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석습(朝花夕拾)`은 꽃이 떨어진 아침에 줍지 않고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에 줍는다는 뜻으로,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신중히 매듭짓는 것이 현명하다는 노신의 말이다. 그런가 하면 꽃이 떨어질 때는 하염없이 떨어지므로 쓸어 담아봤자 소용이 없다는 성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이 이미지를 망치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성급함‘이다. 화가 나는 자극을 접하고 한 템포만 늦추어 반응하기만 해도 그 실수는 반 이상 줄어들 것이다. 개인 이미지만이 아니라 정치판에서나 사업에서나 상대와의 관계, 본인의 행로까지 매우 다르게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피니언 리더의 섣부른 말 한마디가 갖는 파장을 신문 지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런가하면 사람 사이에서도 참 쉽게 빨리도 다가가고 머지 않아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급증하는 이혼률이 아니고도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보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팀의 강신장 상무는 뛰어난 창의력과 상상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대하면서 배우게 된 것은 그보다는 바로 이 조화석습이다. 처음엔 오랜 세월 조직에서의 `눈칫밥’때문인가 의심도 했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순간에도 그의 반응은 같았고, 습관인 듯 이제는 그렇게 몸에 밴 그는 경솔한 나의 판단에 도움의 말을 자주 준다.
몇 번 반복되고 보니 이제는 신중한 일에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게 되고 현명한 답변에 어느 새 존경하게 된다. 어느 덧 오래전 일이 되어 버린 황우석 박사 사건의 초입에서 모두가 경악하고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하며 쉽게 말들을 뱉어내고 있을 때에도 그는 말 한마디에 신중했다.
나 역시 황 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매력에 빠졌던 터라 더욱 충격은 컸고 눈물이 나려 했는데 황망해하는 나와는 크게 다르게 그는 차분했다. 황 박사의 오늘의 결과에 이르러서야 그의 신중함이 뭐 그리 바꾸어 놓은 것도 없지만 난 그때의 그를 기억한다. 다들 배신감에 경악하고 자신의 판단에 대해 서둘러 말할 때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늘 결론을 유보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판의 누구 경우에도 그러했고, 지인인 의사에게 보톡스를 맞고 와서는 불편해하며 실력을 의심하는 농담조의 이에게도 가까운 사이에 넘친 애정으로 양을 많이 투여한 것이라면 그 정도의 불편은 그 애정에 대해 기꺼이 감수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냄비 근성’까지로 표현되는 우리의 피속에는 날이 갈수록 너무 성급하고 그대로 뱉어버리는, 이제는 버려도 좋을 모습이 남아 있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막연히 동경하면서도 `그럴 수 없기에 그리워할 뿐`이라 말하며 급박한 현실을 핑계댄다. 지금보다 조금만 속도를 늦춘다면 화 낼 일도 오해로 낯 뜨거워질 얼굴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일등을 외치는 세상 탓인지 조금만 여유를 가져도, 조금만 상대의 입장이 되어 주어도 사실 티가 나는 것이 쉬운 형편인 오늘이니 한번 해 볼만 하다.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라는 것은 A라는 정보가 들어오고 그에 준하는 다른 정보가 또 들어오지 않으면 앞의 정보가 잠든다는 것이다. 보통 이미지 관리에서는 앞의 좋은 정보가 잠들기 전에 새로운 또 다른 좋은 정보를 제공하여 앞의 정보를 살리자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 방법은 자신에게 1차적으로 들어온 정보에 보다 신중하여 경솔함을 막는 것이다. 1차적인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긍정적인 정보에 대해서만으로 제한하고, 화가 난다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온 경우, 보다 신중함으로 유연히 대처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젊은 혈기에서야 실수하고도 깔끔히 사과하고 새 출발하는 것만도 칭찬거리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그 간의 경륜에 대한 상대의 기대가 높아질수록 '신중함'은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이미지이다. 버럭 화를 내고는 ‘진작 말을 하지’하며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리더의 모습에서 자극 대로 반응하는 경솔함에 실망하게 된다. 가벼움에 대해서는 믿고 따르기가 어렵다. 주변을 보면 지금 좀 둔한 듯 하여도 신중함의 결과 앞에 결국 존경을 더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잠깐씩 빛나는 순발력은 매력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순간 좌중에 돋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후일 그의 모습이 더 빛나는 것은 신중하고 성숙된 처세를 발견할 때이다.
이미지 관리에 있어서도 선거 때만이 아니고도 CEO들의 경우 필요한 순간에 닥쳐서가 아니라 미리 미리 이미지 관리를 시작하고, 조급하게 결과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감정하고 생각하고 처신하며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 간다면 신중한 이미지는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이미 본인의 이미지일 것이다.
2006, <저작권자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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