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밤에 대한 군소리

미송 2013. 10. 14. 10:27

 

 

 

 

 

밤에 대한 군소리

 

오정자

 

 

 

김현승 시인은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고 노래했다. 잠을 자는 밤, 까먹는 밤,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발음해 본다. 영양營養면에선 먹는 밤도 못지않다. 또한 밤의 내부를 과실의 밀도에 비유하여 달고 고요하다 하였으니, 시월 아침에 먹는 포도 알갱이의 과즙도 그 단맛에 한 몫 한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자꾸 식성食性쪽으로 흘러가려는지. 그도 그러려는 게, 밤은 먹는 것이든 그냥 두고 보는 것이든 영양이 풍부한 게 확실하기 때문일까, 마음만 먹으면 오 분 안에 잠속으로 꼴깍 잠기는 나 같은 유형의 사람에겐 밤이 보약인 셈이니...  태양 아래서의 활동 중 가장 고단한 것은 정신적인 활동이다. 일이 힘들어 죽은 사람 보다 스트레스로 만병을 얻어 죽은 사람이 더 많다니, 맞는 말이다.

 

오세영 평론가는 밤은 영양이 풍부하단 시를 놓고서 따로국밥처럼 강의를 했다. 나름의 틀을 짜고 지식을 동원하여 열의를 주입한 그의 강의를 시평이라해야 할까, 평론이라 해야 할까, 나는 투덜댐으로 그것의 주제를 찢어 발개기라고 칭했다. 중간에 들뢰즈니 말라르메니 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삽입하였는데, 교수 정도라면 최소한 그 나라의 말로 그들의 철학서를 읽어 낼 실력을 갖추었거나, 뉘앙스와 악센트를 충분히 살려낼 수 있는 번역 능력을 소지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용문들은 오류일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곧 평론가가 인용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특히 장르에 있어서 외국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우리의 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더욱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시를 우리나라 말로 평론하는 일도 구구각각이니 그것을 평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것이 밥벌이 수단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참고서 정도는 되겠지 하며, 미루던 오세영의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의 페이지를 펼쳐 본 아침 차라리 시만 봤을 걸,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밤은 역시 영양이 풍부해, 하며 시만 한번 더 읽는다. 조사助詞가 잘 못 쓰였다느니, 이 바뀌었다느니, 원관념 보조관념이 어떻다느니, 마태복음 24장에 동방이란 해가 뜨는 곳이고 예수의 재림에 의해서 세계는 재창조되는 까닭에 그러므로 새벽은 우주적 상상력에 있어서 창조 혹은 재생의 시작 바로 그 자체라느니 어쩌니, 그런 말들은 빼고 빼고 생략을 해도 독자로서는 아무 무리無理도 난해難解도 없다. 오히려 음악방 시제이가 말이 많으면 채널을 바꾸고 싶듯, 시 하나 옆에 놓고 지 말만 떠드는 교수의 강의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시를 느끼는 데는 영양가가 별로다, 오히려 시끄러울 뿐.

 

밤이 자꾸만 내 방으로 찾아든다. 일주일 전부터 밤은 내 방을 기웃거렸다. 밤은 그저 고요하고 이불처럼 따스하다.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낮 동안의 불순한 먼지들을 말끔히 씻어주는 밤은 그러므로 여전히 내겐 보약이다. 우측 뇌의 깨춤을 일곱 시간 이상 받아 준 밤이 있었으니 새벽이 환히 밝을 수 있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소냐. 시인의 외마디 탄성에 어찌 누더기 같은 어제의 해체나 분석들을 다시 매달까. 나는 다시 생각한다, 고로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한 줄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시인이 성공했음을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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