그대와 대작하리니

    五花馬千金銶        좋은 말과 천 냥짜리 외투를 가지고 

    呼兒將出換美酒     아이를 불러 나가서 좋은 술로 바꾸어오게

    與爾同銷萬古愁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 풀어보리라

     

     

    이백은 중국인들이 즐겨 암송하는 시를 가장 많이 남긴 시인이다. 그의 부친은 서역西域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척한 상인으로, 이백이 어렸을 때 사천四川으로 이주했다. 이백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었으며, 각종 경서와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검술에도 많은 흥미를 가졌다. 또한 협객의 면모와 자유분방한 성격까지 지닌 그는 25세 즈음에 고향을 등지고 삼협, 동정, 금릉, 태원, 산동 등의 명산과 도교 사찰 등을 유람했다.

     

    이 기간은 약 17년 정도인데, 이 사이 이백은 수많은 문장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42세 즈음에 이백은 드디어 지인의 추천을 받아 현종을 알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약 3년간 장안에 머물며 수많은 일화와 명작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현종이 그를 곁에 둔 것은 함께 정치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시를 짓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백의 자유분방한 성격에 이러한 삶이 맞을 리 없었다. 이백은 이에 미련 없이 장안을 떠나 또다시 강남과 강북을 두루 돌아다녔다. 한때는 두보, 고적과 교류하기도 했으며 한때는 안녹산의 난에 얽혀 죽을 고비도 넘기게 된다. 그는 62세에 안휘성 당도현의 친척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백은 반평생 동안 중국의 거의 모든 명승고적을 유람하며 시를 읊었다. 

     

    이백은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하며 낭만적인 성품을 지녔다. 또한 도교에 심취하여 한때는 현세를 초월하여 불로장생을 꿈꾸고 신선의 세계를 흠모하기도 하였다. 그를 '시선詩仙' 즉 '시의 신선' 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그의 시적 경향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백은 술을 매우 좋아하였다. 술에 취한 듯한 낭만적인 분위기와 격렬한 감정 속에서 천재적인 상상력에 의거하여 붓을 휘날리듯 써내려 가는 그의 시창작은 다른 시인이 감히 흉내내기 어려운 경지였다. 엄격한 격률을 지켜가며 시를 짓는 율시보다 위와 같이 형식의 자유로운 고시나 옛악부의 제목만을 빌려 시를 짓는 것이 이백의 성정에는 더욱 부합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백의 시에는 오언이나 칠언 고시가 대부분이고 그 시적 성취도 매우 뛰어나다.

     

    <중국문학의 즐거움>(고려대 중국학연구소 2009, 차이나 하우스) 68~70쪽 中 타이핑 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