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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심보선 산문집<그을린 예술>

미송 2013. 6. 23. 08:48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해지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이 실존으로 인해 인간은 가까스로 타인과 함께 평등해지고, 가까스로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가까스로 세계의 비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34쪽)

시인 심보선(43)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그을린 예술'에서 보다 나은 존재로 스스로 갱신하고 고양하며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타인과 삶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를 '텅 빈 우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우정이라고 이해하는 관계, 자기 몫을 키우기 위해 맺은 전략적 파트너십과는 다르다.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고 함께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 때문에 맺는 타인과의 관계"를 일컫는다.

 

심씨는 예술 역시 '텅 빈 우정' 또는 '삶 자체의 함께-나눔'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술이란 창작(해석)을 통해 고유한 삶의 형태를 빚어내고, 이 삶의 형태는 일종의 우정을 통해 타인과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속물과 동물 사이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길을 확보할 수 있는 경로라고 짚는다.

이러한 가능성은 예술을 행하는 전문가 집단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예술가 숭배 신화, 스타덤을 둘러싼 경쟁 체계, 승자 독식의 논리 아래에서 예술은 이미 마술적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술이 되찾아야 할 마술적 힘은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예술에서 온다고 본다. 책에도 소개된, 70대까지 문맹이었으나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살 넘은 할머니의 경우가 그렇다.

낮에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밤에 불을 밝히고 시를 쓰며 '행복한 피로'로 시간을 보내고, 시상이 자꾸만 떠올라 밭일에 몰두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씨는 이 할머니의 예를 통해 예술이란 "작품의 제작인 동시에 삶의 제작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몰두가 자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사회질서가 자신에게 부과한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험"이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삶속에서 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을 '그을린 예술'이라 명명한다. "그을린 예술은 타들어가고 부스러지는 현대인의 삶, 자본주의의 격렬하고 성마른 불길에 사로잡힌 우리네 삶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꿈, 긍정성의 몸짓, 유토피아적 충동이다. 그러므로 그을린 예술은 언제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울 뉴시스】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