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임선기, 「강가의 아틀리에」

미송 2013. 8. 13. 20:36

 

 

임선기, 「강가의 아틀리에」

 

그 아틀리에는 아직

지어지지 않았으므로

기대하였다

 

그 아틀리에는 지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뜰이 보이는 그 아틀리에는

비에 젖고 있었다

 

강가에는 안개가 피어 있다

 

예봉산 자락에서

구두에 진흙이 달라붙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건너가는데

달이 따라온다

 

시·낭송_ 임선기 – 1968년 인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파리10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호주머니 속의 시』, 『꽃과 꽃이 흔들린다』가 있음.

 

화가가 아니었음에도 아틀리에를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작업실'이라고 번역해야 할지 아니면 '화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러한 발음의 '나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올 수 없는 풍경 속에 가지고 싶었습니다. 화가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꿈은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아무에게나 실현되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지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니 피어나면서 시들어가는 꽃과 같은 것, 살아간다는 말이 동시에 죽어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냉정한 시간과 생명의 터미널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틀리에는 공간의 이름 같지만 꿈 혹은 시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장욱진 화백의 덕소 화실 이야기를 모은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근간으로 씌어진  듯합니다. 그 아름다운 산문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삽화들이 떠오릅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건너가는' 것은 우리들 삶도 마찬가집니다. 허나 거기 '달이 따라온다'니 다행입니다. <장석남 시인>

 

 

 by 장욱진, 노인과 나무

 

구두에 진흙이 달라붙는 길이 어디쯤일까, 집배원의 말을 듣고 슬쩍 다녀와 본다. 화가들은 시인들 보다 더 괴팍한 사람들, 이라고 단지 취향과

성미만을 까탈잡지 않으련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배경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이 노파 같은 마음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아무튼,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것들. 아직도 내 주변엔 은혜의 그 무엇들이 많이 남아 꽃처럼 피어나 있다 (-->이것은 오늘 아침에 든 생각). 술과 아내와

토방을 벗하여 살다간 화백의 향기를 맡는 우리, 그를 죽었다 하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든 흘러들어 와 나 같은 속물에게도 깃드는 걸 보면, 그가

생전에 얼마나 큰 기대로 예술을 살았는지 묻지 않아야 한다. 그도 역시 묻지 않겠지.... 내 그림 얼마 줄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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